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또 등장한 '북한 붕괴론', 실체가 있을까?
김상기·최은주 "허구 가까워" 조목조목 반박
한-미 보수파의 ‘희망적 사고’를 상징하며 돌고 돌았던 ‘북한 붕괴론’이 2021년 초 느닷없이 다시 등장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발신자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편인 그의 이번 ‘북한 붕괴론’에 한국 전문가들은 “북한 상황에 대한 부정확성과 왜곡된 설명 자체가 위험을 초래한다”며 정면 반박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1일(현지시각) 실은 ‘북한 붕괴의 오류’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상기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과 최은주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은 “차 석좌가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북한 분석가 중 한 명”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의 주장이 현실보다는 허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차 석좌의 ‘북한 붕괴론’이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선택과 같은 정책적 오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달 16일(현지시각) <워싱턴 포스트> 기고글에서 차 석좌는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와 핵무기, 붕괴하는 경제가 혼재한 재앙적”인 “또 다른 형태의 북한 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북한의 고강도 국경 봉쇄가 북한 경제 전반을 망가뜨리고 있는 데다 백신 도입도 요원하기 때문에 “이게 진정한 위기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썼다.
차 석좌는 “북한 경제는 정말 향후 1년 이상을 봉쇄 상태에서 살아남을 수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이 위태로운 북한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장마당으로 대변되는 시장 경제를 통제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향한 군사적 행동을 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최악의 경우 내부 혼란으로 북한 정권이 핵무기에 대한 통제를 잃을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그러면서 이런 가능성이 바이든 행정부가 전대미문의 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뜻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에 ‘경종’을 울렸다.
일단 코로나19와 대북제재, 수해 등 ‘3중고’로 인해 북한 경제가 어렵다는 점은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이견이 없다고 보여진다. 북한을 지탱해온 중국과의 교역이 지난해 70% 이상 줄어든 데다 북한 내 민생경제를 이끌던 장마당과 밀무역도 국경 봉쇄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라 문을 걸어 잠근 북한의 경제사정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그 파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김상기 박사와 최은주 박사는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2013년3월)을 채택하고 ‘사회주의 경제강국건설 총집중 노선’(2018년4월)으로 전환한 뒤 이어가고 있는 북한의 경제중심정책이 북한의 맷집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환율과 쌀·휘발유 등의 시장 가격이 크게 불안정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도 “북한이 생존을 위한 내부 조건을 개발”한 상태를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북한 경제가 붕괴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봤다.
경제 악화가 곧 체제 붕괴로 이어진다는 차 석좌의 주장도 “비약”으로 지적된다. 차 석좌가 북한이 화폐개혁이나 장마당 폐쇄 등 시장 경제를 옥죄는 정책을 펼 때 대체로 사회적 반발이 일었다며 제시한 근거는 2016년 10월 전 탈북한 32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 결과다. 5년여 전 조사에 빗대 2021년 사회의 혼란 가능성을 짚은 것이다.
두 전문가는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장마당을 되돌리는 정책을 펼 가능성도 희박하다며 차 석좌의 주장에 대해 “김정은 시대 경제 정책의 변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 기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북한의 장마당은 국가경제 바깥에 존재했지만 ‘김정은 시대’의 장마당은 국가 경제 구조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내·외부적 요인도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엘리트의 균열’ 등 평양의 변화가 전제돼야겠지만 특별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되레 평양에서는 지난달 7000여명이 노동당 8차 대회에서 당 우위 체제를 다졌다고 풀이된다. 외부요인으로는 무엇보다 중국의 입장이 중요한데, 미국과 대치하는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이 ‘핵심 이익’에 속한다. 한·미·일 등 주변국 어디도 북한 붕괴에 따른 급격한 현상 변경을 원하지 않는다.
지난달 당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는 차 석좌의 분석에 대해 두 전문가는 “선험적 가정에 기초한다”며 북한이 지금껏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도발적’ 행동이나 언사를 하지 않고,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미국이 민감해 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등장시키기 않은 것에서 북한의 협상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두 전문가는 차 석좌의 기고가 “북한 현실에 대한 부정확한 설명과 왜곡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북한 붕괴론은 지속적인 오류이고 미국 외교 정책에 있어서 신화에 가까운 것”이라며 “북한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과 왜곡된 시각은 북한에 대한 정책을 호도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조언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미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결국 8년을 흘려보냈다.
사실 차 석좌가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제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12년 4월에도 “차기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기 전에 북한은 내적 또는 외적 요인으로 인해 붕괴할 수 있고, 미국이 무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자유아시아방송>(RFA) 2012년 4월12일) 20대의 젊고 경험 없는 김 위원장이 대남·대미 정책에서 무리수를 둬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내부적으로도 권력 장악에 실패하리라는 관측이었다.
이듬해 11월 차 석좌는 북한 붕괴를 점친 전문가들의 예측과 달리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이라는 지적에는 “북한 정권의 특징은 ‘아랍의 봄'과 같이 끝이 날 때까진 안정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당장 내일 붕괴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불안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중앙일보> 2013년 11월21일) 2014년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는 북한의 경제상황과 리더십의 문제,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 등을 꼽으며 “(김정은 체제가) 지속될 수는 없다. (10년 내) 통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차 석좌는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이 나오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17일(현지시각)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는 “(북한과) 새로운 관여를 하기 위해선 대담한 정치적 전략”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영변 핵시설에 대한 검증 가능한 동결→북-미 간 새로운 관계 구축→새로운 비핵화 협상’으로 나아가는 ‘단계적 접근’을 제안한 바 있다. 한달도 안 돼 결이 전혀 다른 주장을 한 배경에 의문이 쏠릴 수밖에 없다.
김일성 주석이 숨진 1994년 7월8일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숨을 거둔 2011년 12월17일 직후 가장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북한 붕괴론은 ‘수령’의 죽음으로 북한 사회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일각의 ‘희망사항’으로 끈질기게 제기됐다. 한 때는 ‘김정은 위원장 제거’에 따른 붕괴론까지 언급됐지만 비현실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사그라졌다. “그때도 북한은 지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다수 한반도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변이 코로나 ‘지역사회 감염’ 첫 확인…“국내 전파는 시간 문제”
- ‘코로나19 백신을 지켜라…대테러 작전 방불케 한 수송 모의훈련
- 개인투자자 반발에 ‘공매도 금지’ 5월2일까지 다시 연장
- “조선시대도 역병 돌면 명절에 안 모여” 이 종갓집의 ‘클라스’
- 수도권 폭설 예보…서울시, 퇴근 집중배차 시간 30분 늘려
- 이송 거부하던 안디옥교회 목사, 확진 닷새 만에 격리병원으로
- 홍남기의 ‘지지지지’…‘보편 재난지원금 주장’도 그치게 할까
- “리얼돌 허용 불복” 관세청, 수입업체 손 들어준 법원에 반기
- [르포] 바닥 물 핥으며 버틴 동물들…10개월간 주민들이 돌봤다
- 냄비·경적 소음으로 시민 불복종…미얀마, 반쿠데타 시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