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환매자금 대느라 급매로 내놓는 '어급주' 잡아라

이경은 기자 2021. 2. 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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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조1000억 빠진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

입지도 좋고 수요도 많은 좋은 매물이지만 집주인의 자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싼값에 나올 때가 있다. 실수요자는 그런 급매물을 건지면 큰돈을 벌 수 있다.

부동산 재테크 성공 법칙을 주식시장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요즘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장에 나오는 급매물이 꽤 많기 때문이다. 자산도 많고 실적도 탄탄한 우량 가치주이지만, 일시적 매물 증가로 주가가 약해진 일명 ‘어급주(어쩌다 급매 주식)’다.

펀드 통장을 깨서 돈을 찾아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 트렌드가 강해지고 있다.

3일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에서만 1조1000억원이 빠져나갔다. 신영자산운용에서 올해 4600억원이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고, KB운용, 한국밸류운용 등에서도 2500억원가량 유출됐다.

국내 유일의 1조 펀드인 신영밸류고배당펀드를 비롯, KB밸류포커스펀드, 신영마라톤펀드, 메리츠코리아펀드 순으로 자금 유출이 거세다.

편득현 NH투자증권 자산관리전략부 부부장은 “초저금리로 성장주에 유리한 환경이다 보니 지난해 시가총액 상위 500위 이내 기업들의 국내 성장주와 가치주 수익률은 각각 52.1%와 17.3%로 온도 차가 매우 컸다”면서 “좋은 회사는 반드시 가치를 되찾겠지만 운용사 매도 소식에 단기 투심이 악화되어 회복까지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급주, 역발상 투자 힌트 되나

통상 자산운용사는 국내 증시에서 특정 종목의 지분을 5% 이상 취득해 보유하게 되면 공시를 해야 한다. 5% 이상 지분을 취득하고 나면 매매 현황을 전부 공개해야 해서 부담스럽기 때문에, 펀드매니저 입장에선 강한 확신을 갖지 않으면 5% 이상 대량 매매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달 초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사이트에는 운용사들의 5% 이상 보유 주식과 관련한 공시가 연이어 올라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시 내용은 펀드가 해당 종목의 지분을 늘렸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축소했다는 내용이었다.

대형 운용사 관계자는 “펀드 환매에 대비해 유동성 확보를 하기 위한 목적이 크고, 보유 주식보다 더 저평가된 종목으로 갈아타기 위해 파는 경우도 있다”면서 “시가총액이 작은 중소형주의 경우엔 시장에 큰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나눠서 매도한다”고 말했다.

오래 보유해 오던 지분을 1~2%씩 쪼개서 파는 게 아니라, 아예 지분 전체를 비워버리는 경우도 있다. 한국밸류운용은 첨단소재 기업인 풍산홀딩스의 지분을 6.21%나 갖고 있었지만, 지난달 전부 매각했다.

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에 코스피,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2.87 오른 3129.68을 코스닥은 6.88 오른 970.69를 기록했다.

◇“이익 증가하는 유망주로 골라야”

“전망이 좋은 주식을 이렇게 털고 나가다니, ΟΟ운용사 본점이 어딥니까!”

자산운용사들의 무차별 매도 뉴스에 소액 주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기업 실적 대비 주가가 저평가되었다고 믿고, 해당 종목들을 장기로 보유해 왔던 이른바 가치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펀드매니저들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수익률이 나쁘지도 않은데 개인들이 펀드를 깨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개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24조원어치 주식을 사들였다. 이달 현재 국내 주식형 공모 펀드의 규모(설정액 기준)가 52조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개인들의 매수 욕구가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다.

신규 종목 사냥에 목말라 있는 투자 고수들에겐 어급주 리스트가 종목 발굴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재야의 고수로 알려져 있는 전업 투자자 A씨는 “가치 투자로 유명했던 운용사들이 이미 많이 줄인 종목, 그리고 앞으로 더 줄여야 하는 종목들을 추려서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면서 “어급주라고 해서 묻지마 투자하는 것은 아니고, 기업 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가 상승은 덜 된 종목들을 골라내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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