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니 배달하지"..주소 잘못 입력해 놓고 폭언한 손님

공민경 2021. 2. 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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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일) 밤, 한 배달 대행업체 사장이라고 본인을 밝힌 글쓴이는 고객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내용의 폭언을 들었다며 전화 통화 녹취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거기서 배달이나 하고 있죠. 본인들이 공부 잘했어 봐요, 안 하죠?"
"고작 본인들 3건 해봤자, 1만 원 벌잖아요, 안 그래요?"
"나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1만 원이 나오고 2만 원이 나오고 3만 원이 나와요."

만약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서 듣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고객은 왜 이런 폭언을 배달 대행업체에 한 걸까요?

■ 발단은 손님의 '주소 기재' 실수

글쓴이가 밝힌 사건 개요는 이렇습니다.

지난 1일 오후 5시쯤, 해당 고객은 배달 대행업체를 이용해 커피 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배달 주문을 하면서 고객이 기재한 주소가 '잘못된 주소'였다는 겁니다. 배달 노동자가 잘못된 주소임을 깨닫고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해당 손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30분 가량을 헤매다 겨우 연락이 닿았고, 고객이 일하고 있다는 서울 동작구의 한 학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찾아간 학원에서도 배달 노동자는 또다시 기다려야 했습니다. 손님이 '바쁘니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고, 기다리고 있으면 주소를 잘못 적어 발생한 '추가 배달요금'도 계좌이체로 주겠다고 한 겁니다.

배달 노동자는 다음 배달 주문이 들어와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밖에서 기다리다 학원 내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문제의 고객이 '아이들 가르치고 있고 바쁜데 밖에서 기다리지 않았다'는 취지로 배달 노동자에게 화를 낸 겁니다.

■"사기 치면서 그렇게 3천 원 벌어가면 부자 된대요?"

우여곡절 끝에 추가 배달비 결제는 이뤄졌지만, 손님의 분풀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배달 노동자가 소속된 배달 대행업체와 커피를 주문한 카페에도 항의 전화를 한 겁니다. 20분 동안 이뤄진 배달 대행업체 사장과 문제의 손님과의 통화 녹취에는 배달 기사에 대한 비하성 발언이 이어졌습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거기서 배달이나 하고 있죠", "공부 잘했어 봐, 배달일을 하겠느냐? 배달 업체 사장하고 있지." 라는 발언으로 통화 녹취는 시작합니다.

또 "고작 본인들 배달 3건 해봤자, 만 원 벌잖아요?"라며 본인은 가만히 있어도 1만 원이 나오고 3만 원이 나온다고도 과시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주소를 제대로 써넣어야 했다는 사장의 항의에 손님은 적반하장으로 나옵니다. "기사들이 뭔 고생을 해요, 그냥 오토바이 타고 부릉부릉 하면서 놀면서 음악 들으면서 다니잖아."

문제의 손님은 '주소를 잘못 기재해 발생한 추가 배달비를 내기 싫어서 항의 전화를 하는 게 아니다'면서도 "1만 2천 원 짜리 커피를 시켜서 7, 8천 원 배달비를 받는 카페에도 항의했다"고 당당히 밝힙니다. 그러면서 배달 노동자가 추가 배달금을 '커피 업체 측에 줘야 한다'라고 잘못 전달한 점을 지적하며, 배달 노동자들을 '사기꾼'으로 몰아갑니다.

전화 녹취 파일에서 그 일부를 발췌·정리했습니다. (녹취 파일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손님 :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거기서 배달이나 하고 있죠.
배달 대행업체 사장(이하 사장) : 말씀을 왜 그렇게 하세요?
손님 : 아니 맞잖아요. 본인들이 공부 잘하고,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고 했으면 배달일을 하겠어요?
사장 : 지금 비하하시는 건가요?
손님 : 맞잖아요. 본인들이 공부 잘 했어 봐요. 안 하죠, 그렇게?
...
손님 : 기사들이 뭔 고생을 해요. 그냥 오토바이 타고 부릉부릉 하면서 놀면서 음악 들으면서 다니잖아, 본인들.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아요? …배달 기사들이 다 어떻게 하고 돌아다니는데?
사장 : 지금 말이 너무 지나쳐요.
손님 : 맞잖아요. 본인들 음악 들으면서 신나게 음악 들으면서 오토바이 타다 배달해주고. 3800원 벌고.
...
사장 : 잘 버시는 분은 천만 원도 가져가요.
손님 : 그렇게 고생해서 천만 원이요? 내가 일주일에 버는 게 천만 원이에요, 미안한데.
사장 : 일주일에 천만 원 버시는 분이 그 3천 원이 그렇게 부당하신 건가요?
손님 : 거지 같아서요. 네 거지 같아서요.
사장 : 하아...
손님 : 너희가 하는 꼴들이요.
사장 : 대화가 안 통하네.
손님 : 너희가 하는 꼬락서니들이 꼴사나워서요.
사장 : 그러니까 지금.
손님 : 남한테 사기 치면서 그렇게 3천 원 벌어가면 부자 된대요?

■ 해당 학원 "강의 안 하는 셔틀 도우미…어제 학원 그만둬"

학원으로 비난이 빗발치자 해당 학원 측에서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커피 주문을 하고, 항의 전화를 건 사람이 '학원 강사'가 아닌 아이들의 학원 차량 등하원을 도와주는 '셔틀 도우미'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해당 도우미는 학원에서 지난 11월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어제(2일) 퇴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학원 측 관계자는 "어제 오전에 갑자기 관두겠다고 학원에 통보했는데, 이번 논란 때문인지는 모르겠다"고 KBS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학원 측 관계자는 "한 번도 수업은 하지 않은 분인데, 학원에 항의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당황스럽다"며 "앞으로 직원들 인성교육을 철저하게 하겠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논란이 된 글을 올린 사람과 도우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지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 피해 배달 노동자 "바라는 건 가해 손님의 진심 어린 사과뿐"

당시 배달을 했던 피해 배달 노동자와 라이더유니온 측도 오늘(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피해 배달 노동자는 가해 손님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랄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처럼 질타를 받을 상황은 아니라 생각한다. 다른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가해자님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다"라고 말입니다.

라이더유니온 측도 '가해 손님은 공인이 아니라 개인'이라며 특정 학원에 대한 과도한 비난을 멈춰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이번 사건이 단순히 나쁜 손님에 의해 발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배달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근본적 원인으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배달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서비스 요구나 폭언·갑질은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며 점점 심화하고 있습니다. 어제(2일) 배달 노동자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아파트에서 도보 배달을 강요하거나, 배달 노동자는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것을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오늘 기자간담회에서 한 배달 노동자는 배달 노동자에 대한 인격 모독을 멈춰달라며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추운 날씨와 코로나 19 같은 사태에 국민들에게 배달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있다 생각 마시고, 가해자와 학원에도 비난을 멈춰주세요…"

편리하게 음식 등을 받는 배달 서비스 '혜택'만 누리고, 배달 노동자는 '배달비'만큼도 존중하지 않는 이런 사태가 더는 이어져서는 안 될 겁니다.

공민경 기자 (bal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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