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의 역사" vs "관광수입 중요".. 동상 논란이 부른 이집트 권력다툼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2021. 2. 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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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수에즈 운하 만든 佛외교관 레셉스
동상 복원 두고 이집트 내부 갈등
레바논에선 솔레이마니 흉상 논란
서구 이란 관계 따라 중동 갈등 확산
지난달 31일 이집트 북부 항구 도시 포트사이드 시민들이 19세기 수에즈운하건성을 주도한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레셉스의 동상 기단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1899년 이 자리에 세워진 동상은 1956년 수에즈운화 국유화를 두고 이집트와 서구가 충돌한 제2차 중동전쟁 발발 직후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철거됐다. 최근 포트사이드 주정부가 관광업 장려를 위해 레셉스 동상을 다시 세울 뜻을 밝히자 찬반양론이 거세다.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지난달 31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약 300km 떨어진 북부 항구도시 포트사이드를 찾았다. 수에즈 운하의 초입 도시로 유명한 이곳의 해안가에 서자 약 5m의 대형 기단이 보였다. 동상은 없었지만 기단 한가운데 새겨진 명패를 통해 원래 동상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 건설을 주도한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레셉스(1805∼1894)였다.

1899년 한 프랑스 조각가가 레셉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이집트에 기증했다. 이후 57년간 포트사이드항을 지키던 동상은 1956년 파괴됐다. 아랍 민족주의를 주창한 가말 압델 나세르 당시 대통령이 “영국과 프랑스 자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다”고 선언한 후폭풍이었다. 국유화에 반발한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 포트사이드를 침공하자 격분한 이집트인은 “제국주의 상징인 레셉스 동상을 부수자”며 행동에 나섰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동상 논란이 다시 불거진 시점은 지난해 7월. 당시 포트사이드 주정부 관계자가 “이집트를 관광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도시 상징물이 필요하다. 레셉스 동상을 복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자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제국주의 상징물을 왜 복원하느냐”는 반대 의견과 “서구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현실론이 맞섰다. 지난해 5월 미국 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의 목 조르기로 숨진 후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 제국주의 시대의 유명인에 관한 동상 철거 움직임이 잇따른 가운데 이 여파가 중동에도 상륙한 셈이다.

○ 역사 바로 세우기 두고 갈등 확산

동상 반대론자들은 수에즈 운하 건설에 150만 명의 이집트 노동자가 동원됐고 이 중 보고된 희생자만 12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날 포트사이드항에서 만난 대학생 무함마드 야히아 씨(24)는 “관광 수입을 위해 레셉스 동상을 다시 세워야 한다면 운하 건설 노역에 동원됐던 이집트 노동자 동상도 함께 세워야 한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유명 의원 무스타파 바크리 또한 “운하 건설 중 숨진 이집트 노동자를 생각하면 레셉스 동상을 다시 설치하는 행위는 일종의 인종차별 범죄”라고 격렬히 반대했다.

최근 주정부는 “공청회를 열어 시민 의견을 더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반대론자들은 “주정부가 형식적인 의견 수렴을 거쳐 결국 동상을 다시 설치할 가능성이 크다. 설치를 강행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실력 행사에 나설 뜻을 밝혔다.

하지만 “지나간 역사 대신 현실을 직시하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항구의 한 기념품 가게 상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이렇게 불경기가 심했던 적이 없다”며 “관광객만 다시 온다면 동상을 세우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찬성했다.

실제 2019년에는 131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이집트를 찾았지만 지난해 3분의 1 수준인 350만 명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수에즈 운하 물동량 또한 12억1000만 t에서 11억7000만 t으로 줄었다. 관광객 감소와 세수 부족으로 고민하는 중앙정부 또한 내심 동상 재설치로 서구 관광객 유치를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 세속주의 군부 vs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도 대립

이집트 정계의 양대 세력인 세속주의 군부와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무슬림형제단’의 태도도 완전히 다르다. 전통적으로 서구권과 긴밀히 협력해온 세속주의 군부는 경제 성장을 중시한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의 전통과 가치를 훼손하는 그 어떤 대상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맞선다.

군인 출신인 압둘팟타흐 시시 현 이집트 대통령은 2013년 무슬림형제단과 가까운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집권했다. 이후 무슬림형제단은 시시 정권과 사사건건 각을 세우고 있다.

양측은 이집트가 무려 1100km의 국경을 맞대고 있는 리비아 사태에 관해서도 완전히 다른 태도를 취한다. 2011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축출된 후 리비아에서는 10년째 수도 트리폴리를 점령한 리비아통합정부(GNA)와 동부 유전지대를 차지한 리비아국민군(LNA)이 내전을 벌이고 있다. 시시 대통령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이며 세속주의 성향이 강한 LNA 지도자 칼리파 하프타르 사령관을 지지한다. LNA를 돕기 위해 이집트군 병력 일부도 파견했다.

반면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GNA를 지지한다. 무슬림형제단은 지난해 11월 평범한 프랑스 40대 남성 역사 교사가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 참수된 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강경 대응을 천명하자 줄곧 마크롱 대통령을 거세게 비판했다. 또 “시시 정권이 이슬람을 무시하는 서구에 나약하게 대처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당시 무슬림형제단은 소셜미디어에 시시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을 동시에 비판하는 게시물을 올리며 일종의 온라인 시위를 벌였다.

즉, 레셉스 동상 논란은 단순한 역사 논쟁을 넘어 이집트 내부의 권력다툼 성격 또한 짙은 셈이다.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주제라는 뜻이다.

○ 종교 갈등 심한 레바논에선 솔레이마니 논쟁

1944년 프랑스에서 독립한 레바논에서도 동상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수도 베이루트 남부 고베이리 지역에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흉상을 세웠다. 지난해 1월 3일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군의 무인기 공격으로 폭사한 솔레이마니의 사망 1주기를 맞아 그의 복수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쿠드스군은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이란의 최고 실세 조직 혁명수비대에서 해외 작전을 담당한다. 주로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 시아파 이슬람이 많은 나라에서 헤즈볼라 같은 현지 시아파 민병대의 군사훈련을 돕고 무기와 돈까지 지원한다. 든든한 후원자 솔레이마니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입은 헤즈볼라는 어떻게든 추모하려는 마음이 강했다.

문제는 다종교 국가인 레바논에 시아파나 헤즈볼라와 뜻을 같이하지 않는 기독교, 수니파 이슬람 또한 적지 않다는 점이다. 헤즈볼라 반대파는 즉각 ‘이란은 베이루트에서 나가라(BeirutFree_IranOut)’는 해시태그로 솔레이마니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헤즈볼라 지지자 역시 ‘솔레이마니는 우리 일부(Soleimani-is-one-of-us)’로 맞섰다. 양측이 일종의 해시태그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동상 반대 주장을 편 한 유명 언론인은 “왜 레바논 국민이 이란 사령관을 추모해야 하느냐”는 글을 올렸다가 헤즈볼라의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레바논은 기독교 분파인 마론교, 수니파 이슬람, 시아파 이슬람, 그리스 정교, 이슬람 분파 드루즈교 등 수많은 종교가 있는 대표적 다종교 국가다. 건국 후 극심한 종교 갈등을 겪다 1989년 3대 종파인 마론교, 수니파, 시아파가 각각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을 나눠 맡는 형태로 권력을 분점해 왔다. 하지만 2018년 총선에서 승리한 헤즈볼라가 친이란 노선을 강화하자 나머지 세력과의 갈등이 심해졌다.

지난해 8월 베이루트 항구에서 당국의 허술한 화학물질 관리로 약 200명이 숨지는 폭발 참사가 발생한 것도 헤즈볼라에 대한 일반 시민의 불신을 키웠다. 이 중 일부가 사고 직후 폭발 현장을 찾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헤즈볼라 치하에서 각종 사고와 경제난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프랑스 식민 지배를 다시 받겠다”고 호소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헤즈볼라에 대한 일반인의 거부감과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미 워싱턴의 터키 국부 동상도 논쟁

터키 국부(國父)로 꼽히는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 동상은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논란에 휩싸였다. 미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각국 대사관이 밀집한 워싱턴 매사추세츠 대로에 위치한 아타튀르크 동상에 ‘나는 인도주의 범죄를 저질렀다’는 문구가 걸렸다. 누가 걸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동 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MEE)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오스만튀르크는 줄곧 기독교인인 아르메니아인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특히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는 아르메니아인이 당시 오스만과 대립하던 러시아에 협조한다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학살을 자행했다. 이로 인해 약 1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터키 정부는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아 논란을 더 키우고 있다.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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