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금융의 폭주..'재난시 채무 감면' 의무화 추진
금융권 "재난 손실을 왜 민간기업이 메우나"
"대출심사 깐깐해져 대출 門 되레 좁아지는 부작용 우려"
野도 부산 선거 겨냥 "산은 등 정책금융기관 부산 이전"
경제 원리를 무시하고 정치 논리로 금융을 손안의 공깃돌처럼 쥐락펴락하는 ‘정치 금융’ 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다. 여당은 재난으로 자영업자·직장인의 소득이 줄어들 경우 금융사가 사실상 의무적으로 빚을 탕감해주는 법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야당은 오는 4월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에 맞춰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부산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3일 국회·금융권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은행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영업 제한 또는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거나 경제의 급격한 변동으로 소득이 현저히 감소한 사업자가 은행에 대출 원금 감면, 원리금 상환 유예를 신청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은행은 신청인의 소득 감소 규모 등을 고려해 관련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다. 위기 시 자영업자 소득이 급감하면 은행에 채무 탕감을 요청할 수 있고 은행은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법이다.
현 정부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을 지낸 민 의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재난으로 영업장 폐쇄 명령이 내려진 사업장은 수익이 없어도 이전만큼 대출 원리금을 납부해야 한다”며 “사업주 도산에 따른 실직자 확대, 빈부 격차 심화 등의 사회적 문제가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개정안에는 청와대 행정관 출신 민주당 김승원 의원과 김남국·민병덕·송재호·양기대·황운하 의원 등 11명이 동참했다.
역시 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은 강도가 더 세다. 개정안은 “재난으로 영업 제한이나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거나 경제 여건 악화로 소득이 현저히 감소한 금융 소비자에 대해 금융 상품 판매업자가 대출 원금 감면 및 원리금 상환 유예, 보험료 납입 유예 등 금융 소비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도록 금융위원회가 명령할 수 있게 한다”고 적시했다. 은행법 개정안이 원금 감면 수혜자를 자영업자 등 ‘사업자’에 한정한 반면 금소법 개정안은 실직자·휴업자 등 ‘금융 소비자’로 넓혔다. 또 은행법과 달리 ‘금융 상품 판매업자’를 대상으로 해 은행뿐만 아니라 카드사·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도 동참하게 했다. 민 의원은 “코로나19로 금융사가 상환 유예 등의 조치는 하고 있지만 제도화돼 있지 않아 지원 범위도 크지 않다”고 발의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재난이 발생하면 재정으로 대응을 해야지 엄연한 민간 상장 기업인 금융사가 왜 손실을 분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도 “은행법 개정안의 경우 자영업자의 손실을 은행이 떠안으라는 뜻”이라며 “결국 은행은 손실을 일반 대출자 금리 인상 등으로 메워 은행을 이용하는 모든 국민이 자영업자의 손실을 메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상황이 조금만 악화해도 대출 원금을 깎아달라는 사람이 많아지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문제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은행이 빚을 쉽게 탕감해주면 누가 성실하게 빚을 갚겠나”라며 “여당이 금융권과 이야기도 하지 않고 법부터 만들어 명령하려는 태도만 보이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김 교수는 “제도가 도입되면 금융권은 자영업자 등에 대한 대출 심사부터 깐깐하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결국 대출 문이 좁아져 돈이 필요한 사람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었다.
야당 역시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일 부산을 찾아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부산으로 이전시켜 명실상부한 금융 특구의 모습을 갖추게 할 것”이라고 했다. 국책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제 금융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인데, 이를 무시하고 본사를 이전하겠다는 것은 지역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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