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4번 들으면 외우는 '천재견'..2∼3살 수준
4번 듣고도 배워..유아의 '빠른 연결' 사람만의 특징 아니다
“이건 뭐야?” 아이들은 쉬지 않고 질문을 퍼부으면서 처음 보는 사물의 이름을 재빨리 익혀 나간다. ‘빠른 연결’로 알려진 이런 능력은 사람만의 것일까.
개들 가운데도 수많은 장난감 이름을 기억하는 ‘천재 개’가 있다. 2004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개도 사람처럼 빠른 연결 능력이 있다”는 논문의 실험 주인공인 보더콜리 품종 ‘리코’는 장난감 200개의 이름을 구별했다.
이 기록은 2011년 같은 품종의 개 ‘체이서’가 1022개 물체를 구별함으로써 깨졌다. 단어를 처리하는 뇌 영역이 개에도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개는 정말 사람 말귀를 알아들을까).
그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보이는 개들이 정말 새로운 단어와 물체를 연결지어 학습하는 능력이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새로운 실험 결과 일부 특출한 개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사람과 비슷한 방식으로 배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클라우디아 푸가사 헝가리 외트뵈시 로란드 대 동물행동학자 등 헝가리 연구진은 천재 개들이 배제 과정을 통해 새로운 단어를 배운다는 기존 주장을 배격하고 “일부 특출한 개들은 특별한 훈련 없이도 주인과 놀이를 하는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 새 단어를 배울 수 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리코와 체이서가 ‘배제 과정을 통해 배운다’고 입증한 실험 방법은 이렇다. 개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보여주면서 이름을 들려준다. 이후 안 보이는 방에 다른 친근한 장난감과 새 장난감을 함께 두고 새 장난감 이름을 부르며 가져오라고 시킨다. 개는 새 이름을 듣고 이름을 알던 장난감을 하나씩 제외하면서 낯선 장난감을 찾아 물고 나온다.
이 이론에 대한 비판은 개가 새 장난감과 단어를 직접 연결하지 않아도 이름을 아는 것처럼 정답을 맞힐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지선다 문제에서 내용을 몰라도 틀린 선택지를 제거해 정답을 얻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구자들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특출한 능력을 갖춘 노르웨이의 보더콜리 ‘위스키’와 브라질의 요크셔테리어 ‘비키 니나’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두 ‘천재 개’는 각각 59개와 42개의 물체를 이름으로 구별하는 능력을 간직하고 있다.
푸가사는 “재능이 뛰어난 개들이 새 단어를 어떤 조건에서 배우는지 알아보기 위해 위스키와 비키 나나를 두 가지 다른 조건에서 새 단어에 노출했다”며 “배제 과정과 주인과의 놀이라는 두 조건인데, 중요한 건 두 조건 모두 개들에게 새로운 장난감의 이름을 4번씩만 들려준 것”이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내용 소개 유튜브 동영상
연구자들은 2개의 새로운 장난감을 개에 보여주며 이름을 들려줬다. 이어 7개의 익숙한 장난감과 1개의 새 장난감을 다른 방에 두고 새 장난감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예상대로 개들은 대부분 정답을 맞혔다. 이번에 새로 추가한 실험은 새 장난감 2개를 놓고 그중 하나를 가져오라고 시킨 것이었다.
아는 장난감을 배제해 새것을 찾는지 아니면 새 단어와 장난감을 연결해 아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천재는 2개의 새 장난감을 구별하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이번엔 개와 함께 새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4번 이름을 말해 주고 같은 실험을 했더니 모두 새 장난감 2개의 이름을 잘 기억했다. 공동 연구자인 아담 미클로시 교수는 “이런 빠른 학습은 2∼3살 아이가 새 단어를 습득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습득한 기억은 적어도 2분 동안 지속했지만 10분 뒤에는 희미해졌다”고 밝혔다. 사람도 ‘빠른 연결’로 획득한 기억은 이후 반복훈련을 통해서만 오래 남는다.
또 재능이 입증되지 않은 20마리의 개를 대상으로 비슷한 놀이 학습 실험을 했지만 어떤 개도 학습 능력을 보이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훈련을 받지 않고 새 단어를 빨리 배우는 능력은 아주 드물어 소수의 타고난 개들에만 나타난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Scientific Reports, DOI: 10.1038/s41598-021-81699-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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