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멸치에 관한 짧은 명상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2021. 2. 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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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나는 멸치…1g에 20마리 초라한 목숨
후손을 낳고 바로 죽는 하루살이의 생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자연의 위대한 단순함을 보며 탐욕스러운 세상을 되돌아본다

잔멸치 한 봉지를 사다가 간장과 물엿으로 간을 해 볶았다. 주걱질할 때마다 수백 마리씩 엉켜 뜨거운 쇠솥바닥을 훑는 멸치를 보다가 문득 이 물고기의 삶과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 이 생명은 어쩌다 태어나자마자 잡혀 바짝 말려진 뒤 낯선 사내의 부엌에서 들들 볶이고 있는가. 마침 ‘멸치 1g’이 뉴스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월성 원전에서 삼중수소라는 방사성 물질이 엄청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1년에 멸치 1g 먹을 때 삼중수소에 노출되는 수준이라고 했다.

멸치./조선일보 DB

주방용 저울에 멸치를 달아보았다. 보통 고추장에 찍어 먹는 크기의 멸치는 1g에 세 마리였다. 길이 1㎝가 채 안 되는 잔멸치 19 마리를 올릴 때까지 저울 창은 ‘0g’이었다. 한 마리를 더 올리니 숫자는 힘겹게 0g과 1g을 오갔다. 젓가락으로 한 번 쥐어 먹는 잔멸치가 스무 마리쯤 되려나. 월성 원전을 광우병으로 만들려는 사람들 논리로라면, 멸치 한 봉지 볶아 먹는 건 원자폭탄 끌어안고 자폭하는 셈이겠다.

멸치 몸값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고 싶어졌다. 1g 스무 마리라고 치면 200g 한 봉지에 대략 4000 마리가 든 셈이다. 멸치값으로 6000원을 치렀으니 잔멸치 한 마리에 1원 50전꼴이다. 눈·코·입과 뼈와 내장까지 갖춘 완전체 중에 멸치만큼 값싼 것이 있을까. 밥 한 공기와 함께 멸치 200마리쯤 먹었다. 어려서부터 멸치를 즐겨 먹어왔으니, 나의 일부는 이미 멸치다.

멸치는 바다에서 가장 개체 수가 많은 물고기다. 고래부터 오징어까지 우리가 아는 바다 생물 대부분이 멸치의 천적이다. 그러나 최악의 천적은 인간이다. 멸치잡이배가 한번 그물을 끌어올리면 수억 마리가 잡힌다고 한다. 멸치가 그물 안에서 몸부림을 치면 비늘이 떨어져나가 값어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잡자마자 배 위에서 삶거나 쪄 죽인다. 멸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 표정이 무척 황망해 보인다. 찬 바닷속에 있다가 느닷없이 끓는 물에 빠지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에서 멸치를 찌는 조업 방식은 일제가 조선 어장을 침탈하면서 전해졌다. 멸치로 국물을 내는 조리법도 일제시대 이후 생겨났다고 한다.

멸치는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난다. 죽기 위해 사는 것이다. 그래서 겁이 많다. 멸치 잡을 때 어부들은 북과 징을 치고 발 구르며 고함 지른다. 멸치가 혼비백산해 우왕좌왕하며 수면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김류는 “큰 소리로 물고기를 꾸짖으며 잡는다”고 했다. 강원도 어부들은 멸치를 삼태기로 퍼내면서 “메레치가야/ 죽어야지만/ 내가야 산다”고 노래했다. 어부들에게 멸치잡이는 죽느냐 사느냐의 최전선이다.

/일러스트=이철원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모든 동물의 삶이 멸치만큼이나 단순하다. 먹이를 먹고 포식자를 피하고 후손을 낳는 것이 그들 삶의 전부다. 헝가리 티사강(江) 긴꼬리하루살이의 삶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하루살이는 강바닥에서 유충으로 3년을 산다. 매년 6월이면 3년을 채운 하루살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마지막 탈피를 거쳐 우화(羽化)한다. 수백만 마리 하루살이들이 강 위를 가득 메우며 난다. 세 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수컷 하루살이들이 방금 얻은 날개를 맹렬히 휘저으며 암컷을 찾는다. 교미를 끝낸 수컷은 곧바로 죽고 생명을 잉태한 암컷들은 일제히 상류로 날아간다. 5㎞쯤 날아간 하루살이들은 힘이 빠져 물로 떨어진다. 한 마리당 알 수천 개를 낳고 장렬히 죽는다. 그렇게 낳은 알 수십억 개가 강을 따라 하류로 떠내려가다가 부모가 3년을 지낸 강바닥 정확히 그곳에 정착한다.

하루살이는 오로지 후손을 낳기 위해 태어난다. 3년을 물속에 있다가 고작 세 시간을 살며 끝내 생명을 잇는 이 삶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 어떤 위인의 전기를 읽었을 때보다 경건해졌다. 어떤 생명도 하찮을 수 없으며 무슨 이유로도 멸시당해서는 안 된다. 하루살이가 왜 태어나고 왜 자신과 똑같은 자식을 낳는지 알 수 없는 것과, 인간이 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놀라울만큼 똑같다.

멸치나 하루살이의 단순한 삶이 탐욕과 거짓투성이 인간의 삶보다 훨씬 위대하다. 서울·대전 간 고속도로에 너비 1㎞짜리 태양광 패널을 깔아야 생산 가능한 전기를 울진 원전이 만들 수 있다는 칼럼을 읽었다. 그런 원전을 이 정권이 못 짓게 하고 있다. 한쪽에선 멸치 1g 먹는 수준의 방사능 오염이 너무나 무섭다고 맞장구를 친다. 아무래도 인간이 어리석은 것은 머리를 너무 많이 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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