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빚 갚으려 또 빚냈어요.." 다중채무 500조 금융부실 불씨될라

윤원섭,김혜순,이새하 2021. 2. 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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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 3곳 이상에서 겹대출
3년반만에 100조원 급증
대형 금융부실 불씨될 우려

◆ 다중채무 500조 경고등 ◆

은행과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대출금액이 5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다중채무자는 통상 저금리인 1금융권은 물론 고금리인 2·3금융권에도 의존하고 있어 부채 폭탄의 뇌관이 될 수 있으므로 우려된다. 3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금융회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숫자는 420만2000명, 이들의 대출금액은 총 501조4000억원으로 추산됐다. 1인당 빚은 1억1922만원이다.

다중채무자의 대출금액은 최근 몇 년 새 급속히 늘어났다. 2017년 1분기 말 402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3년 반 만에 무려 99조2000억원(24.6%)이나 늘었다. 다중채무자 대출금액은 이후 438조9000억원(2017년 4분기), 466조1000억원(2018년 4분기) 등으로 꾸준히 확대됐다.

다중채무자 숫자도 2017년 1분기 말 383만5000명에서 지난해 3분기 420만2000명으로 9.6% 늘어났지만 대출금액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 이에 따라 다중채무자 1인당 빚은 같은 기간 1억487만원에서 1억1922만원으로 1435만원 늘었다. 가계대출 중 다중채무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다중채무자의 대출은 전체 가계대출(1585조5000억원)에서 31.6%를 차지했다. 다중채무는 서로 다른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리는 것을 뜻하는데 대개 1금융권(은행)에서 빌리지 못해 2금융권(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털, 종금사 등)이나 3금융권(대부업체)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부실 위험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윤원섭 기자]


카드론·현금서비스, 대부업체 돌며 생활비 돌려막는 주부

급증하는 다중채무

다중채무자 1인당 대출금액
3년새 14%늘어 1억1900만원
빚 늘고 소득은 1% 증가 그쳐
채무상환능력 갈수록 떨어져

전문가 "주식 신용매수 줄이고
저신용자 중금리 대출 늘려야"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 채무자 대출이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 있는 한 은행에서 고객들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이승환 기자]
# 두 아이를 키우는 여성 가장 박 모씨(43)는 지난해 코로나19로 돈벌이가 어려워지면서 생활비 충당을 위해 카드론 5건, 현금서비스 2건, 대부업체 1건 등 지금까지 총 4000만원의 빚을 졌다. 아파트관리비, 월세 등이 급해 닥치는 대로 대출을 받다 보니 대출을 대출로 막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하게 됐다. 덕분에 신용점수는 500점대로 떨어지고 다시 대출을 받으려면 고금리인 2·3금융권에 의지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졌다.

다중채무발 가계부채 부실 경고등이 켜졌다. 다중채무자들은 대개 신용도가 낮아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고 2·3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고, 상환 능력도 낮아 돌려막기를 하면서 잠재 부실로 분류된다.

전문가들은 다중채무를 리스크 수준별로 분류해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다중채무발 금융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선 다중채무자의 대출은 늘어났지만 소득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아 상환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다. 다중채무자 1인당 대출은 2017년 1분기 1억487만원에서 2020년 3분기 1억1922만원으로 13.7% 늘어난 반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7년 3만1734달러에서 2020년 3만2115달러로 고작 1.2% 늘었다. 다중채무자들이 대개 저신용자임을 감안하면 소득 증가 수준은 극히 미미하거나 오히려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어 채무상환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다중채무자는 정의상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사람을 뜻하는데, 은행 3곳에서 빌린 사례보다는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등 2·3금융권에서 빌린 사례가 훨씬 더 많다"면서 "이들이 신용등급 하락과 높은 이자를 감수하고 2·3금융권까지 갔다는 것은 자금 여력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다중채무자 수와 대출금이 급증한 것은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타격을 받은 자영업자, 취업이 어려운 청년층, 생활자금이 필요한 실직자 등이 빚으로 빚을 갚는 '돌려막기'를 했을 가능성이 있고, 이는 상환 능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다중채무 대출금과 차주가 늘어난 원인으로 주식 열풍도 꼽혔다. '빚투'(빚내서 투자)는 주식가격이 하락하면 대출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빈기범 명지대 교수는 "주가가 10~20% 떨어지면 부유층은 버틸 수 있지만 여기저기서 빚을 내 공격적으로 투자해놓은 서민들은 버티기 힘들다"며 "특히 신용융자를 받은 사람들은 주가 하락 시 반대매매로 손실을 실현하고 털고 나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에서 주식투자자금으로 빌린 돈이 20조원, 은행과 제2금융권에서 빌린 주식투자자금이 40조원에 이른다고 분석했고 이게 부실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빈 교수는 이어 "주식시장 신용 매수를 규제해야 한다"며 "지금 정부가 통화를 푸는 것은 실물경제가 돌아가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돈들이 서민들 대출을 통해 자산시장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신호"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다중채무자에는 자영업자가 포함되기 때문에 현재 자영업자가 코로나19로 누리고 있는 금융 규제 완화 조치가 종료되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로 타격받은 자영업자에게 대출금 만기 연장과 이자 납부 유예를 허락해 주고 있다.

다중채무 부실이 우려되면서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에 즉각적인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다중채무는 위험한 부채"라면서 "일단 생존하기 위해 계속 유동성을 공급해주다 보면 점점 더 빚이 많아지고 위험을 막을 수 없을 지경까지 갈 수 있으니 지금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다중채무 중에서도 부실 수준을 나눠 고위험군 관리를 먼저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연구원장을 역임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다중채무의 다른 이름은 고금리"라며 "이자 부담이 적은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시중은행의 중금리 대출은 총량규제 예외로 인정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원섭 기자 / 김혜순 기자 /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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