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하나뿐인 가짜 렌즈의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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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고대 모래밭에서 야영을 하며 불을 피우던 중동인들에 의해 가장 먼저 발명되었다지만 그릇이 아닌 광학으로서 유리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6세기, 우리가 잘 아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유리를 렌즈로 가공해 망원경을 만들어 목성을 관측했고, 폰 프라운호퍼는 그가 만들 고퀄리티의 프리즘으로 분광학이라는 학문을 개척했다.
그러나 소문이 소문을 낳으며 세계에서 가장 밝은 렌즈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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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는 고대 모래밭에서 야영을 하며 불을 피우던 중동인들에 의해 가장 먼저 발명되었다지만 그릇이 아닌 광학으로서 유리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6세기, 우리가 잘 아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유리를 렌즈로 가공해 망원경을 만들어 목성을 관측했고, 폰 프라운호퍼는 그가 만들 고퀄리티의 프리즘으로 분광학이라는 학문을 개척했다. 광학유리가 사진에 도입된 지 이제 200년이 되어간다. 최근 과학계는 액상 렌즈나 나노 물질을 이용한 첨단 렌즈를 개발하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인류는 유리로 만든 렌즈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다.
지난 한 세기 광학렌즈의 발전은 밝기에 달려 있었다. ‘어두운 빛에서도 얼마나 빨리 셔터를 끊을 수 있는가’는 렌즈 조리개 밝기의 성능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일본이 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어 독일과 경쟁을 벌이던 당시, 믿을 수 없는 렌즈가 하나 등장한다. 카를 차이스에서 만든 ‘슈퍼 Q 기간타르 40㎜ f/0.33’이다. 단 하나뿐인 이 렌즈는 2011년 유명 사진 경매장에서 ‘세계에서 가장 밝은 렌즈’라는 평가와 함께 우리 돈 1억원에 낙찰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후로 이 렌즈를 이용한 사진이 단 한 장도 공개된 일이 없다는 것이다.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실을 찾아 나섰다.
렌즈 경쟁에 몰두하는 현실 풍자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1960년대에 캐논은 f/0.95라는 놀라운 밝기의 50㎜ 렌즈를 출시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차이스 이콘의 홍보 담당자 헤르 볼프 베흐란은 1966년 세계적인 사진 기자재 전시인 포토키나에서 밝은 렌즈가 대세임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렌즈 디자인 부서를 돌아다니던 그는 마침 커다란 집광용 콘덴서 렌즈를 발견하고는 즉석에서 디자이너들과 렌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카를 차이스 고유번호까지 부여한 이 급조된 렌즈는 즉석에서 40㎜ f/0.33으로 결정된다. 이름은 슈퍼 Q 기간타르. ‘거인 렌즈’라는 뜻이다.
그런데 슈퍼 Q 기간타르의 Q는 독일어로 난센스라 번역되는 ‘Quatsch’의 첫 글자다. 사실 홍보 담당자와 디자이너들은 해상도는 제쳐두고라도 밝은 렌즈 경쟁에만 몰두하는 당시 유행을 슬쩍 비꼰 것이다. 즉, 슈퍼 Q 기간타르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가짜 렌즈였다.
그러나 소문이 소문을 낳으며 세계에서 가장 밝은 렌즈가 되고 만다. 차이스에서는 쉬쉬하며 잊히길 기대했겠지만 역사는 ‘카더라’라는 기록을 남겼고, 렌즈는 어느새 회사를 빠져나와 경매에 오른 것이다. 1억원이나 주고 낙찰받은 렌즈 주인으로서도 난감하기 그지없는 진실일 터이다.
당시에 더 난감한 일이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이 소문을 듣고 ‘우주에서 사용할 가장 밝은 렌즈’를 차이스 사에 요청했다. 결국 차이스 사는 수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f/0.7 렌즈 10개를 만들어 6개를 겨우 나사에 납품할 수 있었다. 이 렌즈들이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밝은 렌즈로 기록되고 있다. 차이스는 나머지 4개를 보관하고 있다가 1975년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에게 3개를 판매한다. 큐브릭은 이 렌즈를 이용해 오직 촛불의 빛만으로 영화 〈배리 린든〉을 완성하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운다.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다.
이상엽 (사진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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