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친일" 막말 중독증..한방에 뜨려다 정치권 떠날 수도
"막말은 禍로 부른다 시그널 줘야..무한경쟁 권력구조도 문제"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박혜연 기자 = 차기 서울·부산시장을 뽑는 '4·7 재보궐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언어가 문란해지고 있다. 선후를 따져하는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황당한 논리는 물론이고 상대를 자극하는 막말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북한 원전 논란은 최근 정치권 갈등의 정점에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현직 대통령을 겨냥해 "이적 행위"라고 독설을 내뱉자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당의 명운을 걸어라"며 제1야당의 존폐를 거론했다.
이 와중에 오세훈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북한 원전 문건의 'v'(브이) 표시를 "대통령을 뜻하는 vip가 아니냐"고 했다가 여당과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김종인 위원장은 당에서 구체적 계획을 밝힌 적이 없는 '한일 해저터널' 구상을 부산 방문 현장에서 돌발 제시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은 "친일 DNA"라고 몰아세웠다.
여야 공방이 정책보다는 '이념'과 '감정'에 방점이 찍히면서 국민의 정치 혐오도 짙어지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선거철 황색 정치가 어김없이 표출되고 있다"며 "정치문화 개선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권력구조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DJ시절에도 나왔는데…민주당 '친일DNA' 비판 역풍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한일 해저터널'에 대해 "친일 DNA"라고 치부했다가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1일 부산을 찾아 가덕도 신공항 건설 지지와 함께 "부산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 해저터널 건설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최석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튿날(2일) "국민의힘의 선거용 DNA인 북풍공작·친일 DNA가 동시에 발동한 것"이라면서 "한일 양국 간 정치·외교·역사 문제가 해결 안 된 상태에서 느닷없는 선거용 주장은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거꾸로 '자기오류'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한일 해저터널'은 김재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한 차례씩 거론됐던 아이디어다.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한일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은 2003년에 한일 해저터널을 언급하며 '원대한 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한일 해저터널이) 친일 이적행위면 본인들 대통령 시절에 주장했던 그분들도 다 친일인지 그것부터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꼬집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적행위' '명운 걸라'…북 원전 논란 '막장' 행태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려 했다는 의혹이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오르자, 여야 공방에 불이 붙었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며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행위"이라고 일갈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사안을 직접 언급하는 등 이례적으로 강경대응하면서 정치권 최대 화두로 확전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지난 2일 USB메모리를 공개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무책임한 마타도어나 선거용 색깔론이 아니면 야당도 명운을 걸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응수했다.
오세훈 후보는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개한 '북한 원전 추진방안' 문건 제목에 붙은 브이(v)를 두고 대통령을 가리키는 'VIP'의 'v'라고 주장했다가 논란이 됐다.
오 후보의 기대와 달리 국민 반응은 냉담했다. 곧장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나가는 직장인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시라. 저건 '버전(Version)'의 'v'인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v 의혹'은 역풍으로 돌아왔다.
급기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PPT는 평양 프레지던트 따봉', 'HWP는 히든 원자력 플랜', '브이로그(V-log)는 대통령 기록물의 약어인가' 등 오 후보를 조롱하는 풍자가 번졌다.
결국 오 후보는 당일 오후 "v를 버전(version)으로 보는 게 맞는다는 의견들을 많이 받았다. 그 부분은 유감으로 생각한다"며 의혹을 철회했지만, 유권자의 눈총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정치권 막말 중독증…"권력 향한 무한경쟁"
정치평론가들은 선거철마다 여야 '막말 공방'이 반복되는 배경으로 '쇄신에 실패한 권력구조'를 지목한다. 시대와 국민인식은 크게 진일보한 반면 정치권 막말과 선전이 먹히던 '구시대 정치'에 머물러 있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내 정치는 선거철마다 여야를 막론하고 막말 공세에 집중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일단 권력을 쟁취하면 '통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수 있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통해 무한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무한 경쟁에서 내뱉은 '막말'은 '재앙'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신 교수는 막말 공세를 '설화(舌禍) 정치'라고 정의하면서 "입으로 뱉은 말이 다시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지난 2012년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가 토론회에서 'MB아바타냐'고 말했다가 선거 결과가 바꿨지 않냐"며 "선거 과정에서 나오는 실언·실책은 큰 파급력을 가지고, 다시 큰 악영향으로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정치평론가들은 '막말 정치'의 악순환을 끊을 방안으로 '권력구조 쇄신'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Δ개헌 Δ유권자 인식 향상 Δ정치권 쇄신 3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개헌을 통해 교섭단체 의석수를 5석 정도로 낮춰야 한다"며 "헌법으로 다당제가 보장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양당정치가 해소되지 않고, 막말 공세를 개의치 않는 정치권의 의식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 매체가 발달하면서 유권자 의식이 크게 강화됐지만, 국민 스스로 정치의 '볼모'가 되지 않도록 정치 인식을 높이고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더는 '막말'과 '선전'이 국민에게 먹혀들지 않는다는 시그널을 줘야하고, 정치권도 이런 요구에 맞춰 정책과 인적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ongchoi8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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