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하면 다 받는 거 아녜요?" 2시간만에 마감된 '보일러 보조금' 대란

장혁진 2021. 2. 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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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부평구의 한 가정집에 설치된 `친환경 보일러`


■ 친환경 보일러 보조금 수령 '하늘의 별 따기'

"20만 원 지원하는 보일러가 어떤 거예요?"

어느 친환경 보일러 TV 광고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친환경 보일러를 설치한 뒤 시청 혹은 구청에 신청하면 정부 보조금 2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친환경 보일러 설치 지원 사업`을 설명한 것이죠.

80만 원가량인 친환경 보일러는 일반 보일러에 비해 비용은 더 비싸지만, 정부 보조금 지원은 소비자 입장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일 겁니다.

탄소 배출과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있으니, 환경 보전에 기여한다는 기분은 덤일 겁니다.

하지만 친환경 보일러 보조금, 신청만 한다고 반드시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경기도와 인천의 일부 자치단체에서 보조금이 조기 마감되는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 2시간 만에 신청 마감된 보조금

KBS 취재 결과, 인천의 서구, 부평구, 계양구, 미추홀구는 올해 친환경 보일러 보조금이 조기에 마감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서구의 경우는 지난달 15일, 접수 당일 2시간 만에 신청이 마감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당시 구청에는 보일러 지원금을 신청하는 시민들로 길게 줄이 늘어설 정도였다고 합니다.

경기도는 남양주시, 의정부시, 동두천시가 조기에 신청 마감됐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 2~3주 만에 마감이 됐습니다.

올해 배정된 보조금이 단 몇 주 만에 동이난 건 2017년 정부 사업으로 친환경 보일러 지원 사업이 확대된 뒤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마감이 되더라도 가을쯤 마감되는 게 일반적이었다는 얘기입니다.

■ 지난해 1,000대 지원했는데, 올해는 100대?

인천 서구에 올해 배정된 보조금 지원 물량은 900대 입니다. 지난해 서구가 예측한 올해 보조금 수요량(900대)이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서구에서 친환경 보일러 보조금을 지급한 건수는 2911대입니다. 3천 대 가까이 친환경 보일러 보조금을 지원한 건데, 올해 예측치는 그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겁니다.

이렇게 턱없이 낮은 예측치는 보조금이 조기 마감된 지자체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지난해 2705대를 지원한 인천 부평구는 올해 수요량을 900대로 예측했고, 지난해 1024대를 지원한 경기 동두천시는 수요량을 겨우 100대로 예측했습니다. 지난해 각각 7088대와 5500대를 지원한 의정부시와 남양주시는 올해 수요량을 동일하게 2000대로 예측했습니다.

'보조금 대란' 일어난 지자체의 2020년 보조금 지급 대수와 2021년 보조금 수요 예측치


각 지자체 담당자들은 정부로부터 내려오는 국비 예산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수요량을 크게 늘리기가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친환경 보일러 보조금 사업은 국비와 지방비가 6:4로 매칭되는 사업입니다. 보조금 20만 원 중 12만 원을 정부가, 8만 원은 지자체가 부담하는 형식입니다.

정부로부터 받는 국비 수준을 감안하면 지자체 마음대로 물량을 확 늘릴 수가 없었다는 얘깁니다.

■ 5배 늘어난 보급량, 오히려 예산은 줄었다?

올해 친환경 보일러 설치 지원사업에 편성된 정부 예산은 300억 원입니다. 지난해는 323억 원 예산에 2019년 이월 분을 포함해 총 510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올해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친환경 보일러 보급은 4만8천 대 가량이었고, 지난해 보급량은 25만8천여 대였습니다. 1년 만에 5배 이상 늘어난 건데, 왜 예산은 오히려 줄어들었을까요.

환경부는 올해 예산 편성 당시 2019년 말 예산 집행률을 참고했습니다. 당시 예산 집행률은 서울 22.3%, 경기 8.6%로, 서울의 경우 불용 예산이 187억 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부 광역자치단체의 예산 집행률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예산을 늘리기가 부담이었다는 게 환경부 설명입니다. 환경부는 또, 일부 보일러 업체에서 과잉 설치를 유도하는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예산 편성에 고려했다고 말했습니다.

대기관리권역법 시행으로 친환경 보일러는 도심권에선 사실상 설치가 의무화됐다.


■ 엉터리 수요 예측·시장 방관이 낳은 '보조금 대란'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해명엔 허점이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대기관리권역법 시행으로 친환경 보일러는 도심권에선 설치가 불가능한 환경을 제외하면 설치가 의무화됐습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친환경 보일러 설치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보일러 회사들은 공격적으로 마케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물량은 한정되어 있는데도, 소비자들은 누구나 신청만 하면 하면 보일러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됐습니다.

환경부는 공정위로부터 이러한 광고가 `기만 광고` 우려가 있다는 답변도 받았지만,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친환경 보일러 설치가 사실상 의무화된 상황에서, 현행과 같은 보조금 신청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누구는 받고, 누구는 받지 못한다면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보조금 규모를 줄여 소비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방식도 대안으로 제시됩니다.

어쨌든 친환경 보일러를 설치해서 지원금을 받으실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구청에 미리 확인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엉터리로 수요를 예측한 지자체와 시장 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 덕분에, 시민들의 수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입니다.

[촬영기자 최원석, CG 제작 배사랑]

장혁진 기자 (analog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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