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광복 전후 일본인 재산 소급 몰수한 미군정청법 합헌"

전현진 기자 2021. 2. 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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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헌법재판소. 경향신문 자료사진


광복 직전 한국에 남은 일본인의 재산 거래를 소급 적용해 전부 무효로 한 미군정청 법령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해방 전후 일본인의 재산을 미군정 소유로 한 재조선 미국 육군사령부 군정청법(미군정청 법령)이 소급입법 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2016년 11월 울산에 있는 토지 소유권을 경매로 취득한 A씨 등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2017년 4월 울산 중구가 이 토지를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냈다. 울산 중구는 이 토지가 전 소유자의 부친 김모씨가 1945년 8월10일 재조선 일본인에게 매수해 같은 해 9월7일 등기를 마쳤다는 점을 발견했다.

1945년 9월25일자로 공포된 미군정청 법령의 제2호와 제33호는 1945년 8월9일 이후로 일본인의 모든 재산권 이전 행위를 금지하고 일본인의 모든 재산은 미군정청이 취득한다는 내용을 소급 적용해 규정하고 있다. 8월9일은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날이다. 일본의 패전은 사실상 확정됐고,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을 포함한 포츠담선언의 수락이 기정사실화된 시점이었다. 울산 중구는 미군정청에 귀속된 일본인 재산은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된 점 등을 들어 A씨 등은 소유권 없는 자들로부터 국유 재산을 승계했으므로 청구가 기각돼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A씨 등은 울산 중구와 법정 다툼을 벌이던 중 법원에 신청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기각되자 2018년 1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들은 미군정청 법령 조항이 소급 입법을 금지하는 헌법을 위반했으며, 침략전쟁과 무관한 일본 국민의 사유재산까지 몰수하고 일본인 재산을 적법하게 취득한 한국인의 재산까지 몰수하도록 해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 사건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지 먼저 살피면서 “폐지된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은 원칙적으로 부적법하지만, 폐지된 법률의 위헌 여부가 관련 소송사건 재판의 전제가 돼 있다면 위헌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헌재는 “한반도에 남아있는 일본인 재산은 불법적인 한일합병조약에 따라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축적한 재산으로서 일제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 통치의 유산이므로 미군정에 의하여 일본인이 소유·관리하던 재산에 대한 보전 및 귀속 조치가 불가피했다”며 “재조선 일본인과 한국인들이 당시 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이나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신뢰했더라도 그러한 신뢰가 헌법적으로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본인들이 조선에 진출하여 축적한 재산을 보전하고 이양한다는 공익은, 한반도 내의 사유재산을 자유롭게 처분하고 일본 본토로 철수했던 재조선 일본인이나 패망 직후 일본인으로부터 재산을 매수한 사람들에 대한 신뢰 보호의 요청보다 훨씬 더 중대하다”고 했다. 소급 입법에 대해선 “역사적으로 매우 특수하고 이례적인 조치이므로, 소급입법의 합헌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진정소급입법이 빈번하게 발생해 그로 인한 폐해가 만연될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히 불식될 수 있다”고 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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