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진상품 마케팅
[경향신문]
진상품은 국왕에게 바치는 지방 특산물을 말한다. 진상품의 종류는 조선시대 재정 백서 및 지리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전부 식재 아니면 약재다. 음식을 진상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향토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진상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부산의 향토음식 동래파전은 삼월 삼짇날 동래부사가 진상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냉동탑차도 아이스박스도 없는 조선시대에 부산 동래구에서 서울 종로구까지 파전을 상하지 않게 배달하는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하다. 설령 상하지 않게 배달했다 한들, 그게 맛이 있겠는가. 재료만 가져와 대궐 앞에서 부쳐 따끈따끈하게 진상하는 방법도 있겠다만, 그걸 동래파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종로파전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진상품이었다는 사실이 맛과 품질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진상품 배정의 첫 번째 원칙은 임토작공(任土作貢)이다. 그 지방의 토산물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두메산골에 마을이 하나 있다고 하자. 이곳은 평지가 적어 벼농사를 지을 수 없고, 사람들은 버섯 따위를 따거나 캐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면 이 마을의 진상품은 버섯이다. 품질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진상할 물건이 버섯밖에 없어서다.
만약 마을 사람들이 부지런히 화전을 일구어 점차 밭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이로 인해 산림이 훼손되어 버섯의 씨가 말랐다고 하자. 그래도 진상품은 여전히 버섯이다. 한 번 정해진 진상품은 여간해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토산물을 진상한다는 원칙은 무너지고, 진상품을 마련하려면 웃돈을 주고 어디선가 사 와야 했다. 이 같은 불산공물(不産貢物)의 폐단이 대동법 시행을 촉진했다.
진상품 배정의 두 번째 원칙은 한양과의 거리다. 생선은 상하기 쉬우니 한양과 가까운 경기 고을에 배정하고, 건어물이나 젓갈은 멀리 떨어진 영남과 호남의 바닷가 고을에 배정한다. 경기에서 잡히는 생선이 더 맛있거나 영남산 젓갈의 품질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상하지 않는 게 우선이다. 임금님이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다. 신선식품을 배정받은 고을에서는 상하지 않게 얼음을 채워 진상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래도 부패를 피할 수 없어 관련자들이 문책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처벌을 받는다고 끝이 아니다. 다시 올려보내야 하니 비용이 갑절로 든다. 중간에 드는 각종 수수료도 만만치 않다. 이런 정기 진상이 매달 0.5~2회에 달했고, 이와 별도로 바치는 특별 진상도 있었으니 아주 부담스러웠다. 이 때문에 혹자는 진상품을 ‘공출’ ‘수탈’이라고 비난하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진상품의 종류와 진상 시기, 절차는 모두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명목은 국왕에게 바치는 물건이지만 국왕이 전부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의 제사와 손님 접대에 쓰기도 하고, 관청의 비용으로 지급하거나 신하들에게 선물로 나눠주기도 했다. 진상품은 국가 재정의 한 축을 이루었다. 일종의 세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동법 시행 이후로도 진상품은 현물 납부가 원칙이었지만, 차츰 돈이나 쌀로 대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진상품을 올려보내고 행여 상할까 전전긍긍하기보다 돈으로 바치는 게 속 편하다. 궁중에서는 그 돈으로 시장 상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사다 썼다. 결국 임금님 입에 들어간 음식은 거의 다 한양 시장에서 구입한 식재료로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조선시대 진상품은 원래 각 지방의 흔한 토산물이었다. 맛과 품질이 딱히 뛰어나다고 보기도 어렵다. 소비자의 무지와 허영을 이용하는 진상품 마케팅은 아무나 못 먹는 귀한 음식이라는 희소성을 내세워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한다. 우리는 이미 수라상을 능가하는 맛과 품질의 음식을 먹고 있다. 임금님도 못 먹은 음식을 먹고 있으면서 굳이 진상품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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