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동결자금 압박 성과 판단..한국과 관계 악화엔 부담
[경향신문]
국내 묶인 70억달러, 미국 결단에 달려…한국과 해결책 모색
정부 당국 “유엔 분담금 대납, 미국과 협의 끝나 막바지 단계”
이란 정부가 지난 2일 한국 내 계좌에 동결된 원유대금 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억류 중인 한국의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의 선원을 석방하기로 결정한 것은 여러 가지 전략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란 정부는 처음부터 ‘해양오염’을 선박 억류 이유로 내세웠지만,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따라 한국에 동결된 자금 70억달러를 돌려받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이란이 선박 억류 한 달이 가깝도록 해양오염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의 개입과 결정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조치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란 정부는 선박 억류를 통해 미국의 관심을 끌고 한국에도 동결자금 해결에 대한 시급성을 충분히 경고하는 등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해 석방을 결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란 정부는 또 한국과의 관계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선박 억류가 장기화됨에 따라 양국관계가 훼손되고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일단 선원들을 석방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3일 기자들과 만나 “이란은 한국과의 우호적 관계, 인도적 고려 등으로 선원들을 석방했다고 발표했다”며 “이번 사태 발생 이후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방문해 광범위하게 소통을 했고 이란 측 인사들과 꾸준히 접촉하면서 동결자금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전달된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최 차관은 이란의 선원 석방 발표가 나온 직후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차관과 통화하면서 동결자금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양국 간 전통적 우호관계를 회복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한국이 동결자금으로 의료장비나 코로나19 백신을 구입해 이란에 전달하거나, 유엔의 분담금을 대납하는 등의 방안을 협의하고 있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유엔 분담금 납부 문제와 관련, “거의 해결이 돼 가고 있다”며 “분담금을 (동결자금으로) 낸다는 것은 (미국과) 협의가 끝났고 굉장히 기술적 부분만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방법으로 70억달러를 돌려주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미국의 협조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아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뤄진 이란 제재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이란 핵합의(JCPOA) 복원을 위한 협상에 나설 뜻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란 정부의 선원 석방 결정에도 불구하고 선박은 여전히 억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이란은 선박과 선장에 대한 억류는 풀지 않았으나 나머지 선원들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귀국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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