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디지털 금' 될 수 있을까
“꿈은 존중하지만, 거기에 너무 빠져선 안 된다. 비트코인이 즉각적인 개인 간 거래(P2P), 세계 어디서나 결제 가능, 무료 또는 낮은 수수료라는 세가지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제로(0)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불었던 2018년 1월 <제이티비시>(JTBC) 티브이 토론에서 “비트코인은 사기”라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 등 회의론자들은 비트코인이 화폐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예측했다. 거래 한건 처리하는 데 10분이 넘게 걸리고, 그러는 사이에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기 일쑤인데 교환의 매개로 쓸 수 있냐는 주장이다.
3년이 흐른 지금. 옹호론자들조차 더는 비트코인이 지불결제에 적합하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비트코인이 가치저장 수단으로 유용하다는 논리를 들고 나섰다. 일명 ‘디지털 금’ 담론이다. 실제로 최근 비트코인을 현금과 금의 대체 투자처로 바라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비트코인이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는 배경엔 유례없이 늘어난 유동성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달러를 비롯한 현금의 가치가 떨어졌다. 저금리 정책이 이어지자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에 유동성이 몰리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금 가격도 함께 오르기 시작했다. 금은 역사적으로 화폐가치가 하락할 때마다 그로 인한 위험을 분산할 대체 투자처로 각광받아왔다. 중앙은행이 발행할수록 가치가 내려가는 법정화폐와 달리, 금은 낮은 가격 변동성으로 안전자산 구실을 해왔다.
덩달아 최근 비트코인도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에스앤피(S&P)는 최근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채굴량이 2100만개로 정해져 있고, 전통 금융시장의 바깥에 있어 영향을 덜 받으며, 공급량을 쉽게 조절하기 어렵다는 면에서 금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에스앤피는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금처럼 매력적인 투자처로 여긴다고 덧붙였다.
씨티은행은 지난해 11월 1970년대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결과로 금값이 오른 것처럼, 최근의 양적완화가 2021년 12월까지 비트코인 가격을 개당 31만8천달러(약 3억6천만원)까지 올려놓을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디지털자산 전문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신탁(GBTC·지비티시)에는 지난해 4분기에만 직전 분기 모금액의 3배인 약 28억달러(약 3조1천억원)가 모였다. 제이피(JP)모건도 최근 지비티시가 낸 실적을 근거로 “비트코인과 금의 경쟁이 이미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기관투자자, 특히 헤지펀드와 초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추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나스닥 상장사인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사내유보금으로 비트코인을 꾸준히 사 약 7만784개의 비트코인(약 2조6천억원)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비트코인 추가 매수를 위해 6억5천만달러 전환사채 발행 계획도 밝혔다. 빚을 내 살 정도로 비트코인의 투자 가치를 높게 본다는 의미다.
하버드, 예일 등 거액의 발전기금을 운영하는 미국 대학들도 2019년 이래 코인베이스 등 암호화폐 거래소에 계좌를 개설해 비트코인 등에 직접 투자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투자상품 설명서에서 향후 비트코인 선물에 투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다만 2천억달러에 가까운 시가총액이 하루 만에 증발하기도 하는 등 변동성이 크다는 점은 비트코인이 신뢰할 만한 투자 대상으로 자리 잡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제이피모건은 비트코인의 장기 목표 가격을 14만6천달러(약 1억6천만원)로 설정하며, 가격 변동성이 지금보다 낮아져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제이피모건은 비트코인 가격 변화가 궁극적으로는 금과 같은 방향성을 띠게 되겠지만 수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결국 비트코인이 당장 금을 대체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 최대 규모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한 레이 달리오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트코인을 ‘엄청난 발명품’이라 칭하며 향후 금과 비슷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비트코인은 내게 80% 정도는 손실을 봐도 괜찮을 금액을 투자할 수 있을 정도의, 매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장기적 옵션 투자”라며 낙관론에 선을 그었다.
정인선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ren@coindes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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