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 노조, 1년만에 또 꺼낸 파업 카드.. 구조조정 시기 놓치나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지만, 노동조합이 1년 만에 또다시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선 사측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차원이라고 하지만, 해를 넘긴 지난해 임금 및 단체협약 조건으로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어 현 상황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가 추진하는 구조조정 작업이 지연되면 실적 개선을 위해 필수적인 신규 생산 물량 확보도 어려워질 수 있다.
르노삼성 노조는 지난 1일부터 이틀간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전체 유권자 2180명 중 1245명이 찬성해 57.1% 찬성률로 파업이 가결됐다고 3일 밝혔다. 4개의 노조 중 대표노조인 르노삼성차노조(조합원 1969명)와 민주노총 금속노조(42명)만 투표에 참여했는데, 대표노조의 찬성률은 61.4%, 금속지회 찬성률은 88.2%였다. 노조는 당장 파업에 나서지는 않겠지만, 지난해 타결하지 못한 2020년 임단협 협상을 위한 조건으로 사측에 기본급 인상, 노동 강도 완화, 고용 안정 등을 강력하게 요구할 방침이다.
회사 안팎에서는 악화되는 경영 환경에서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르노삼성은 지난해 3월 닛산 로그의 위탁생산 계약이 종료되면서 수출 물량이 급격히 줄었고, 내수 판매도 급감하면서 지난해 8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일감이 줄면서 생산 규모도 대폭 축소된 상태다. 르노삼성은 재고 관리를 위해 야간 생산조를 없애고 주간 생산조만 운영하고 있다.
본사인 르노그룹은 르노삼성의 수익성 개선을 주문하며 경영 개선을 압박하고 나섰다. 루카 데 메오 르노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수익성을 중심으로 경영전략을 전환하는 내용의 ‘르놀루션(Renaulution)’을 발표하면서 한국의 르노삼성을 라틴아메리카, 인도 공장과 함께 ‘수익성을 더 강화해야 할 사업장’으로 지목했다. 이에 르노삼성은 연초 수익성 개선을 위해 '서바이벌 플랜'을 가동하고,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전체 임원의 40%를 줄이고 남은 임원의 임금을 20% 삭감하기로 했고, 이어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르노삼성은 일감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조직 효율화를 통해 경영 실적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실제로 르노삼성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적자 구조가 심화된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실적 개선에 성공한 적이 있다. 르노삼성은 지난 2012년 8월, 900여명의 직원이 퇴직한 ‘리바이벌 플랜’을 시행해 2013년 흑자 전환했다. 이번 '서바이벌 플랜' 역시 희망퇴직 등을 통해 조직을 효율화하고, 내수 시장에서 수익성을 강화하는 한편 ‘XM3’ 등 수출 차량의 원가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르노그룹 본사는 생산 비용이 낮고 공급 안정성이 높은 곳으로 생산 물량을 많이 배정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르노삼성이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권을 통해 사측을 압박하고 나서면서 르노삼성의 구조조정 일정은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노조가 파업을 통해 고용안정을 주장하면 노사 갈등이 장기화돼 생산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본사가 신규 생산 물량 배정의 조건으로 강조하는 생산 효율성·안정성 향상과는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회사 관계자는 "세계 각국에 포진한 50여개의 르노그룹 생산 기지는 본사로부터 생산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노조의 쟁의 활동은 본사로부터 추가 일감을 얻는 데 마이너스 요인"이라며 "노사 갈등이 지속되면 유럽에 수출할 XM3 물량 역시 다른 지역으로 재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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