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정치심의' 종식 못했다

금준경·박서연 기자·문현호 대학생 기자 2021. 2. 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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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방통심의위 '정치심의' 줄었지만 주요 현안서 논란
디지털성범죄·광고 심의 적극 나서, '권익보호' 의미
구조개편·이해관계 독립 과제 남겨

[미디어오늘 금준경·박서연 기자·문현호 대학생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심의해야 한다' 이런 말을 듣고 있죠?” 3년 전인 2018년 1월30일 강상현 4기 방통심의위원장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는 “언론 정상화에 이어 미디어 기구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정치 대결'의 대리전이 치러지는 기구였다. 정부여당과 야당이 각각 6:3으로 위원을 추천하는 구조에서 일방적으로 안건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기사: 방송심의 중징계 가장 많이 받은 SBS]

이 같은 구조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에 유독 가혹한 심의가 이어졌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논란 당시 MBC PD수첩에 '시청자 사과'를 결정했고, 뉴욕타임스 외신 사설 날짜를 오기했다는 이유로 JTBC 뉴스룸에 중징계 '주의'를 의결했다. 주요 현안마다 인터넷을 검열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방송심의 법정제재 6건이 재판 결과 취소되고, 1건은 심의와 달리 무죄 판결을 받는 등 심의의 '공신력'은 추락했다.

▲ 2008년 7월 방송인총연합회와 이명박정권방송장악저지행동은 서울 목동 방송회관 1층 로비에서 방통심의위 '부당심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6:3 구조는 아직까지 변화하지 않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 2009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정치 심의'에 반발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 사진=이치열 기자

'공정성' '객관성' '사회질서' 제재 줄어

문재인 정부 첫 기수인 4기 방통심의위 임기가 지난달 29일 끝났다. 3년 간 회의를 지켜본 구성원들은 '변화'를 체감했다. 최종선 언론노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지부장은 “3기 땐 정치 이슈에 워낙 견해차가 커서, 회의장에서 대놓고 싸우고 비난하고 했는데, 이런 모습이 줄었다. 웬만하면 합의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정치심의가 줄었을까. 방송 심의의 경우 주관적 잣대로 심의할 가능성이 있어 논란이 된 '공정성'과 '객관성' 관련 조항을 하나의 '척도'로 볼 수 있다. 지상파3사·TBS·종편4사·보도채널을 대상으로 '공정성' '객관성' 적용 제재는 박근혜 정부 때인 3기(57건)와 비교하면 43건으로 줄었다. 마지막 한 달인 2021년 1월 내역을 종합하지 않았지만 줄어든 사실은 분명하다.

나날이 중요성이 커지는 인터넷 부문의 통신 심의에서는 '사회혼란 야기 정보'가 논란이 된 조항이다. 사회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할 수 있는데, 기준이 불분명한 데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이 조항 심의 내역을 종합한 결과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간 470건의 시정요구(삭제요청)가 있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 4기 출범 이후인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200건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때마다 이 조항을 꺼내 들어 정부 비난 정보에 대응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세월호 참사(378건), 메르스(11건), 북한 목함지뢰 도발 및 과거 연평도 포격도발 관련(69건), 사드배치(12건) 등을 다룬 게시글에 시정요구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3년 간 코로나19 허위정보 등 200건에 관련조항을 적용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심의 안건에 오른 402건 가운데 대다수인 378건에 시정요구를 한 반면 코로나19의 경우 4624건 가운데 200건만 시정요구를 했다는 점에서 '신중함'에 차이도 있다.

▲ 주요 현안별 사회혼란 야기 정보 시정요구 현황. 붉은색이 박근혜 정부, 파란색이 문재인 정부 시기

'정치심의 종식' 목표에 비해 미흡

그러나 정치심의를 근절하지는 못했다. 2018년 11월30일 통신심의소위원회는 경찰이 요청한 문재인 대통령 치매설 영상 심의에 논쟁 없이 전원 '해당 없음' 및 '각하' 처리하면서 주목 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 국면에선 문재인 대통령 왼손 경례 조작 사진에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전원 삭제 의견을 낸 반면 국민의힘 추천 위원이 반대 의견을 내며 충돌했다. 당시 오픈넷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코로나19 국면이라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감염병과 직접적 관련이 없고 대통령에 대한 정보를 '사회혼란 야기' 조항으로 삭제하는 것은 문제라며 반발했다. 언론노조 방통심의위지부 역시 '구체적 판단 기준'을 밝혀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방송에서는 정치쟁점에 대한 심의가 반복됐다. TV조선 '풍계리 취재비 1만달러' 보도, KBS 김경록 인터뷰 보도, SBS '동양대 총장 직인' 보도 등이다. 이들 보도는 오보이거나 문제가 있지만,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핵심 현안에 여권 추천 위원들이 주도해 제재했다는 점에서 '정치 심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정치 심의'를 두고 이견이 표출되는 상황이다. 4기에서도 이어진 정치심의를 비판하는 시민단체가 있는 반면 오히려 방통심의위가 정치심의 논란을 의식해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으로 심의했다는 지적도 있다.

4기 여권 추천 위원 사이에서도 시각차가 있다. 한 위원은 “조국 보도 관련 제재 가운데 일부는 심각한 저널리즘 원칙 위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다른 위원은 “과거 방통심의위에 오명처럼 따라붙은 문제가 정치심의인데 4기는 나름 독립적으로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이 위원은 “방송, 특히 보도 부문 심의에 힘을 빼야 한다”는 데는 입장을 같이 했다.

▲ 왼쪽부터 4기 심영섭 위원, 이소영 위원, 박상수 위원, 허미숙 부위원장, 강상현 위원장, 황성욱 상임위원, 강진숙 위원, 이상로 위원, 김재영 위원.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소수자 약자·시민 위한 심의 '전환'

4기 방통심의위의 '정상화' 과제는 정치심의 축소와 더불어 '이용자·시청자 권익보호 기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였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 관련 대응은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때 방통심의위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직접 방문해야 하고, 주말이나 야간에는 담당자가 없어 신속한 접수가 이뤄지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4기 방통심의위는 전담 기구를 신설하고 심의 기간 단축 등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디지털성범죄물 시정요구 및 삭제 건수는 2014년 1665건, 2015년 3636건, 2016년 7325건에서 2018년 1만7371건, 2019년 2만5900건, 2020년 3만5550건으로 크게 늘었다. 그간 '해외 사업자는 규제 못한다'며 소극적으로 나서던 모습과 달리 직접 텀블러 등 해외 사업자를 설득해 공조에 나선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디지털성범죄물 삭제 및 시정요구 건수. 2017년 하반기는 공백기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시기적으로 중요한 과제였던 디지털성범죄 문제 대응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해외사업자 규제 관련 국제협력을 펼친 것이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윤정주 위원 재임 시절 기초를 세운 인권, 혐오차별 관련 심의도 의미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인권' '혐오차별' 심의도 강화됐다. 남성 출연자들이 여성 출연자에게 술을 따르라고 시키는 장면을 내보낸 '짠내투어'를 편성한 CJ ENM 계열 방송사들에 '관계자 징계' '경고' 등 중징계를 결정한 대목은 상징적이다. 조현병에 편견을 갖게 하거나 차별금지법을 왜곡하는 방송도 '법정제재'를 받았다. 소비자를 기만한 홈쇼핑에는 최고 수준 징계인 과징금을 연달아 결정했다. 4기 방통심의위는 홈쇼핑에 8차례 과징금을 결정했는데 3기 때 과징금 제재가 1건도 나오지 않은 점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다.

이해관계 깨는 구조개편 과제

지난달 29일 강상현 위원장은 이임사를 통해 정치권의 직간접적 외압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작심발언'을 했다.

방통심의위가 처한 문제는 구조적인 측면이 크다. 따라서 공영방송 문제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판을 흔들지 않는 한 개선이 힘들다. 관건은 추천 구조다. 같은 쟁점 현안에 대한 심의라도 '정부여당 위원 다수'가 나서는 것과 '독립적인 위원 다수'가 나서는 것은 다르다. 문제가 되는 심의 규정 전반에 대한 개정도 외부에서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 결정과 엇갈린 판결들. 4기가 전보다 신중한 심의를 했다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구조가 유지되는 이상 정치 심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김동찬 처장은 “중이 제 머리 깎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공정성 심의 등 측면에선 전보다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심의 조항이 남아 있고 위원 구성 방식이 여전한 점이 근본적 한계”라며 “이 제도가 남아 있는 이상 언제까지나 (다수 위원들의) 선의에 기대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종선 지부장은 “통신심의의 경우 입법부에서 허위조작정보 개념을 정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 규제하라고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심의 개입' 문제도 지적했다. “법에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금지하고 있지만 정당이 노골적으로 심의 신청을 하고 있다. 이러면 위원은 물론이고 사무처도 압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방통심의위를 흔드는 건 정치권 뿐이 아니다. 한 4기 위원은 “특정 방송사 출신이 심의위원으로 오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퇴임 후에도 인적 네트워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방송사들이 심의 제재가 이뤄질 때마다 찾아오는 등 로비를 하고 있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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