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선원 석방' 이란, 묶인 돈 받으려던 노림수가 자충수되나
이란, 융통성 보였지만..美 동맹 건드리며 '폭력적 방식'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이란 정부가 해양오염을 이유로 지난달 4일 나포했던 한국 국적 유조선 'MT-한국케미호' 선원 19명을 2일(현지시간) 한 달여 만에 석방하면서 그 배경에 눈길이 모인다. 한국인 국적 선장 1명과 선박(한국케미호)을 아직 억류 중이기는 하지만 구금했던 총 20명의 선원 중 거의 모든 인원을 풀어주는 결정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번 나포의 이유로 꼽히는 '한국 은행에 동결된 이란의 석유 수출 대금'과 관련, 한국 정부가 대금을 납부할 수 있는 조치들을 찾아보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밝힌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이란이 수출 대금 동결의 원인인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를 풀고자 구금했던 선원들의 석방을 통해 조 바이든 행정부에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만 이란의 이번 '한국 선박 선원 구금→석방' 과정은 어떤 실익도 얻지 못한 '이란의 자충수'로 종료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대금을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확정하지 못했고 사실상 이 문제를 해결할 키를 쥐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이번 이란의 행동은 미국의 동맹국들을 향한 위협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
◇'효과적인 장치' 구체적 내용은 아직=이란은 한국케미호를 나포하는 공식적인 이유로 '기름 유출로 인한 환경오염 가능성'을 제기했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까지 제시하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의 제재로 한국 은행 2곳에 동결된 원유 수출 대금 70억 달러(약 7조8000억원)를 받지 못한 데 대한 보복성 행동이 아니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이란은 2010년 미국 정부의 승인 아래 외화를 직접 거래는 하지 않으면서 물품 교역은 할 수 있는 상계 방식의 원화결제 계좌를 운용했었다.
이는 한국 은행 2곳에 개설된 이란 중앙은행 계좌로 운영됐는데, 2018년 미국 정부가 핵합의를 탈퇴하고 2019년 9월 미국 정부가 이란 중앙은행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에서 국제테러지원조직(SDGT)으로 제재 수준을 올리면서 운용이 중단됐다. 그러면서 자금 70억 달러가 발이 묶였다.
실제 이란은 환경오염을 앞세우면서도 한국 측과 접촉 시 동결자금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선원들의 석방이 가능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해왔다.
대표적으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이란 관영통신 IRNA 보도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모즈타바 졸누르 이란 국회 국가안보위원장은 27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송영길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과 가진 화상회담에서 "한국 내 동결된 이란 자금 반환을 앞당기는 조치는 압류 사태 해결을 위한 사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석방은 이에 따라 동결자금 부분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결 의지를 이란이 받아들이면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일 이란의 타스님 통신사에 따르면 이란 외무부 대변인 사이드 하티브자데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란의 인도주의적 행동으로 한국 선박의 선원들이 이란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세이에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교부 차관과 최종건 한국 외교부 제1차관 간 전화통화에서 동결자금 즉각 해제 및 그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effective mechanisms)에 대해 대화가 있었다고도 밝혔다. '효과적인 장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이 문제 자체가 미국의 제재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어떤 방법이 됐든 미국과의 밀도있는 물밑협상 및 승인이 있어야 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란, 융통성 보였지만 방식은 폭력적=이란이 이번 소동을 일으킨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려 했다는 게 중론이다. 한미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의 시선을 끌려 했다는 것이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케미호가 나포됐던 때인 4일 대변인 명의로 "우리는 해당 선박을 즉시 풀어주라는 한국의 요구에 동참한다"고 입장을 표했다.
이후 이란은 선원들을 석방함으로써 미국의 요구에 최대한 응하는 행동을 취해 트럼프 행정부 때 틀어진 양국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뉴욕타임스는 "이란의 움직임(한국 선원 석방)은 바이든 행정부에 간접신호를 보내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 하에서 급격히 악화된 (미국과 이란 간)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신문은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이 (핵합의를) 준수한다면 핵합의에 재가입하고 싶다'고 밝힌 반면 이란은 '미국이 먼저 제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결국) 양측 모두 외교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즉각적인 의지를 공개적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한국 선박 선원들을 석방하기로 한 것은 제재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 어느 정도 융통성을 보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현재까지 이란의 한국 선원 석방에 대한 미국 측 입장이 나오진 않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앞서 핵합의 복귀 의사를 밝혔던 만큼 이란은 적잖은 기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이 이란의 폭력적 방식에 문제제기를 하며 더 소통의 문을 견고히 닫을 가능성도 있다. 4일 당시 미국 국무부는 "이란 정권은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페르시아 만에서 항행의 자유를 계속 위협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더구나 이란은 아직 한국 국적의 선장과 선박은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억류를 해제하지 않은 상태다.
cho1175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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