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받지 말아야"..'회계 부정' 의혹 정의연, 혁신안 받을까
회계 관리체계 개선, 이사회 구성 등 권고·제안
정의연 연간 사업 중 보조금 비중 40% 달해
보조금 없이 운영 미지수.."작년 정기회원 늘어"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작년 ‘회계 부정’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자체적으로 꾸린 ‘성찰위원회’가 국가 보조금과 지원금 대신 국내외 시민 후원 중심으로 재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혁신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연간 사업비용 중 국가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해 시민 후원만으로 자립 운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정의연 산하 성찰과비전위원회(성찰위)는 3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진행한 제1477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지난해 출범 이후 7개월간 활동 결과를 보고하면서 “투명한 회계 검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의연은 ‘회계 부정’ 의혹 제기가 쏟아지면서 ‘위안부’ 운동의 정당성을 의심받자 작년 6월 학자·법률가·회계사 등 13명 위원으로 구성한 성찰위를 조직했다.
이날 7개월 간 성찰위 활동 결과를 발표한 최광기 위원은 “작년 5월부터 제기되었던 의혹의 상당수는 회계와 공시의 문제였다”며 “투명한 회계와 공시가 이뤄지도록 내부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국내외 시민과 후원자들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성찰위는 국가·지방 보조금과 지원금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국내외 시민의 후원을 바탕으로 재정을 운영하는 것으로 포함해 △외부 비영리법인 회계 전문가에 회계 검증시스템 구축 △효율적인 회계 관리와 정확한 공시를 위한 인력과 시스템 구축 강화 등을 제안·권고했다.
국가 보조금에서 벗어나 시민 후원 중심의 재정 운영이 가능하다고 본 것은 작년 회계 부정 의혹 사태에도 정기회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정의연이 공개한 2020년 기부금품 모집 완료 보고서를 보면 이 단체는 지난해 2월 17일부터 12월 31일까지 4억 122여만원을 모금했다. 이는 2019년 모금액(3억 8934여만원)보다 1200여만원 늘었다. 최 위원은 “작년 ‘정의연 사태’ 이후 정기후원 회원 가입이 많이 늘어 독립적이고 튼튼한 재정 구조를 준비할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찰위의 권고대로 정의연이 국가 보조금 없이 자립 운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시스템에 나온 정의연의 수익 현황(이하 2019년 기준)을 보면, 보조금은 5억 2796여만원으로 전체 수익의 40%가량을 차지한다. 연간 비용(14억 6685여만원) 규모에서 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6%에 달한다.
보조금 없이 운영하라는 성찰위의 권고사항 이행과 관련해 정의연 측은 “이사회에서 정식으로 논의해야 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국가 및 지방 보조금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공익회계사 네트워크 맑은의 컨설팅을 기반으로 재단의 회계공시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의연이 보조금을 안 받는 게 아니라 못 받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회계 부정 의혹으로 이전 보조금까지 환수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어 더는 보조금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해석이다. 실제 작년 정의연에 9억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준 여성가족부는 올해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사업을 외부 위탁 없이 직접 수행해 사업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성찰위는 회계 부정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작년 7월 공익회계사네트워크 ‘맑은’에 회계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검토를 의뢰한 결과 “정의연의 회계 관리 수준은 전반적으로 양호하다”고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또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몇 개월에 걸친 강도 높은 수사에도 무혐의 처리됐다고 강조했다.
다만 정의연 전 대표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검찰은 윤 의원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기금 명목으로 모금한 비용 일부를 개인 용도로 썼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등에서 3억 6000만원의 보조금을 부정 수령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성찰위는 정의연의 조직·기능 및 사업의 개선과 혁신을 위해 △정대협을 해소하고 정의연으로 통합 △이사회 중심 조직 운영시스템 마련을 제안했다. 최 위원은 “오랜 기간 소수의 활동가가 수많은 사업을 감당하면서 사업 내용과 규모에 맞는 조직체계를 갖추지 못했다”며 “대표 개인의 역량에만 기대는 체제가 아니라 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조직 운영 시스템을 마련하라”고 말했다.
이에 정의연은 이날 총 14명의 이사진으로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사 추천 위원회를 구성해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추천을 받아 객관적으로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이사회 인원은 절반가량 줄였으며, 성찰위에서 활동했던 13명 중 6명 위원을 새 이사회에 포함했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은 “기존 32명 구성의 이사회에서 28명이 사임하고, 10명이 새로 합류해 현재 14명의 이사진으로 새롭게 구성했다”며 “이사진은 앞으로 정의연 활동가들과 한 몸이 돼서 비전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연이 새롭게 구성한 이사회는 이나영 이사장, 한경희 사무총장을 포함해 학계(정진성 서울대 명예교수·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정대화 상지대 총장), 시민단체(한미경 전국여성연대 대표·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전 상임대표·이태호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강혜정 전 정의연 운영위원), 종교계(이숙진 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 총무), 전문가(조영선 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최민희 전 국회의원, 최광기 TALK컨설팅 대표) 등으로 구성했다.
한편 성찰위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 과제와 관련해서는 △수요시위의 전국화·세계화 △국내외 ‘위안부’ 관련 자료의 아카이빙 △세계 시민과 직접 소통하는 ‘위안부’ 교육 뉴미디어 플랫폼 구축 등을 권고했다.
이소현 (atoz@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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