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하버드대 교수 '위안부' 부정 논문..기존 역사부정론자 주장 반복"

배문규 기자 2021. 2. 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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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시민들이 모자와 목도리를 씌워 놓은 모습. 이준헌 기자

미국 학자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prostitute)’로 규정한 논문을 국제학술지에 싣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해당 논문이 기존 역사부정론자들의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내용 오류를 지적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3일 하버드대 로스쿨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의 ‘위안부’ 피해 부정 논문을 분석한 보도참고자료를 펴냈다. 램자이어 교수는 하버드대 로스쿨 일본법학 미쓰비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이 직책은 일본 기업 미쓰비시의 100만달러 기부로 만들어진 것이다. 유소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램자이어 교수는 2018년 일본 정부에서 ‘일본 사회와 문화 이해 및 홍보에 기여한 공로’로 욱일중수장(旭日中綬章)을 받기도 했다.

지난 1일 산케이신문은 램자이어 교수가 쓴 ‘태평양전쟁의 섹스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라는 논문을 학술지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 이코노믹스’(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65권(2021.3.)에 실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공개된 논문의 요지는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 모두 공인된 매춘부이고, 일본에 납치돼 매춘을 강요받은 ‘성노예’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재단에선 해당 논문이 2019년 3월 ‘위안부와 교수들’이라는 제목으로 하버드 로스쿨에 제출된 토론문의 내용을 정리해 발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문은 일본 부정론자들의 입장에서 ‘위안부’ 논쟁 현황을 점검하고, ‘위안부≠성노예’론을 전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논문은 위안부 문제와 성매매 계약을 ‘게임 이론’ 원리로 살펴보는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약속”에 기초한 계약 역학을 검토한다. 논문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은 성병 예방 차원에서 위안소를 설치해 일본과 한국에서 ‘위안부’를 모집했다. 공창인 창기와 사창인 작부가 있었으며, 한국에는 사창이 더 많았다. 당시 일본 내무성은 성병 없는 창기 출신 여성만 ‘위안부’로 고용했으며, 이러한 계약에 의해 고용된 ‘위안부’는 고소득을 올렸고 계약이 끝나면 바로 귀국했다. 계약역학이 반영된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전문모집업자의 기만적 사기에 의한 모집이 많았고, 이는 ‘위안부’와 노동자 모집에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재단은 분석 자료를 통해 논문 전개 과정에 오류와 비약이 있고, 더 나아가 식민지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다고 지적했다. 우선 논문 제목이 ‘섹스 계약’인데 정작 근거 법령, 계약 주체간 관계, 계약 조건, 공권력 관리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밝혔다. ‘위안부’ 모집 대상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을 주장했으나, 아시아태평양 지역 여성들도 피해를 입은 사실과도 배치된다.

또한 일본인 창기의 ‘섹스 계약’을 주로 살펴보면서 조선인 ‘위안부’의 피해가 없다는 논리 비약을 전개했다고 지적했다. 내무성의 ‘위안부’ 조건은 성매매에 관한 국제조약을 의식한 것이었으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고용 조건을 어긴 ‘위안부’ 허가 사례도 있었다고 재단은 밝혔다.

일본과 식민지에서 차별적으로 적용된 공창제 실태도 무시됐다. 작부는 ‘섹스 계약’에서 배제된 사창이라 하면서 일제 공문서에 ‘위안부’가 주로 ‘작부’로 표기되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 일본의 공창제는 근대 시기 내내 국제사회에서 노예제도, 인신매매제도로 비판받던 것이다. 업자의 불법 행위를 비호한 공권력의 책임도 무시됐다. 일제가 선정한 위안소 업자들 중에는 유괴죄 전과자가 많았다고 한다.

‘성노예’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도 지적됐다. 국제법의 노예 개념은 ‘권한을 행사하는 주체에 의해 자유 또는 자율성을 박탈당하는 지위 또는 상태에 있는 자’를 의미한다. 소득의 많고 적음은 그와 관계가 없는데도 성노예를 부정하는 근거로 삼았다는 비판이다. 그 외 ‘위안부=성노예’ 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을 적극 인용하거나 자의적으로 참고 문헌을 채택한 점도 지적됐다.

재단은 “자료를 톺아보고 당대의 맥락과 미래의 전망 아래서 논지를 전개해가는 역사적 분석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으며, 현실의 정치적 주장을 위해 실재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상을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한일 역사부정론자들의 계보 안에서 주장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논문을 평가했다.

해당 논문은 저자의 미국 하버드대 교수라는 권위에 언론의 정쟁화 시도가 맞물리면서 논란이 커졌다. 일본군 ‘위안부’ 배상 판결 등으로 한일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일본 우익 세력이 램자이어의 논문을 내세워 일본의 가해 행위를 은폐·희석하려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재단은 “논문을 옹호하는 이들의 목표는 ‘위안부=성노예’론을 부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건립되는 추모비를 저지하며, 궁극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권력의 가해책임을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이들은 ‘위안부’ 피해부정을 위해 역사적 사실과 다른 ‘일제시기 공창제’ 소환하고 있는데, ‘위안부’ 문제를 단절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당대 정치권력의 성격과 사회시스템을 드러내면서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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