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미관계 개선 염두 석방 결정..선사 결정으로 13명 잔류
이란이 지난달 4일 페르시아만의 환경을 오염시켰다는 이유로 억류했던 한국케미호 선원을 ‘전격’ 석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선박 유지를 위한 필수 인력이 필요하다는 선사의 입장 때문에 실제 귀환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리게 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3일 언론 브리핑에서 “전날 공개한 대로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차관이 (20명의 선원 중) 선장을 제외한 선원 19명의 억류를 우선 해제하고, 사법절차를 진행하는 선장에 대해서도 인도적 처우와 충분한 영사조력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이 오염 조사를 위해 선박 억류는 계속한다는 입장이어서 선원들의 귀환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다. 또 다른 당국자는 “선사는 선박의 전체적 운영·관리를 위해 필수 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외교부·해양수산부 등과 협의하며 필수 인력을 정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선사가 제시한 필수 인력은 13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설 전에 선원들이 돌아올 수 있느냐는 물음에 “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의 이번 결정은 한-이란 간 ‘핵심 현안’인 이란 자산 70억달러(약 7조6천억원)의 동결 해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라 눈길을 끈다. 이란이 이런 호의적인 조처를 내놓은 이유는 두 갈래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사건 발생 뒤 문제 해결을 적극 시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특히, 동결자금에서 이란의 유엔 분담금을 납부하는 문제가 가닥이 잡히고, 의약품 수출 규모가 지난해 6개월 동안 150억원에서 지난 두달 256억원으로 대폭 늘어난 것 등 한국 정부 의지가 전달됐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교부는 지난달 14일 협상단이 돌아온 뒤 이란과 14차례에 걸친 의사소통을 진행했다. 그 때문인지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2일 “한국 정부의 요청” 등에 따라 “선원들이 인도적 차원에서 이란을 떠날 수 있게 허용했다”고 밝혔다.
둘째는 국제 정세의 변화다. 이란의 이번 억류 조처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어모은 이유는 ‘미묘한 타이밍’ 때문이었다. 이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헌신짝처럼 내다 버린 ‘이란 핵협정’ 복귀를 공언해온 조 바이든 신임 대통령의 취임을 코앞에 둔 시점에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 나포 전날은 ‘이란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암살 1주년이었고, 당일인 4일엔 이란이 핵협정의 제약을 깨고 농축도(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이상) 20%의 우라늄 생산을 재개했다. 새 미국 행정부와 관계 설정에서 강경파들이 힘을 받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이 1일 미국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우린 관계를 재설정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미국도 서둘러야 한다”고 밝히는 등 대미 정책을 둘러싼 이란 내부 논쟁이 ‘온건론’ 쪽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미국 역시 지난달 29일, 2015년 핵협정 체결에 핵심적 구실을 했던 로버트 말리를 이란 담당 특별대표로 임명하는 등 대이란 외교에 시동을 걸고 있다.
남은 문제는 동결자금과 관련해 정부가 이란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느냐이다. 정부는 “한국이 독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미국과 협의가 필요한 문제는 대미 협의를 투명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동결자금으로 코로나19 백신을 포함한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인도주의적 물품을 구입해 이란에 전달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아가 이란과 지속적 협의를 통해 ‘인도주의적 물품’의 범위를 늘려가는 방안 등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이란 핵협정 복귀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의 협상이 성과를 내면, 동결자금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길윤형 김지은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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