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황금 변기솔 시위

배연국 2021. 2. 3.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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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체제에서 벗어난 구소련 독립국가들은 저마다 민주화를 위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다.

이번엔 구소련 종주국이던 러시아의 군중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항의해 '황금색 변기솔'을 들었다.

황금색 변기솔은 푸틴 대통령의 호화 궁전을 풍자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100년이 지난 후 그의 나라에선 최고 권력자 혼자만 황금 변기의 안락을 누리고, 가난한 국민들은 황금색 변기솔을 들고 절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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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체제에서 벗어난 구소련 독립국가들은 저마다 민주화를 위한 통과의례를 치러야 했다.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부르짖은 나라는 조지아였다. 2003년 대통령 일가의 부정부패에 지친 조지아 국민들은 빨간 장미를 들고 수도 트빌리시의 자유광장에 모였다. ‘장미혁명’의 시작이었다. 장미의 물결은 금세 수만으로 늘어났고, 마침내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민주화 바람은 인접국가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이듬해 우크라이나에선 ‘오렌지혁명’이 일어났다. 집권층의 선거 부정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야당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으로 거리를 뒤덮었다. 이들은 오렌지색 옷을 입거나 목도리를 걸쳤고 오렌지색 깃발을 휘둘렀다. 결국 국제선거감시단의 입회하에 재선거가 치러져 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뒤이어 2005년 키르기스스탄에선 ‘튤립혁명’이 터졌다. 여당이 총선에서 매표와 언론조작 등 선거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시위대는 북부 산악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 튤립을 혁명의 상징으로 내걸었다. 수천 명이 대통령궁을 점거했고, 대통령은 러시아로 달아났다.

이번엔 구소련 종주국이던 러시아의 군중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항의해 ‘황금색 변기솔’을 들었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감금된 후 전국 100여개 도시에서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들 시민의 손에는 황금색 스프레이 물감을 칠한 플라스틱 변기솔이 하나씩 쥐어져 있었다. 황금색 변기솔은 푸틴 대통령의 호화 궁전을 풍자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나발니는 푸틴이 소유한 1조원대 대저택에 개당 95만원짜리 황금 변기솔이 비치돼 있다고 폭로했다. 러시아에서 최저 생계비 이하로 생활하는 극빈 인구는 1000만명에 이른다.

1921년 레닌은 “공산주의가 온 세상에 도래하면 누구나 이용하는 공중화장실에까지 황금 변기가 설치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100년이 지난 후 그의 나라에선 최고 권력자 혼자만 황금 변기의 안락을 누리고, 가난한 국민들은 황금색 변기솔을 들고 절규한다. 붉은광장에 잠든 레닌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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