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를 느리게 해서 '슬로핸드'냐고?

배순탁 2021. 2. 4.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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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전까지만 해도 해외 자료 구하기란 일종의 권력이었다.

게다가 영어를 전문적으로 배운 평론가가 많지 않아 잘못된 해석이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테크니션의 역할은 공연 전까지 연주자의 요구에 맞춰 악기를 세팅하고, 중간에 사고가 발생하면 해결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하긴, 크림(Cream) 시절의 강렬한 연주와 '레일라(Layla)' 정도만 들어봐도 '슬로핸드'에 대한 과거의 치명적 오역이 완전히 '뇌피셜'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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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턴의 별명인 '슬로핸드'는 '느린 연주'를 의미하지 않는다. 치명적 오역의 하나다.
ⓒEPA2020년 3월4일 영국 O2 아레나에서 열린 ‘뮤직 포 더 마스든’ 콘서트에서 연주하고 있는 에릭 클랩턴.

2000년대 전까지만 해도 해외 자료 구하기란 일종의 권력이었다. 게다가 영어를 전문적으로 배운 평론가가 많지 않아 잘못된 해석이 정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쭉 하다가 사례를 한번 모아보기로 했다. 이른바 잘못 전해온 해석 바로잡기다.

노 우먼 노 크라이(No Woman No Cry) / 밥 말리 & 더 웨일러스(1974)

장르 그 자체가 된 뮤지션 혹은 밴드가 있다. 농구 하면 마이클 조던인 것처럼 레게 하면 우리는 밥 말리를 떠올린다. 그중에서도 이 곡 ‘노 우먼 노 크라이’가 갖는 상징성이야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아무리 레게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곡의 비트와 멜로디 정도는 대충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과거 이 곡 제목의 해석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여자가 아니면 울지 않는다.” 물론 완벽하게 엉터리라고 확언할 수 있는 오독이다. 이 곡의 정확한 해석은 이렇다. “안 돼, 여자여, 울지 마오.” 물론 여기에서의 여자는 당시 최악의 빈부격차로 인해 고통에 빠져 있던 자메이카 국민을 의미한다.

어 케이스 오브 유(A Case of You) / 조니 미첼(1971)

조니 미첼의 대표작 〈블루(Blue)〉에 수록된 곡이다. 〈블루〉는 2020년 〈롤링스톤〉이 선정한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한 걸작이기도 하다. 이 곡은 노랫말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특히 곡 제목이 나오기 바로 전까지 진행된 줄거리가 중요하다. 축약하자면 대략 이렇다. 일종의 러브송이라고 보면 된다. “오, 당신은 마치 성스러운 와인처럼 내 혈관을 흘러요. 그 맛은 참으로 쓰고, 정말이지 달콤하죠.” 그러고는 이렇게 노래한다. “Oh, I could drink a case of you, darling.” 그렇다. ‘당신이라는 경우’, ‘당신이라는 케이스’ 다 틀렸다. ‘A Case of You’는 ‘당신이라는 술 한 짝’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실제로 Case는 술통을 세는 단위로 쓰인다.

슬로핸드(Slow hand) / 에릭 클랩턴(1977)

슬로핸드는 에릭 클랩턴의 별명이다. 1977년 발표한 앨범 타이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연주를 느리게 해서 붙은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보통 라이브를 하게 되면 테크니션이 연주자마다 따라붙는다. 테크니션의 역할은 공연 전까지 연주자의 요구에 맞춰 악기를 세팅하고, 중간에 사고가 발생하면 해결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그런데 에릭 클랩턴은 공연하는 도중 기타 줄이 끊어지면 테크니션이 세팅한 기타를 쓰지 않고, 새 기타를 직접 튜닝하는 걸 선호했다고 한다. 따라서 다시 연주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시간에 관객들은 뭘 했겠나. “연주 빨리 다시 하라”는 의미로 다같이 박수를 쳤다고 한다. 이걸 ‘슬로 클랩(Slow Clap)’이라고 부른다. 이 광경을 본 매니저가 “슬로 클랩 들으면서 기타 줄 갈고 있으니 넌 슬로핸드네”라고 놀린 게 아예 별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긴, 크림(Cream) 시절의 강렬한 연주와 ‘레일라(Layla)’ 정도만 들어봐도 ‘슬로핸드’에 대한 과거의 치명적 오역이 완전히 ‘뇌피셜’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처럼 유독 템포가 느린 곡만 사랑받았기 때문이었을 확률이 높다. 혹시 내가 쓴 글이 뇌피셜 아니냐고? 에릭 클랩턴 자서전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이다.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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