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엘리베이터 타세요".. '배달 갑질' 아파트 절반 이상 강남 왜?
“저한테 뭐라 하지 마시고….”
서울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로비에서 배달기사와 보안요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배달기사가 직접 녹음해 제보한 음성 파일에서 이 배달기사는 강경한 보안요원의 지시에 결국 화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배달기사 대표단체는 이처럼 화물 엘리베이터만 타도록 강제하거나 신분 확인을 위해 출입 시 개인정보를 적게 하는 등 소위 ‘갑질’을 일삼은 것으로 전해진 아파트 103곳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 침해 문제가 제기된 아파트 중 절반 이상이 강남권에 위치한 가운데 서초구 배달중계플랫폼 ‘요기요’ 본사에 배달을 간 기사조차도 화물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야 했다는 단체 측 주장이 나왔다.
◆화물 엘리베이터 타고 신분증 맡기기도… “CCTV에 얼굴 보여줘야”
배달기사 대표단체 ‘라이더유니온’은 인권위에 이른바 ‘갑질 아파트’에 대한 개선 및 정책 권고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단체는 이에 앞서 서울을 비롯한 4개 시도 라이더들로부터 사례를 제보받았고 이를 토대로 103곳의 아파트 명단을 추렸다.
단체에 따르면 배달기사들은 아파트로부터 ‘위험인물’처럼 취급당했다. 음식 냄새가 나거나 복장이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준다는 등의 이유로 기사들은 일반 엘리베이터가 아닌 화물 엘리베이터만 타야 했다. 비 오는 날에는 ‘바닥이 더러워진다’며 비옷을 벗어야만 아파트에 들어오도록 하는 곳도 있었다.
절도 등의 범죄예방을 명분으로 배달기사의 휴대전화 번호 등 개인정보를 적게 하거나 신분증, 개인물품을 맡기게 하기도 했다. 한 아파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 우려에도 인상착의 확인을 위해 배달기사가 헬멧과 마스크를 벗고 엘리베이터 안의 폐쇄회로(CC)TV 카메라를 쳐다보게 하기도 했다.
갑질아파트로 지목된 103곳 중 절반 이상은 ‘강남3구’에 있었다. 특히 강남구가 47곳으로 압도적이었으며 서초구 9곳, 송파구 2곳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외에 △양천구 7곳 △서대문구 7곳 △영등포구 7곳 △동작구 5곳 △성동구 4곳 등에서 갑질 제보가 나왔다.
유독 강남권에 ‘갑질 아파트’ 제보가 많은 이유는 뭘까.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은 “아무래도 강남 쪽에 아파트가 많아 배달 건도 많다 보니 제보도 많은 측면도 있긴 하다”면서도 “최근 들어 주상복합 아파트들의 관리 방식이 바뀐 경우가 많아서 과거보다 갑질을 경험하는 배달기사들도 훨씬 더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배달기사가 많다고 한다. 구 팀장은 “배달하러 갔는데 지저분한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면 마치 자신이 화물처럼 취급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워낙에 배달 일이 바쁘니 일일이 항의하지 못하지만 그게 배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인가 싶어 모멸감과 회의감이 들 때가 많다”고 전했다.
인권위 진정은 배달기사들과 아파트 측의 갈등을 줄이기 위한 합리적인 해결책 도출이 목적이라는 것이 라이더유니온의 입장이다. 구 팀장은 “만약 아파트 정책상 차량 출입과 배달기사들의 일반 엘리베이터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면 주민이 직접 로비 등에 내려와 배달 음식을 받아주면 된다”며 “인권위나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에서 해결책 마련을 위해 시정권고 등을 내려주셔서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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