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재정준칙, 내용도 형식도 문제..국책연구소도 지적

이기훈 기자 2021. 2. 4.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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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브레이크 아닌 액셀 가능성

문재인 정부 들어 나랏빚이 급증하면서 ‘브레이크’를 걸겠다면서 마련한 ‘한국형 재정준칙’이 헛바퀴를 돌고 있다.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을 받는 데다, 그나마도 현 정부 임기 뒤인 2025년부터 적용된다. 국책연구소에서도 비판이 나올 정도다.

재정준칙은 작년 10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방안으로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GDP)의 60% 이내로,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회에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아직 통과되지 않았다. 여당은 “경기 침체기에 굳이 이런 걸 만드냐”고, 야당은 “너무 느슨해 방만 재정에 ‘면죄부’를 준다”면서 반대한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법제연구원은 최근 공개한 연구 보고서에서 GDP의 60%까지 허용하는 국가채무 비율 기준이 느슨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2016년 제출된 재정건전화법안은 국가채무 45%가 기준인데 이번은 60%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거쳤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국가채무 비율을 43.9%로 추산한다. 2016년 재정건전화법의 기준대로면 남은 한도가 1.1%포인트에 불과하지만, 재정준칙대로라면 16.1%포인트 여유가 있다.

보고서는 한 걸음 더 나가 “재정준칙의 기준을 높게 설정해 오히려 확장적 재정정책의 준거로 활용될 개연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나랏빚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아줄 브레이크가 아니라 거꾸로 액셀러레이터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건전 재정은 한낱 외침으로만 달성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재정 적자를 늘릴 수 있는 예외 사유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정준칙은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발생 우려 등’이 있으면 예외가 인정된다. 현재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건과 비슷하다. 보고서는 “최근 들어 추경 편성이 연례화된 것처럼, 재정준칙도 예외가 상시화돼 도입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고 했다.

재정준칙의 핵심적인 내용이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규정됐다는 점에도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필요에 따라 목표치를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번에 제출된 (재정준칙) 법안은 (핵심 내용이) 법률 형식이 아닌 시행령 형식”이라면서 “(핵심 내용을 법률에 규정한) 2016년보다 후퇴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법제연구원 측은 보고서 취지에 대해 “재정준칙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려면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법적 쟁점에 대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재정준칙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다양한 측면의 법 제도적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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