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사이 줄타기하는 미얀마..쿠데타 이후 어디로?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10여년 전 미국적 가치인 '선거를 통한 정권 이양'을 했던 미얀마에서 지난 1일 다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미국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국과 도전자 중국 사이에 세계 패권을 향한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사이에 선 미얀마의 행보가 주목된다.
미얀마에서 쿠데타 발생 직전까지 가동되고 있던 민주주의 체제는 미중 대결에서 미국의 승리로 여겨졌으나, 이번 쿠데타로 또 한 번 미중이 대결구도에 놓이게 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러한 대결 구도로 인해 미얀마가 미중이 세계 패권을 놓고 벌일 한판 승부의 최전선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미얀마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전파하는데 주력했다. 중국은 지금까지 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기조 하에서 미얀마에는 경제 문제 등 철저히 이해관계로만 접근했다. 이번 쿠데타에 대응하는 두 나라의 입장 또한 이런 맥락에서 갈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군부가 포기할 것을 종용하면서 경제 제재를 가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독재국가에 대항하기 위한 세계 민주주의 국가 연대를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침묵을 유지하면서 '각자 차이점을 적절히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중국 전문가 윤선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항상 '누구든 정권을 잡으면 그쪽과 잘해 보겠다'는 식으로 대응했다"면서 "저는 이런 행태를 중국의 도덕적 유연성이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중국에게 미얀마란 중국을 인도양으로 연결시켜주는 숨통이다. 미국은 지난 2019년 6월부터 도전자 중국의 점증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태평양사령부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개편했다. 군사전략의 중심을 중국 견제에 둔 것이다.
이로 인해 인도와의 갈등 양상이 심화된 중국은 미얀마가 도와줄 경우 한층 여유가 생긴다. 미얀마를 경유해 뱅갈만까지 석유와 가스 파이프 라인을 구축하고, 각종 광물과 원목 등 자원 또한 공급받기 용이해진다. 중국은 장차 이 루트를 육상과 철도 등으로 연결시켜 새롭게 경제 발전을 이뤄내는 장으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미국에게 미얀마는 세계적 민주주의 국가 연대를 강화하고 중국의 지역 우위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기였다. 그러나 이번 쿠데타로 앞서 일궈놓은 승리를 반납해야 할 상황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국무부 고위관료, 백악관 아시아정책 자문역 등을 맡은 다니엘 러셀은 "바이든 정부의 딜레마는 2가지"라면서 "하나는 미얀마에 대한 추가 제재는 이미 이런 식의 제재에 익숙한 미얀마에 큰 의미가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동남아시아에서 세력권을 넓히기 위해 미얀마 군부를 지원할 거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재임 시절인 2009년 미얀마를 민주화시켜 중국으로부터 떼어놓는다는 취지의 정책을 야심차게 추진했다. 당시 미얀마에 파견된 미 국무부 관리가 현 바이든 정부에서 백악관 '아시아 차르'(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조정관)로 임명된 커트 캠벨이다. 그는 미얀마 정부가 미국의 정책에 단계적으로 호응하면 그에 맞춰 관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석방됐고, 2011년 힐러리 클린턴 장관,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얀마를 각각 방문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미얀마를 방문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저널은 "처음부터 미얀마 리스크는 계산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미얀마와의 관계에 있어 수십년간 각자의 정치 상황에 맞춰왔다.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거듭되며 친중 성향을 보일 때는 인권 문제에 엮여 세계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서는 미얀마에 집중적인 제재를 가했다. 투자, 무역, 여행 등이 금지됐다. 그러자 베이징이 그 공백을 파고들었다. 자원 투자 등으로 군부에 자금줄이 되어주고 급기야 미얀마의 핵심 교역국이 됐다.
당시 미얀마가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미얀마 군부들이 중국에 불안감을 느낀 것이 이후 2010년 미얀마가 민주주의 국가로 돌아서는 주요 원인이 됐다고 미 관리나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얀마가 친서방화되면서 중국에 문제가 생겼다. 2011년 미얀마 당국이 중국의 최대 규모 투자 프로젝트인 36억달러 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중단시켜 버린 것이다.
중국은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수치 여사와는 거리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군부는 미얀마의 문호를 세계에 개방하고자 했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수치 여사는 중요한 역할을 해줄 인물이라는 점에서 중국도 점차 새로운 관계를 맺어갔다.
중국은 비용을 모두 부담해 산다르 민 등 수치 여사 측근 등이 포함된 인사들을 중국에 초청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산다르 민은 2012년 이후 다섯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또한 미얀마 정치권 인사 수백여명 역시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미얀마 양곤 소재 민간 싱크탱크 전략정책연구소(ISP)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미얀마 정치권 인사는 물론, 종교 지도자, 시민사회 단체 대표, 언론인 등에게 중국 당국은 최소 1000여회의 비자를 발급했다.
2015년에는 미얀마에서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자유투표가 실시됐고, 수치 여사가 이끄는 국민민주연맹(NLD)가 승리해 문민 정부가 들어섰다. 그럼에도 군부는 주요 내각을 차지하면서 불안정한 권력공유 체제를 이어갔다.
수치 여사는 2016년 8월 정권을 차지한 뒤 첫 해외 순방지로 베이징을 택했다. 미 워싱턴대 헨리 잭슨 국제연구대학 부교수 매리 캘러한은 "이는 중국이 우려했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줬다"면서 "중국은 미국 등 서방의 지원을 받는 수치 여사의 NLD가 진심으로 서방 세계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중국을 방문한 다음달 수치 여사가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있을 때 이 회담을 관통한 중요한 질문은 '미국이 수치 여사를 10년 이상 가택연금하고 그 이상 민주주의를 억압한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야 하는가'였다고 저널은 전했다.
인권 옹호론자들은 군부의 행보는 제재를 풀기에 부족하다고 봤으나, 백악관의 아시아 담당 보좌진들은 '시작을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국무부 인권정책 책임자였던 톰 말리노스키, 미 유엔대사 사만다 파워 등이 당시 인권 옹호론자들로, 제재를 해제하면 미얀마 군부에 대한 레버리지가 사라질 것이라고 봤다. 현재 말리노스키는 미 민주당 뉴저지 하원의원, 사만다 파워는 미 국제개발처(USAID) 처장이다.
결론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은 낙관론에 편승, 미얀마 관련 제재나 지원 금지 조치를 대부분 풀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환영했고, 향후 미얀마의 민주주의 체제 구축이나 미래 협력 문제에서 대통령 결정을 지지했다.
수치는 정권을 잡은 이후 수년간 종족 갈등 문제 해결에 힘을 쏟았다. 이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과 미얀마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 단체와 연결 고리가 있는 중국은 중요한 협력 파트너였다.
2017년 미얀미 군부는 자국 내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에 나섰다. 74만명 이상이 인근 방글라데시로 탈출했고, 난민촌에서 임시 거주하고 있으나 이곳에서도 학대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수치 여사는 침묵했다.
미국은 이로써 딜레마에 직면했다. 트럼프 정부에서 미 관리들은 미얀마 사태 개입을 원했지만, 수치 여사는 로힝야족 탄압을 비난하지 않았다. 이로써 수치 여사는 비극에도 무감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작업도 꼬여버렸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미국 미얀마대사를 지냈고, 현재 비영리 민간단체 민주주의연구소(NDI) 대표인 데렉 미첼은 "그들은 로힝야족 관련 질문에 무력했다"고 말했다.
미 의회와 인권단체는 미 정부가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현실로 이뤄지진 못했다. 미첼 대표는 "관계가 위축됐다"고 말했다.
미국과 미얀마의 관계가 개선되자 미국에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는 기대감이 컸다. 오바마 정부도 대부분의 제재를 해제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미얀마에 대거 진출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미얀마 자체의 경제 발전이 더뎠고, 규제도 심했다. 또한 나중에는 로힝야족 사태로 제재 재개 가능성이 거론됐다. 당시 미얀마 투자는 대부분 중국이나 인도, 일본, 한국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 나왔다.
미얀마의 수치 여사 측근들은 서방 세계가 미얀마를 압박하면 미얀마는 친중 성향이 강화될 거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서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로힝야족 관련 결의문을 추진하자 이를 막았다. 결국 안보리는 구속력이 없는 성명을 내는데 그쳤다. 당시 수치 측은 중국이 타국의 내정 불간섭 기조를 지킨 것에 감사했다.
지난해 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지도자로서는 약 20년만에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당시 중국은 미얀마와 수십억달러 규모의 사회기반시설, 무역, 에너지 프로젝트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수치 여사 임기 중 중국이 원하는 걸 모두 허용한 건 아니다. 미얀마는 중국의 이해관계에 직결되는 항만 프로젝트 규모를 줄였고, 다른 사업들도 즉시 승인하지 않았다. 광산이나 에너지 분야 사업에서 소규모 투자만 진행되는 상황이다.
양곤의 싱크탱크 ISP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중국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240억달러(약 26조7600억원) 규모로 34개에 달한다. 금광 채굴부터 수소전지 사업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해 11월 수치 정권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당시 선거 패배는 군부로서는 수치스러울 정도였다. 급기야 군부는 선거 사기를 주장했고, 1일 선거 이후 처음으로 국회 앞에 집결한 뒤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 워싱턴DC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고레고리 폴링 선임연구원은 "오바마 정부가 미얀마에 개방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고자 한 것은 옳았다"며 "당시 문제는 미국의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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