오토바이에 택배 더미, 위험 내몰리는 집배원

박준용 2021. 2.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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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저임금..위기의 택배노동자]명절 앞두고 고중량 택배 쏟아져
우편물 나르던 오토바이로 배송
"중심 잡기 힘들어..바퀴 앞뒤 흔들"
코로나 등 이유로 택배 증가 추세
위탁 특고직으론 부족 집배원 동원
위험 커져..작년 안전사고 12%↑
집배원 오토바이에 고중량 택배를 실어놓은 모습.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 제공

서울의 한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는 김강호(가명·47)씨는 요즘 설 명절을 앞두고 선물세트 택배를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선물세트 중에는 5㎏이 넘는 고중량 택배도 있다. 그런데 김씨가 이용하는 이동수단은 보통 택배를 나르는 데 쓰이는 탑차가 아니라 오토바이다. 편지나 작은 소포 등을 배송할 때 쓰는 이동수단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명절 성수기 때 보통 하루 100~150개 정도의 택배를 배송해야 한다. 편지와 등기 우편물 천건 정도의 배송도 여전히 김씨 몫이다. 이 때문에 김씨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은키보다 높이 택배를 쌓아둔 채 위태로운 운전을 하고 있다.

편지와 등기 우편물 배송 업무에 더해 택배 배송 일까지 떠맡은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원들이 명절을 앞두고 쏟아지는 고중량 택배까지 오토바이로 배송하게 되면서 위험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1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우체국본부)와 전국우정노동조합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애초 편지나 작은 소포 위주로만 배송하던 집배원들은 최근 몇년 사이 우편물이 줄고 택배가 증가하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택배 배송 부담까지 떠맡고 있다. 우체국 통계를 보면, 2019년 등기소포(우체국 택배) 물량은 4년 전에 견줘 1.7배 늘었다. 우정사업본부는 택배가 늘면서 탑차를 타고 택배 배송만 전담하는 위탁배달원(택배기사) 수를 점차 늘려왔지만, 수익 확대를 명분으로 집배원에게도 택배 배송 업무 배정을 계속 늘려왔다. 특수고용직인 위탁배달원에게 택배를 맡기면 건당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지만, 대다수가 공무원으로 고정 급여를 받는 집배원은 별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날 현재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원은 1만8천명, 위탁배달원은 3천7백여명 정도인데, 전체 우체국 택배 가운데 집배원이 배달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42.5% 정도로 추정된다. 허소연 우체국본부 교육선전국장은 “우정사업본부가 각 우체국에 수수료를 절약할수록 높은 평가를 받도록 해둬서 우체국들이 경영평가를 잘 받으려고 집배원에게 택배 물량을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와 연말연시, 설 명절 등의 이유로 인해 택배기사들처럼 집배원들도 택배 배송 부담이 커졌다. 우체국본부는 지난해 12월 집배원과 위탁배달원이 배송한 택배 물량(3143만5천건)이 전년 같은 달(2841만5천건)에 견줘 10.6% 늘었다고 밝혔다. 우체국본부가 일부 우체국 단위로 집배원이 배송한 택배 물량을 분석해봤더니, 서울의 ㄱ우체국 고중량 택배는 지난해 4분기 2277개로 전년 4분기(790개)에 견줘 2.9배 늘었다. 같은 기간 ㄴ우체국도 1.5배, ㄷ우체국도 1.4배 늘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집배원들의 90% 이상은 여전히 오토바이로 배송 업무를 하고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해 우편배달용 오토바이 1만5천대 가운데 1만대를 초소형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 반응은 좋지 않다. 택배 배송에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몰라도, 여전히 편지와 등기 업무까지 겸하기에는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우체국 집배원 남상명(45)씨는 “전기차로는 하루 할당량을 채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소연 국장도 “집배원들이 전기차로 하루 업무량을 채우려면 노동시간이 되레 늘어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우체국에서 충전 중인 초소형 전기차.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오토바이로 고중량 택배를 옮기다 보면 사고 위험도 커진다. 우체국본부는 지난해 11월 기준 집배원 안전사고가 전년에 견줘 11.9% 늘었다고 설명한다. 집배원 오현암(40)씨는 “미끄러짐은 수시로 발생한다”며 “무겁고 부피있는 짐들을 실어 나르다 보면 오토바이 중심을 잡기가 힘들다. 바퀴가 앞뒤로 흔들리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초소형 전기차는 안전성에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정사업본부가 도입한 초소형 전기차 1천대 중 에어백을 장착한 차량은 한 대도 없고, 잠김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ABS)이 없는 차량은 700대”라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에만 집배원 19명이 숨졌다. 근무 중 교통사고에 더해 과로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심혈관계 질환, 암, 자살, 기타 질병 및 사고 등이 원인이었다. 2019년 17명, 2018년 25명, 2017년 19명 등 해마다 20명 가까운 집배원들이 숨지고 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5㎏을 초과하는 택배의 80% 이상은 위탁배달원들이 배달하고 있다”며 “초소형 전기차 도입은 효용성과 운영 방법에 대해 연구용역을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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