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권위의 사형제 폐지 의견, 이번에는 헌재가 수용해야
[경향신문]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냈다. 헌재는 천주교계가 2019년 2월 사형제도가 위헌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인권위는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았다”며 “ ‘인혁당재건위 사건’처럼 오판으로 무고하게 제거된 생명의 가치는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강조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사형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로 인간 존재의 근원인 생명을 빼앗는 극형이다. 형벌이 범죄에 대한 응보의 성격을 가지므로 살인과 같은 악행에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형벌의 본질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반인륜적 범죄가 등장할 때면 사형하자는 여론이 비등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사형제는 사형수의 인권 침해는 물론이고, 법관 등 사형 선고·집행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양심의 자유를 훼손한다.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되면 원상 회복이 불가능하다. 사형제의 목적 중 하나인 범죄자의 영구적 격리는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으로 달성할 수 있다. 흔히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를 얘기하지만 범죄자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더욱 흉포한 제2, 제3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범죄 발생에는 개인의 일탈도 있지만 사회 환경적 요인도 작용한다. 사형은 국가가 범죄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것으로 형벌의 책임 원칙에도 어긋난다.
헌법은 사형제에 관해 금지나 허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제110조 제4항은 “비상계엄하의 군사재판은 (중략) 단심으로 할 수 있다. 다만 사형을 선고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명시해 형벌로 사형이 선고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헌재는 과거 두 차례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2010년 2월에는 재판관 5 대 4 합헌으로 1996년(7 대 2 합헌)보다 위헌 의견이 늘었다. 당시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중에서도 2명은 사형 대상자 축소 등 국회 입법을 통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한국은 1997년 12월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형 폐지국’ 평가를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사형제 폐지 찬성 입장을 밝혔다. 국제적으로도 사형제 폐지가 대세다. 유엔에 따르면 약 160개국이 법률적·실질적으로 사형을 폐지했다. 헌재는 시대 상황과 한층 성숙해진 시민들의 인권 의식을 반영해 이번에는 사형제에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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