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길들이기? 판사 탄핵 추진 반대를 반대하다

이지혜 기자 2021. 2. 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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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롭고 공정하지 못한 재판 한 법관들에 경고 의미"
지난 2018년 11월 19일, 전국 법원 3,000여명의 판사들을 대표하는 법관대표 119명 중 114명이 한 자리에 모여 이른바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했습니다. 대구지법 안동지원 법관 6명이 탄핵 촉구 결의안 발의를 제안한 지 일주일 만에 전국 각급 법원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성사된 자리였습니다. 2시간 반 토론 끝에 과반수 이상의 동의로 이런 결의를 내놓았습니다.
2018년 11월 19일 법관대표회의

"우리는 법원행정처 관계자가 특정 재판에 관하여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방향을 논의하고 의견서 작성 등 자문을 하여 준 행위나 일선 재판부에 연락하여 특정한 내용과 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절차 진행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징계절차 외에 탄핵소추절차까지 함께 검토되어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행위라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한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일산 사법연수원 밖에서 떨면서 중계를 준비했습니다. 손석희 당시 앵커가 질문했습니다.

[앵커: 그러면 국회에서도 아직 탄핵 논의가 활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위헌이라면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고요. 그래서 오늘 결의문을 무시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혹시?"]

'국회' 논의가 활발하지 않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과연 법관 탄핵이 추진되겠느냐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그냥 무시하기는 어려워보인다"고 답했습니다. "공론화가 이뤄지고 있어 국회 차원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 실종된 논의...잇단 무죄와 변호사 개업

제 예단은 사실상 틀렸습니다.

2년 넘게 국회는 논의를 '묵혔'습니다. 공론화하지 못했습니다. 국회는 '그냥 무시'하고 있었고 논의는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 힘)은 "사법부가 판사 탄핵 소추에 개입하는 것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법관대표회의의 결의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판사들이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사회를 관통한 여러 굵직한 이슈들에 밀려 '사법농단'은 옛이야기로 전락한 지 오래였습니다.

초유의 대법원 자체 조사, 대대적인 검찰 수사가 무색해져갔습니다. 법조계에서는 법관들의 '직권남용 혐의' 무죄 판결이 잇따랐습니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전현직 법관 14명을 기소했지만 직권남용 혐의가 법원에서 인정된 것은 단 한 건도 없습니다. 법원 내부 징계도 정직 6개월이 최고 수위에 그쳤습니다. 저명하다는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부적절한 행위냐 형사처벌 대상이냐는 다른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구속영장까지 청구됐던 고영한 대법관만 해도 사표를 내고 버젓이 변호사가 됐습니다.

〈YONHAP PHOTO-3043〉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임성근 법관탄핵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소영(왼쪽부터), 이탄희, 박주민, 전용기 의원이 2일 국회에서 '임성근 법관 탄핵'과 관련해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1.2.2 zjin@yna.co.kr/2021-02-02 15:24:46/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상황이 반전된 건 2021년 새해가 밝으면서였습니다. 사법농단 폭로 당사자였던 이탄희 의원이 선봉에 서서 '사법농단' 주역으로 지목된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임 부장판사의 임기가 오는 28일 만료되는 게 국회 논의에 불을 지폈습니다. 임 부장판사는 산케이 신문을 비롯한 3건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역시 1심에서 무죄를 받고 항소한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2일 뒤늦게나마 의결정족수 151인을 넘긴 161인 발의로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됐습니다. 본회의 표결은 4일, 이를 앞두고 법관 탄핵 이슈는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가 됐습니다. 함께 탄핵이 추진됐던 이동근 판사는 제외됐습니다.

◇ '사법부 길들이기' 비판도..."법관 자성에서 시작"

'왜 하필 지금이냐'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법관 탄핵 지지층, 반대층 양측에서 다 지적합니다. 지지층은 탄핵 대상이 된 임성근 부장판사가 28일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오지 않고 각하될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반대층은 사법부 길들이기라며 법관 탄핵을 정치적 소재로 삼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2년 전과 동일하게 '정치적 소재로 삼지 마라'는 겁니다.

시기적으로 늦은 건 분명해 보입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면 헌법재판소가 180일 내에 탄핵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구두진술을 필요로 하는 탄핵심판 사건의 경우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잔여 기간은 불과 25일입니다.

시점상 불리하지 않냐는 제 질문에, 이 사안을 오래도록 지켜봐온 한 판사는 "시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임기 만료된 임 판사를 상대로 헌법재판소가 각하 결정을 내릴 거라고 예단하는 게 정치적"이라고 했습니다. 헌재가 언제 판단을 내릴지 모르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YONHAP PHOTO-4726〉 민주당, '사법농단' 연루 임성근 사실상 탄핵추진 (서울=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해 탄핵소추를 추진하기로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판사 출신 이탄희 의원이 이르면 29일 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면, 자유표결에 부치겠다는 입장이다. 사진은 임성근 부장판사. 2021.1.28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2021-01-28 20:44:17/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임 판사의 행위가 '중대한 헌법 위반' 사유에 해당하는지 헌법재판소가 함께 결론을 내릴텐데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법관들 전체를 협박하려고 했다기 보다는 위헌적, 위법한 법률행위를 한 법관이라면 반드시 처벌될 수 있다, 신분이 박탈될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고 의미부여했습니다.

그리고 '사법부 길들이기' 지적에 대해서는 "법관 사회의 자성에서 문제제기가 시작된 것"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아직 현직에 남아 있는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이 많습니다. 검찰에서 비위 행위가 있다며 대법원에 판단을 넘긴 법관 수만 66명입니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법관 정기인사를 발표했습니다. 이달 22일자로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명예퇴직처리 됩니다. KTX 해직자 해고무효소송에 관련된 문건을 작성한 혐의를 받은 인물입니다. 대법원 징계위원회에서 감봉 징계를 받았다가 재판에 복귀한 김민수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도 포함됐습니다. 이른바 행정처 사찰 문건 피해자인 차성안 판사도 사표를 내 퇴직하게 됐습니다.

이번 법관 탄핵에 대한 판단은, 법관은 '무소불위의 권력' 아니고 위법 위헌적 행위를 한 것이 맞다면 법복을 벗어야 할 수 있다는 '경종'의 의미를 지닙니다. 임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 논의,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결론이 내려질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끝으로, 지난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 내용을 다시 한번 봅니다.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기관인 공무원이 법을 어긴 사안에 헌재 판단은 어땠는지, 되새겨봅니다.

"결국 피청구인(박근혜)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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