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료 또 오른다] 기금 취지 안 맞는 '모성 급여' 등도 떠맡아..결국 국민에 손 벌려

세종=변재현 기자 humbleness@sedaily.com 2021. 2. 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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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만한 지출에 바닥난 재정]
곳간 빠듯한데 사회안전망 강화 빌미로 '마구잡이 집행'
구조조정한다지만 올 분리한 사업 규모 2,152억 그쳐
올해도 쓸 곳 넘쳐나는데..언제 얼마나 올릴지도 미지수
지난달 11일 오후 고용노동부 서울남부고용센터에 실업급여 신규신청 2부제 시행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일시적 현상이면 단기적으로 지출액이 늘어도 위안을 삼을 수 있는데 장기적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아요.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0년 9월 15일 국회 상임위원회 발언)

“고용보험기금은 외환 위기 때처럼 국가적 위기에 사용해야 하는데 2018~2019년 잔액이 급감했어요. 코로나19 때문이라고요? 동의할 수 없어요.”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 2020년 11월 17일 특수근로형태종사자 고용보험 적용 공청회)

고용보험기금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는 야당은 물론 여당도 지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재갑 장관과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은 질의가 있을 때마다 “고용보험기금의 성격과 맞지 않는 부분은 정리하고 일반회계(국고) 지원을 늘리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사업 구조 조정도, 국고 전입금도 대폭 늘리지 못한 채 결국 보험료율 인상으로 가닥을 잡게 됐다. 재정 건전성은 제쳐두고 사회 안전망 강화에 집중하다 고용 위기가 닥치자 결국 국민에게 손을 벌리게 된 셈이다.

◇재정 넉넉할 때 온갖 사업 집어넣더니···고용 위기 닥치자 ‘요율 인상’=박화진 고용부 차관은 청와대 업무 보고 하루 전인 지난 2일 사전 브리핑에서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추이를 봤을 때 최근 코로나19로 어려워져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기금 사업이 커졌다”고 말했다. 고용보험기금 재정 건전성 문제의 직접적 원인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것이다.

물론 지난해 고용유지지원금과 구직급여(실업급여)로 각각 총 2조 6,826억 원, 13조 1,095억 원이 지출돼 고용보험기금이 고용 위기 상황에서 고용 유지와 실업자 보호에 쓰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체 사업을 살펴보면 ‘실업 예방 및 직업 능력 개발’이라는 고용보험의 성격보다 사회 안전망 강화에 치중한 정책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출산휴가, 육아휴직, 배우자출산휴가 시 돈을 주는 ‘모성보호급여’와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목돈 마련을 지원하는 ‘내일채움공제’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 지원 수준이 확대되면서 기금 부담을 늘렸다. 구직급여액을 평균 임금의 50%에서 60%로 올리고 수급 기간도 30~60일 늘렸으며(2019년 10월), 2년형까지밖에 없던 청년내일채움공제에 3년형이 추가(2018년 3월)됐다. 성장·유망 업종에만 지원되던 청년추가고용장려금도 전 업종으로 확대(2018년 6월)됐다. 육아휴직의 경우 2017년 9월 첫 3개월 급여를 두 배 인상(소득대체율 40%→80%)한 후 2019년 1월 아빠 육아휴직보너스제의 상한액을 200만 원에서 250만 원으로 인상했다. 고용 위기가 없는 평시에 사회 안전망 강화에 치중하다가 고용 위기 상황에서 건전성 향상을 고민하게 된 셈이다.

◇구조 조정도 난항=고용부 내부에서도 고용보험기금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모성보호급여·내일채움공제와 같은 사업은 일반회계로 분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국고 사정이 좋지 못한 탓에 기획재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번번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고용부가 지난해 국정감사를 위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올해 일반회계로 분리한 사업은 고용 동향 조사 분석 등 7개로 총 2,152억 원에 불과하다. 14조 원이 넘는 고용보험기금의 지출과 비교했을 때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지난해 고용보험기금 재정 충당을 위해 공공자금관리기금(각 부처의 기금에서 여유 자금을 붓고 재정이 고갈됐을 때 대출할 수 있도록 만든 기금)에서 대출한 상황을 보면 국고 전체의 사정이 좋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고용보험기금은 지난해 3차 추가경정예산에서 4조 원을 시작으로 올해 총 7조 9,000억 원의 빚을 졌는데 이 중 순수 국채 발행으로 조달한 금액은 5조 7,000억 원에 달한다. 국회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복지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고용보험기금 사업을 정리한다고 하면 노동계가 가만히 있겠느냐”며 “보험료율 인상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인상 방향 미지수인데 쓸 곳 넘쳐=고용보험료율을 인상하겠다는 방침은 정해졌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얼마나 올릴지는 알 수 없다. 박 차관은 “경제가 어려운 시점에 보험료 인상을 논의하더라도 시행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올해 상반기 중으로 노사정 협의체인 고용보험위원회에서 논의가 이뤄지겠지만 당장 인상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내년 3월 대선을 생각하면 그 이후로 인상을 미루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하지만 올해도 고용보험기금의 지출 요인은 여전한 상황이다. 여행업·전시업 등 8개 업종에 대한 특별 고용 지원 기간을 올해 3월에서 연장해야 한다. 이 업종들은 올해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 고용 안정을 위해 연장이 유력하지만 고용 유지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에서 써야 한다. 고용부는 집합 제한·금지 업종에 대해 고용유지지원금 상한을 휴업수당의 67%에서 90%로 확대 지원할 계획인데, 이 역시 고용보험기금 지출 요인이다.

/세종=변재현 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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