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되는 20학번은 '랜선후배'를 기다린다 [코로나는 처음이라]
[코로나는 처음이라] 누구나 생애 첫 순간을 겪습니다. 누군가는 첫 아이를 낳았고, 누군가는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야심차게 사업을 처음 시작한 이들도 있습니다. 거리두기가 미덕이었던 2020년에 인생의 ‘처음’을 겪은 이들은 작년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또 새해에 기대하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네 번째 이야기는 올해 2학년이 되는 대학 ‘코로나 학번’들이 들려줬습니다.
〈4〉 생애 첫 코로나, 어느새 ‘정든내기’가 된다
“헉 그럼 우린 3학년이야. 3학년... 와 거짓말.”
“그때쯤이면 우린 취준(취업준비)을 하려고 휴학을 하겠지.”
올해 초겨울쯤에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70% 될거란 말에 두 대학생의 데시벨이 높아졌다. 이화여대 철학과 20학번 동기 이나한·최예은(20) 씨다. 올해도 지난해와 크게 달라질 것 없는 대학 생활에 대한 아쉬움, 내년이면 어느덧 3학년이라는 놀라움이 뒤섞인 반응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월 처음 만났다. 그 무렵에 이미 합격을 확정했던 신입생 10명 남짓과 몇몇 선배들이 상견례하는 자리에서다. 마스크 없이 밥을 먹으면서 “중국에 전염병이 돈대”란 대화가 오갔다. 하지만 끝에 가선 “반가웠고 신입생 오티(OT)서 보자”며 헤어졌다. 그러고 그들이 다시 뭉치진 못했다.
대학 새내기 1년을 뒤로하고, 새 봄학기를 앞둔 이들을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만났다. 이 플랫폼은 지난 일년 선배, 동기, 교수님을 만나고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정든내기
대학 2학년이 되면 새내기란 꼬리표는 사라진다. 신입생을 벗어나면 헌내기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몇년 전부터 대학생들은 ‘정든내기’란 표현을 즐겨 쓴다. 겨우 2학년을 ‘낡은’ 존재로 묘사하는 게 옳지 못하단 대학가 여론을 반영해 등장한 순화어다. 새내기를 기다리는 정든내기들의 심정을 물었다.
“저희도 아직 학교에 대해 잘 몰라서요. 후배가 들어온다는 게 굉장히 기쁘면서 묘해요. 후배들에게 가르칠 것도 없고 만날 자리도 없으니까. 내가 좋은 정든내기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묘해요.” (예은)
“새내기가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캠퍼스 낭만 즐기지도 못하고 1년이 갔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반갑긴 하지만 선배들도 가상의 인물이었듯이 후배들도 결국 가상의 인물로 남지 않을까요.” (나한)
몇년 전 ‘대2병(病)’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대학교 2학년이 되면 서서히 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학자금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압박을 느끼는 등 심리적 부담이 커진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산된 신조어다. 나한 씨는 이미 대2병 증상을 호소했다.
“요즘 들어 저도 미래에 뭐 할지 갑자기 무서워지고 대2병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새내기 낭만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는데 이런 감정이 드니까 도대체 뭔가 싶기도 하네요.”
수강신청
두 사람은 곧 2학년 수강신청을 한다. 학교에선 1학기 수업 방침을 공지했다. 대면·비대면을 섞은 이른바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수강생이 50명 이상인 수업은 무조건 비대면이되, 그 밑이면 학생이 선택할 수 있다. 원한다면 학교 강의실에 출석해 실물의 교수를 보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사실 이제 대면, 비대면이 중요치 않게 됐어요. 전공수업 폭풍우를 시작해야 하거든요. 올해 전공수업만 5~6개를 들어야 할 것 같아요.” (나한)
“저도 (시간표에) 전공을 아주 많이 집어 넣을 예정이고요. 나한이처럼 전공 굴리는 사람이 되겠네요.” (예은)
이들은 모두 올 가을학기엔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을 복수전공으로 신청할 계획이다. 졸업 이수학점을 채우려면 2학년부터 부지런히 전공수업의 비중을 늘려둬야 한다. 1학년 때보다 학업 부담이 더 커지는 셈이다. 어려운 학문적 개념을 공부하기엔 오프라인 수업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지만, 이들은 지난 1년 간 ‘랜선’ 수업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20학번 친구들은 시작을 비대면으로 해서 대면수업의 장점을 몸소 느끼진 못한 것 같아요. 비대면이어서 교수님과 말하는 게 편하다는 학생도 많아요. 메일 등을 써서 말씀드리는 게 보다 정돈된 형태로 전달할 수 있어서요. (20학번들에겐) 오히려 전면 대면수업이 되면 그게 더 걱정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예은)
기숙사
나한 씨는 인천, 예은 씨는 대구 출신이다. 올해 기숙사에 입사할 학생을 뽑는 추첨이 지난달 있었다. 나한 씨는 합격했고 예은 씨는 탈락했다. 경쟁이 유난히 치열했다고 한다. 만약 입사 포기자가 나오면 재신청을 받지만 올해는 예년과 사정이 좀 다르다. 방역대책의 하나로, 학교 측이 2인실이든 4인실이든 한 명만 입실하게 했다. 이 때문에 기숙사 수용인원은 크게 줄어들었다.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 10명 중에 1차에서 합격한 이가 달랑 한 명 뿐예요.” (예은)
“저는 완전 운으로 된 거 같아요.” (나한)
작년 1학기 두 사람은 본가에서 꼼짝달싹 못 했다. 학교 기숙사는 입사생을 받지 않았다. 이 빗장은 2학기에 풀렸고 두 사람 모두 기숙사에 신청해 방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예은 씨는 8월 말부터 수도권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10월 중순까지 대구에 머무르다가 그달 말에서야 기숙사에 들어갔다.
공부를 멈추는 친구들
코로나 학번은 여러가지를 상실했다고 느낀다. 대학 구성원으로서 유대감도 맛볼 수 없었다. 느슨한 연대감은 학교를 떠나게 만드는 배경이 됐다.
“대학이 배움의 장이지만 동시에 사람을 만나면서 사회인으로 나아가기 위한 연습을 한다고도 생각하는데, 그 기능을 전혀 못했잖아요. 어린 나이지만 몇몇 친구들은 이건 아니다 싶어서 휴학을 하기도 했어요.” (나한)
“아예 1학년 1학기 중간부터 휴학한 친구도 있어요. 남자애라 군대도 가야하는데, 아무런 기반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중에 과연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겠느냐는 걱정을 하더라고요.” (예은)
박준규 기자/nyang@heraaldcorp.com
〈인터뷰를 마치고〉 2020년 신입생들에겐 ‘참고대상’이 없었습니다. 대학의 비대면 수업은 전례없는 일이었지요. 교수들, 학교본부, 선배들 그 누구도 신입생들에게 해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대면수업, 동아리활동, 축제에 대한 감각을 가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나한·예은 두 학생은 “비대면 수업은 어느새 익숙해졌고, 오히려 대면수업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했습니다. 대면수업이 대학 교육의 정답은 아니겠지요. 다만, 이들이 그 시기에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감각을 경험해보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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