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일본 전통 자기에 새겨진 알파벳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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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C.' 새와 꽃잎 문양이 그려진 청화백자 한가운데 난데없이 큼지막한 알파벳이 적혀 있다.
중국 청화백자를 모티브로 17세기 후반 일본 아리타(有田) 지역에서 만들어진 자기(瓷器)다.
16세기 유럽에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후 VOC는 일본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에 지사를 세우고 일본 자기 매입에 적극 나섰다.
당시 유럽 귀족층 사이에서 중국, 일본 자기를 사들여 저택 곳곳을 장식하는 게 유행일 정도로 인기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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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둘러본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도자실’은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도자기가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거쳐 멀리 유럽인들을 매혹시킨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자기 전시 코너는 유럽에서 각광받은 아리타 자기의 예술적 성취 뒤에 조선인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사가현에 끌려온 도공 이삼평 등 규슈지역 조선 장인들의 계보도를 전시한 것. 이삼평은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수재료인 고령토를 수년간 찾아 헤맨 끝에 아리타 근처 이즈미야마(泉山)에서 발견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리타 자기가 탄생한 배경이다.
유럽인들이 숱한 시행착오 끝에 18세기 이후 세계 도자기의 표준이 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과정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작은 미미했다. 전시 후반부에 이르면 중국 청자와 이를 모방한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기가 나란히 진열돼 눈길을 끈다. 이 중 17세기 후반 제작된 델프트 도기 접시는 17세기 전반 중국 명나라 경덕진요에서 생산된 청화백자 접시와 비교하면 한눈에 봐도 둔탁한 색상에 조잡한 조형미가 느껴진다. 당시 유럽인들은 양질의 고령토에 가마 온도를 1200도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자기 제작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연금술사까지 동원해 약 100년 동안 자기 생산에 도전한 유럽인들의 집요함은 끝내 빛을 발하게 된다. 18세기 들어 독일 마이센 자기 등 양질의 자기 생산에 성공한 것. 일본 가키에몬 양식의 마이센 채색 자기는 동서양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 경지를 보여준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네덜란드 국립도자박물관과 흐로닝언박물관에서 113점의 자기를 대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이례적으로 양측 큐레이터의 상호 방문 없이 영상회의로 유물 대여를 진행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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