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가치를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게임스톱 사태가 던진 근본 질문
[경향신문]
미국 개미(개인투자자)들의 집중 매입으로 폭등했던 게임스톱 주가가 이틀 연속 급락하면서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 비이성적인 광기가 기업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을 무시해 시장에 혼란을 야기했다는 지적과 함께 ‘시장의 가치를 누가, 어떻게 정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게임스톱 주가는 전장보다 60% 폭락한 9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29일 325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던 게임스톱 주가는 이번주 증시 개장 이후 이틀 연속 폭락하며 반에 반토막이 났다.
이로써 헤지펀드의 아성에 균열을 냈던 게임스톱 사태는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를 중심으로 모인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한 달간 게임스톱의 주가 하락을 예측하고 이를 공매도하는 헤지펀드들에 반발해 게임스톱 주식을 사들였다. 결국 주가가 하락할 것이란 예측과 달리 게임스톱 주가는 지난 한 달 동안 1600% 상승하며 헤지펀드들에 큰 손실을 안겼다.
지난주 시장 상황을 ‘혼란’으로 규정했던 월가의 금융사들은 게임스톱 주가의 연이틀 폭락에 안도감을 내비쳤다. 퍼시픽라이프 펀드어드바이저의 맥스 코크먼 자산배분 대표는 CNBC에 “레딧의 로켓 우주선은 연료가 떨어져 지상으로 다시 추락하고 있다”며 “중력이 여전히 작용하고 펀더멘털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목격하자마자 다른 시장 참여자들도 안도감을 느끼고 증시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 관행을 벗어난 이번 사건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은 지난 1일 게임스톱 사태를 두고 ‘시장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게임스톱 주식이 한 주당 300달러 이상의 값으로 거래되는 상황은 분명 비정상적이지만 이 또한 시장 원리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해 말부터 올초까지 헤지펀드들은 게임스톱의 주가 하락을 예측할만한 근거들을 다수 가지고 있었다. 게임스톱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게임과 관련 기기를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10여년 전부터 온라인 상거래가 보편화되면서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고객들이 인터넷에서 게임을 다운로드하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게임을 구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실적이 더 악화됐다. 지난해 2~10월까지 게임스톱은 전년 동기 대비 31% 감소한 30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다보니 유지비가 높아 같은 기간 2억9600만달러의 손해를 봤다. 헤지펀드들은 주가 하락을 확신한 나머지 한때 시중에 유통되는 게임스톱 주식의 140%를 공매도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개인투자자들이 이렇다 할 근거 없이, 월가에 대한 반감만으로 게임스톱 주식을 매입한 것은 아니었다. 게임스톱 주식 매입을 앞장서 독려한 월스트리트베츠의 이용자 키스 길(34)은 게임스톱의 저평가를 주장하며 몇가지 관점을 제시했다. 게임스톱이 중고 게임 등을 거래하는 시장으로서 온라인 상거래로 대체될 수 없는 기능이 있고 탄탄한 회원제 시스템을 갖춘 점, 새로운 콘솔 게임기의 출시로 현금 유입이 가능한 점, 전자상거래 사업 경험이 있는 인사들이 새로운 이사회 구성에 포함된 점 등이었다. 길은 게임스톱에 대한 투자가 워렌 버핏의 가치 투자와 다르지 않다며 다른 이용자들을 설득했다. 결과적으로 이 설득은 효과적이었다.
CNBC 등 주요 언론들은 레딧의 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려 주식 시장을 교란한다고 지적했다. 레딧의 게시판 운영을 총괄하는 최고경영자 스티브 허프만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같은 비판을 CNBC와 경제 매체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것이 (주식 시장에서)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이라며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이론이 있고, 그들만의 욕망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의 가치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관점의 정보와 그를 통한 자금 동원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간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데 주로 이용됐던 정보는 기업 관련 기사 등 공식적인 정보였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몇몇 연구결과를 인용해 기사 등 공식적인 정보가 시장 평가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1988년 MIT와 하버드대학이 수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전체 주가 변동의 3분의 1정도만이 특정 기업 관련 기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UCLA에서 유사한 연구를 진행한 브래드포드 코널 교수는 “주요 기업의 펀더멘탈과 관련된 경제 기사와 주가의 움직임을 연관시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치권 역시 게임스톱 사태 이후 ‘시장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이 정보와 자금 동원에 있어 주도권을 갖는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배츠와 같은 커뮤니티 토론방과 로빈후드 등 수수료 없는 증권 거래 플랫폼은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미국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은 지난 29일 게임스톱 사태와 관련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낸 질의서에서 “기업의 기초체력에 부합하는 주가가 시장에 반영되도록 SEC는 어떤 조치를 취할 계획인가”를 묻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게임스톱 주가가 과대평가 돼 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이번 주가 폭등이 그간의 사업부진을 만회할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부채를 줄이거나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는데 사용할 종잣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임스톱과 함께 개인투자자들이 집중 매수해 주가가 급상승한 종목인 극장체인 AMC는 지난주 주식을 매각해 코로나19 기간을 버틸 현금을 확보했다.
앤디 우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 조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특정 기업이 갑자기 주가가 폭등해 추가 자본을 확보하고 매장을 매각할 시간을 벌어들였다고 가정해보자”며 “그 시간은 파산 위험을 피하고 폭등한 주가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시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보 생산과 자금 동원에 있어 우위를 차지하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는 투기적 시장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워런 상원의원은 MSNBC에 “게임스톱 사태가 보여준 것은 월스트리트의 게임이 수년 동안 조작되고 조작돼 왔다는 것이다”라며 “헤지펀드와 거대 기업만이 이점을 누려왔다”고 했다.
제임스 엔젤 조지타운대학 맥도너 비즈니스 스쿨 교수 역시 더 타임즈에 “스스로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 났는지 물어보라. 주가조작인가? 집단 정신병인가? 아니면 무언가 잘못된 시장 구조가 원인인가?”라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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