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반발에 '공매도 금지' 5월2일까지 연장
"당국, 정치권 등 의식해 후퇴" 지적
3월 15일 종료 예정이던 주식 공매도 전면 금지가 5월 2일까지 연장된다. 5월 3일부터는 코스피200, 코스닥150 등 시가총액이 큰 대형주에 한해 공매도가 재개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공매도 재개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큰 만큼 5월 3일부터 부분적 재개를 통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내 증시에서 시가총액과 거래량이 많은 코스피200 종목과 코스닥150 종목이 재개 대상이다. 나머지 2037개 종목은 공매도 부분 재개 효과와 시장 상황 등을 감안해 추후 재개 시점을 결정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추가 금지 기간에 기관과 외국인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평가를 받는 공매도 제도를 개선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4월부터 불법 공매도에 대한 1년 이상 징역형의 형사 처벌과 과징금이 새로 도입된다. 개미들이 공매도를 위해 빌릴 수 있는 주식 물량도 3조 원가량 확보한다.
이번 결정으로 지난해 3월 16일부터 시행된 공매도 금지 조치는 1년 2개월간 이어지게 됐다. 코스피 3,000시대를 열 만큼 증시 상황이 좋아지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공매도 재개를 권고했는데도 개인투자자들의 반발과 이에 편승한 정치권을 의식해 금융당국이 한발 물러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5월부터 대형주만 공매도 재개… “4월 보선 개미票 의식했나”
공매도 재개 논란을 연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우려를 해소하려면 부분 재개가 시작되는 5월 3일까지 개인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보완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3일 브리핑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인 공매도를 완전 금지하거나 무기한 금지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면서도 “홍콩식 ‘부분 공매도’ 방식을 참고해 일부 종목에 대해 부분 재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홍콩은 시가총액과 주식 회전율(주식 보유자가 바뀌는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인 종목에 한해 공매도를 허용한다. 금융위도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의 각각 88%, 50%를 차지하는 코스피200 및 코스닥150 종목에 한해 5월 3일부터 공매도를 재개하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때 공매도 금지에 나섰다가 현재까지 유지하는 국가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정도다. 공매도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주요 증시는 홍콩뿐이다.
당국은 당초 3월 16일 공매도를 재개하려다가 개인투자자들과 여권의 반발, 미국의 반공매도 세력이 주도한 ‘게임스톱 사태’ 등이 겹치며 ‘추가 금지 후 부분 재개’로 시간을 벌었다. 금융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정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를 전면 재개하기엔 부담이 됐을 거라는 평가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국으로선 고육지책으로 절충안을 내놨을 것”이라고 했다. 증권가에서는 4월 재·보궐선거 시기를 고려해 5월로 재개 시점을 잡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금융위는 남은 기간에 개인투자자들의 불신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우선 불법 공매도에 대해 최대 30년의 징역형과 주문 금액만큼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시행된다. 개인들이 공매도를 위해 안정적으로 주식을 빌릴 수 있도록 대여주식 물량을 3조 원가량 확보하는 한편 투자자 보호를 위해 투자 한도에 차등을 두기로 했다.
하지만 우량주 350개 종목을 제외한 나머지 2037개 종목의 공매도 재개 시점은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종목별 수급 양극화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형주만 공매도가 가능해지면 적은 금액으로도 시세 조종이 가능한 소형주에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홍콩에서도 공매도가 안 되는 종목은 가격 효율성 등이 떨어진다는 연구가 있다”며 “공매도 금지 조치의 효과가 시장에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금지가 연장됐다”고 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 글로벌 기관은 국가별 신용등급을 평가할 때 공매도를 주요 평가 요소로 꼽고 있어 공매도 금지가 완전히 풀리지 않으면 한국이 ‘공매도 금지국’으로 낙인찍혀 외국계 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금융투자업계는 개인투자자의 불안감을 고려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미봉책이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개인투자자 단체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사이트엔 “부분이라도 왜 재개하는가” “선거 끝날 때까지만 금지하고 제도 개선은 없다” 등의 글이 달렸다.
박희창 ramblas@donga.com·김자현·신지환 기자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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