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 부총리 추천한 이낙연에 반기..이번엔 진짜 職 걸었나
보편·선별 갈등 1차때와 판박이
비공개협의서 與와 고성 후 퇴장
洪 "재정당국 입장 절제표현" 고수
文 '누구 손 들어줄지가' 관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재정혁신국과 예산실·경제정책국 라인을 긴급히 소집했다. 여당이 자영업 손실보상 제도화에서 4차 재난지원금으로 방향을 선회한 뒤 선별과 보편을 결합한 20조 원대의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요구까지 거론하자 재정 여력을 감안한 방어 논리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당일 있었던 비공개 당정청 협의에서 재난지원금 지급 방향을 두고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충돌했다. 1시간가량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진 끝에 김 대표는 “피해 계층 맞춤형 지원과 전 국민 지원을 담은 4차 재난지원금을 끝까지 추진하겠다”고 말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고, 홍 경제부총리는 “저는 못 하겠다”고 답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전 국민 지급 문제는 “당장 언급하기는 이르다”며 홍 부총리를 지원했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당정 갈등은 지난해 3월 1차 재난지원금을 논의하던 때와 데자뷔를 보인다. 당시 ‘홍남기·김상조’ 대 ‘조정식·윤호중’으로 나뉘었던 비공개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는 2시간 가까이 고성이 오가며 분위기가 격앙됐다. 홍 부총리와 김 실장은 수혜 대상을 소득 하위 50%까지 해야 한다고 한 반면 여당은 소득 하위 80%까지 요구했고, 결국 청와대가 70%로 중재에 나섰다. 이후 전 국민으로 지원금 지급 대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도 홍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식사 자리에서 묵묵히 밥만 먹다가 문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어깨를 두드려주자 그때서야 (전 국민 지원금에 대해)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3일 세종 관가에서는 홍 부총리가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게 강하게 반기를 든 것이 이례적이라는 반응과 함께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표가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추경 편성에서 맞춤형 지원과 전 국민 지원을 함께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하자 4시간 뒤 홍 부총리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다. 이 대표는 총리 시절 당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을 부총리로 추천한 인물이다. 또 기자 간담회 등 다른 형식을 빌리지 않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린 방식이나, 당 대표의 오전 발언을 오후에 부총리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타이밍까지 홍 부총리의 평소 스타일로 볼 때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부터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10억 원 유지 등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마지막에 번번이 소신이 꺾여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다. 이번에도 재보궐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여당의 요구에 맞서 자신의 뜻을 끝까지 관철할 수 있을까라며 ‘홍결기’가 또 ‘홍백기’로 숙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다만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그침을 알아 그칠 때 그친다’는 의미의 ‘지지지지(知止止止)’를 인용하며 “하루하루 뚜벅뚜벅 걸어왔고 또 걸어갈 것”이라고 한 것에 대해 이번에는 제대로 부총리 직을 걸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올해 신년사에서 “죽은 뒤에야 멈추겠다(사이후이·死而後已)”고 한 데 이어 비장감이 느껴지는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올 3월이 지나면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에 오르게 되고 차기 강원도지사나 국무총리 하마평에도 이름이 오를 정도로 체급이 높아졌다. 지난해 3월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가 해임을 거론했던 전례도 있고, 11월에는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으로 유지하기로 한 뒤 문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겠다고 사의를 표명했다가 반려된 적이 있어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혹시 정부와 의견이 조금 다른 사안에 대해 국민들께 확정된 것으로 전달이 될까(걱정한 것)”라며 “재정 당국의 입장을 굉장히 절제된 표현으로 말씀드린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당정청 삼각 공조가 파열음을 빚으면서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편성 논의도 어느 정도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겠다는 당의 요구에도 홍 부총리는 “추경 편성 논의는 3월에야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결정은 문 대통령 몫이다. 집권 막바지에 접어든 대통령이 어느 손을 들어줄지가 관건이다.
/세종=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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