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외국 ESG에 맞출텐가..'한국형 모델' 만들면 새 기회"
◆ ESG 경영 ③ ◆
환경·책임·투명경영을 뜻하는 'ESG' 열풍이 뜨겁다. 글로벌 기업들이 넷제로(net zero·탄소배출이 늘어나지 않는 상태)와 RE100(신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속속 선언한 가운데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사회적 책임과 투명경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럽 등 선진국들은 ESG 공시를 속속 의무화했다.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와 맞물려 ESG 규제를 보다 구체화한다면 한국 수출기업들에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매일경제는 ESG 생태계 구축을 위해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홍종성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대표, 윤덕찬 지속가능발전소 대표와 전문가 간담회를 1시간가량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ESG 현주소는.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ESG라는 개념을 한 번이라도 접한 적이 있나'라는 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국민이 ESG를 알아야 기업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유럽에서 200여 년 걸린 산업화를 우리는 40~50년 만에 빠르게 이뤄냈지만 그 결과 에너지 과소비 국가로서 심각한 환경 문제에 직면했다. 투명성 논란과 안전사고도 발생했다. 그러나 한국은 기술이 있고 변화에 언제나 신속히 대응해왔다. 앞으로 5년, 10년 확실한 목표를 세워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힘을 합치면 한국형 ESG 모델을 개발하고 표준화해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홍종성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대표=전 세계 ESG 열풍 속에서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기업 입장에서 ESG는 선택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반드시 가야 할 숙제다.
―ESG는 기회이자 리스크인데.
▷홍 대표=글로벌 펀드들이 ESG를 잣대로 평가해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권의 화두도 ESG와 디지털 전환이다. 앞으로 투자를 받거나 주식시장에 상장하려고 할 때 ESG를 준비하지 못한 기업에는 큰 리스크 요인이 된다.
▷최 이사장=연말마다 연탄을 배달하는 사회공헌 활동이 등장한다. 기업이 이런 것에 홍보비를 쓰는 건 끝내야 한다. 이제는 실질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30년 전에 기후재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식의 거짓말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남극·북극 얼음이 녹아서 해수면이 올라가는 게 현실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다. 긴박감을 갖고 집중적으로 ESG를 준비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 7위 국가라는 산업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좋은 전략을 세워 ESG 모델을 정착시키고 극복 과정을 개발도상국에 보급했으면 한다.
▷윤덕찬 지속가능발전소 대표=ESG는 3년 내에 강제성 있는 규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서구 자본주의 헤게모니가 전환되는 신호탄이다. ESG가 바꾸는 미래는 단순히 기업만이 아니다. 금융과 산업, 사회를 같이 봐야 보인다. 지금껏 ESG가 좋은 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평가요소였다면 앞으로는 ESG를 기반으로 해서 자본 흐름을 전환하는 '지속가능 금융'이 저탄소 경제를 이끌어갈 일종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기업의 ESG 대응 전략은.
▷홍 대표=앞으로 탄소중립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 한국처럼 수출주도형 경제에는 큰 위협 요인이다. 비즈니스 근간을 바꿔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기업들에 ESG 경영은 새로운 도전인데, ESG 활동을 공시하고 검증받고 그 결과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AI) 기반의 다양한 기능을 통해 ESG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최 이사장=석유화학, 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한 번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공정을 만들고 일자리를 전환하는 등의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온실가스 저감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수출했다가 앞으로는 불량 기업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온실가스 탄소세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기술이 있으니 수소에너지부터 태양광, 풍력, 배터리 등을 재빠르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항목별로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나.
▷윤 대표=한국의 ESG 평가는 세계 46개국 중 31위(2018년 모닝스타 자료)로 하위권이다. 특히 지배구조에서 44위에 그쳤다. 국내 상장사의 ESG 뉴스를 분석한 결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 중 지배구조 부문에서는 특히 도덕성이었다. 다음으로 산업안전과 노사관계가 문제점으로 꼽혔다.
―기업들이 ESG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윤 대표=ESG 평가는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좋은 회사를 고르도록 하는 것이다. 환경, 산업안전, 보건 등의 컴플라이언스를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ESG는 그 이상을 요구한다. 글로벌 기업들 중 RE100 선언과 함께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최 이사장=이제는 과거의 관행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큰 결단이다. 요즘 오너와 최고경영자(CEO)들이 ESG를 담당하는 의장을 맡는 등 전환점에 와 있다. ESG를 실천하지 않으면 기업이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으로 알게 됐다.
―글로벌 기업들이 ESG 잣대를 강화하면서 한국 수출기업들도 영향권에 들어왔는데.
▷최 이사장=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을 속속 선언하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RE100 협력업체에서만 제품을 구입하게 된다면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글로벌 부품 공급사인 삼성도 신재생에너지로 모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하지 못한다면 대안으로 탄소배출권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어야 하지만 한국전력에서 독점하는 현행 거래시스템이 활발하게 운영되지 않는다.
―주주 중심 경영이 끝났다고 보나.
▷홍 대표=과거에는 주주와 경영진이 기업의 주인이었지만 현재는 주주와 투자자뿐 아니라 직원, 고객, 공급업체, 지역사회 등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ESG 경영의 열쇠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ESG 확산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홍 대표=중견·중소기업들도 ESG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충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주고 예측 가능한 규제를 설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스스로 ESG 경영을 실천할 수 있고 전체적인 에코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윤 대표=정부는 지속가능금융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금융이 먼저 움직여야 산업이 움직인다. 저탄소경제 전환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재계에 던져줘야 한다.
▷최 이사장=앞으로 10년 동안 기후변화에 대응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다음은 수습하기 어렵다. 당장에 탄소세를 매기면 기업들에 부담인데, 총량은 같지만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고 친환경기업에는 세금을 줄여주는 것도 정책 방향이 될 수 있다.
―대기업 협력업체나 중소기업들은 ESG 대응이 막막한 상황일 텐데.
▷홍 대표=대기업이 ESG 로드맵을 실천하더라도 1~2차 협력사들이 준비하지 못하면 결국 대기업 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 ESG 펀드가 활성화되어서 중견·중소기업들의 ESG 전략 수립을 도울 수 있도록 투자해야 한다.
▷최 이사장=ESG는 국가경쟁력과도 직결되어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들에게 ESG를 설명하는 교육프로그램을 지원했으면 한다.
▷윤 대표=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원도급업체가 하도급업체를 잘 관리하느냐가 ESG 평가에서 강조된다. 또 은행이 중소기업에 대출할 때 ESG를 평가해서 우대해주는 지속가능 연계 대출을 마련해야 중소기업들의 ESG 경영을 유도할 수 있다.
[정리 =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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