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예측 환경부가 가져간 날 전영신은 분노" 남편의 사부곡
"환경부, 황사연구과 없애고 기상청에 모욕 줘"
동아시아 황사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고(故) 전영신 전 기상청 국가태풍센터장이 세상을 떠난 날 전 박사의 남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전 박사가 평생을 바쳐 만든 황사 예측 시스템이 무너졌다며 한탄했다.
국내 기상 연구 체계에 이바지한 전 박사의 공이 물거품이 된 데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지만, 기상 연구와 과학자의 노력을 가볍게 보는 정부의 태도에 전 박사를 대신해 비판한 것이다.
전 박사는 숙환으로 지난달 30일 일기로 소천했다. <관련 기사: "관악산 덮은 저 흙먼지는..." 황사 연구의 대가, 전영신 박사 별세>
"파란 하늘 사랑한 전영신이었는데… 환경부에 치를 떨어"
조 전 원장은 전 박사 발인 이튿날인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영신은 파란 하늘과 우리 역사를 사랑했다. 자신의 연구로 그 사랑을 보이려고 했다"며 "치열하게 내달렸지만, 이젠 영신이가 만든 황사연구과는 없어지고 기상역사팀도 사라졌다"고 적었다.
기상청 황사연구과는 1990년대 전 박사가 기상청 근무를 시작한 뒤 30년이 넘게 연구 업적을 남긴 곳이다. 전 박사는 황사연구과에 근무하는 동안 연구 실적을 인정받아 2000년 국무총리상과 2013년 한중일 환경장관회의(TEMM)에서 환경상을 수상했다.
전 박사는 국내 황사 농도 측정 및 1개월 단위 황사 예측 모델과 황사 감시 기상탑 설치를 끌어냈다. 한국과 중국, 일본, 몽골 등 4국의 황사 예보 협력 체계도 구축했다.
기상역사팀은 2010년 전 박사가 황사연구과장으로 있을 때 만든 조직이다. 평소 기상 역사에 관심이 많던 전 박사는 미래 기후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선 고대사부터 우리의 기후 역사를 정리해 놔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상청이 2011년부터 '한국기상기록집'을 내고 있는데, 이 역시 전 박사 손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황사연구과는 물론 기상역사팀은 이제 없는 조직이 됐다고 조 전 원장은 전했다. 환경부가 황사 연구 업무를 자신의 부처 소관으로 가져가겠다고 하자 기상청은 결국 기존 조직을 없애야만 했다는 것이다.
조 전 박사는 "날씨도 기후도 과학도 모르는 사람들이 청와대와 환경부에서 내리꽂아 청장과 차장으로 들어와 짓밟아 버렸기 때문"이라며 "결국 오랫동안 쌓아온 성과와 체계를 무너뜨리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환경부가 황사 예측을 가져가던 날 전영신은 분노했다"며 "환경부가 기상청에 가하는 회피할 수 없는 모욕과 치욕에 치를 떨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전 박사는 또 "영신이가 기상청에서 했던 일은 책자와 보고서로 남아 있을 뿐 현재 작동되고 축적되는 시스템은 거의 다 무너져 버렸다"고 비판했다.
"정부, 과학적 접근보다 정무적 접근만 내세워"
조 전 박사는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부곡을 남긴 이유에 대해 "황사와 미세먼지 예측하는 조직이 (기상청과 환경부 간) 충돌하자 기상청의 황사 예측 업무를 없애버렸다"면서 "정부가 국립연구기관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정무적 감각으로만 바라본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과학이 기반이 돼야 막을 있는 것처럼 미래 기후 문제도 마찬가지"라며 "이런 걸 무시하고 자기 눈앞에 있는 실적만 챙기려고 하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 전 원장은 황사 예측 업무를 환경부가 아닌 기상청이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배출량을 조절하는 건 환경부 업무이긴 하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패닉 상태에 빠질 정도로 올라가면 그건 날씨 문제"라며 "황사 예측 시스템은 미세먼지와 연동해 작동하도록 만들어놨는데, 미세먼지가 이슈가 되니 환경부가 갖고 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전 박사는 전 박사 발인 날인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전 전 박사가 아끼던 드레스 사진을 올렸다. 그는 이 사진을 올리며 "야학을 함께 했던 분이 애써 만들어 준 드레스여서 너무나 좋아했다"며 "이것이 영신이와 함께한 마지막 기억이 됐다. 우리 딸도 저 드레스를 입었으면 했다"고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 "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던 영신이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찬란하게 예뻤다"며 "그때 그 옆에 제가 있었고 저는 미칠 듯이 좋았다. 우린 팔짱을 끼고 함께 걸었다. 그래서 우린 나름 멋지게 살았다"고 회상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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