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비 댔으니 보답은 해야지?" 보육원 나온 그녀, 지옥이 시작됐다
“남자친구 만나면 집도 뺏고, 직장도 잃게 만든다고 협박했어요. 보육원에서 나와 당장 갈 곳이 없어서 연락했는데... 후원자라는 사람이 괴물처럼 변했어요.”
서울 구로구의 한 보육원 출신 이모(28·여)씨에겐 10여 년 전 고교 시절부터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는 후원자가 있었다. 고교 성적이 상위권이었던 이씨에게 후원자는 학원비와 책값, 용돈을 지원했다. 이씨는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 후 중소기업 사무직에 취직도 했다. 보육원 출신으론 보기 드물게 성공한 경우였다. 주변의 부러움도 샀다. 다들 “물심양면으로 도운 후원자 덕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씨에게 이 후원은 지옥 같은 굴레였다. 후원자가 일주일에 1~2번씩 찾아와 잠자리를 요구했다. “그동안 (학비와 생활비) 대준 것 보답은 해야지”라고 압박하는 그의 요구를 이씨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씨에게 남자친구가 생기자 후원자는 돌변했다. “당장 헤어지지 않으면 직장을 못 다니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결국 이씨는 보육원 출신을 돕는 한 단체에 도움을 청했다. 이 단체가 “법적 대응하겠다”고 경고하자 후원자는 이씨를 놓아줬다고 한다. 이씨는 “의지할 곳 없는 나에게 후원자는 부모나 다름없었다”며 “10여 년을 그에게 끌려다니는 동안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했다.
만 18세가 되면 무방비 상태로 사회에 내몰리는 ‘보호 종료’ 아이들은 범죄의 덫에 쉽게 걸려든다. 정부에서 주는 자립정착금 500만원과 매달 30만원씩 주는 자립수당으로는 단칸방 하나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겐 당장 먹고 자는 걸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닥친다. 그래서 쉽게 찾는 대상이 앞서 보육원을 떠난 선배들이다. 일부는 그들에게 이끌려 성매매와 사기 등 범죄에 휘말리기도 한다. 노숙생활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고아권익연대 관계자는 “보육원 아이들은 퇴소 후 범죄에 가담하거나 피해를 입으면 도저히 정상적인 자립을 할 수가 없다”며 “자기가 피해를 입고도 또 다시 퇴소하는 후배들을 나쁜 일에 끌어들이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남구의 보육원 출신 김모(25)씨는 2015년 2월 보육원을 나오던 날 보육원 문앞에서 기다리던 선배 한 명을 만났다. 그는 자장면 한 그릇을 사주면서 “휴대폰 개통하는 데 이름만 빌려주면 10만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김씨는 ‘방 구할 돈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덜컥 응했다. 자기 이름으로 휴대폰 5개를 개통해주고 한 대당 10만원씩, 모두 50만원을 받았다. 좋았던 기분은 잠시, 얼마 뒤 휴대폰 요금과 소액결제 요금이 날아들었다. 불과 몇 달 사이 연체요금만 수백만원으로 불어났다. 돌려갚기를 하느라 결국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김씨가 항의하자 선배는 “너도 돈 받았으니 공범이야”라며 겁을 줬다. 김씨는 “그 선배에게 당한 보육원 후배만 13명이었다”고 했다.
정모(24·여)씨는 2016년 초 전남 한 보육원에서 나온 뒤 같은 보육원 출신 선배 A씨의 원룸을 찾아갔다. 먼저 나간 여자 선배가 A씨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여자애들이 지내기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4평 남짓한 그곳에서 남자 선배 셋, 여자 동기 둘이 함께 지냈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A 선배는 성매매 포주였다. 여자 셋은 선배들이 소개하는 사람들과 잠자리를 갖고, 남자들은 약속한 장소로 데려다주는 역할을 했다. 정씨는 “나쁜 일인 줄 알았지만 당장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2019년 말 원룸을 빠져 나와 최근엔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다.
보육원 출신으로 후배들을 돕고 있는 브라더스키퍼 김성민(36) 대표는 “주거지를 제공받는 데 대해 (성매매를 하는데도) 오히려 고마움까지 느끼는 아이들도 있다”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들에겐 성매매를 묵인할 정도로 주거지가 절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 이혼으로 13세 때 서울 용산구 한 보육원에 맡겨진 강모(23)씨는 열아홉 살이 되던 2017년 봄 보육원에서 나왔다.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가 찾아와 자립정착금과 보육원에서 조금씩 모은 통장을 뺏은 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역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사는 신세였다. 강씨는 10개월도 채 되지 않아 맨몸으로 아버지 집을 나왔고, 그때부터 거리를 떠돌았다. 노숙인 쉼터에서 잠을 해결하고, 교회나 봉사단체의 밥차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강씨는 “보육원에 있을 때나 아버지랑 있을 때보다 노숙 생활을 할 때 더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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