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바닥 물 핥으며 버틴 동물들..10개월간 주민들이 돌봤다
인적 끊긴 숲 속 테마파크에 말, 낙타, 원숭이 등 전시
얼어붙고 분변 가득한 사육실..보다 못한 시민이 돌봐
낙타 ‘햇님’이는 제보자를 발견하자 성큼성큼 다가왔다. 키 2m가 훌쩍 넘는 단봉 낙타가 마치 아는 척이라도 하듯 울타리로 바짝 다가섰다. 이들의 만남도 잠시. “다가가지 마세요. 사진 찍지 마시구요.” 동물원 직원의 큰 소리에 놀란 낙타가 뒷걸음질 치다 진흙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곳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난 혹한에 언 고드름이 아직도 매달린 원숭이 전시실 앞. 전날까지도 없었다던 온열등이 켜진 사육실에서 일본원숭이 한 마리가 쉴새없이 점프를 반복하고 있었다. 갑자기 유리창으로 돌진하며 사람을 위협하기도 했다. “아이고 나리야, 얘가 이래도 제가 들어가면 막 장난을 쳐요.” 제보자는 원숭이가 안타까운지 전시실 밖에서 유리창을 쓰다듬었다.
바닥 물 핥으며 하루하루 버틴 동물들
2월2일 오전 10시 대구 달성군 한 체험동물원에 1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동물원 직원, 동물보호단체, 담당 관청 공무원 그리고 지난 10여 개월간 이곳의 동물을 돌봐온 한 시민이었다. ‘자연친화적 체험형 생태동물원’을 표방한 ㄱ동물원은 대구 주암산 자락의 테마파크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각종 놀이기구와 전시, 공연시설, 동물원까지 입점해 있는 테마파크는 코로나 장기 휴업으로 썰렁한 상태였다.
2019년 개장한 ㄱ동물원은 2020년 2월 코로나 사태를 맞으며 현재까지 휴장과 개장을 반복하고 있다. 제보자 김아무개씨가 방치된 동물들을 처음 알게된 것도 그 즈음이다. 동네 주민인 그는 지난해 3월 운동 삼아 테마파크를 걷던 중 우리에 갇혀있는 말들을 처음 발견했다. “어디선가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라구요. 소리를 쫓아서 가보니 말이 빈 물그릇에 머리를 쿵쿵 박고 있었어요.”
처음엔 사육사가 챙기겠거니 지나쳤지만 소리는 4~5일째 반복됐다. “목마른 동물 물이라도 먹게 해주자”는 심경으로 새벽 산책길에 물통을 들고 와 물을 주기 시작했다. 20년차 캣맘이기도 한 그는 동물들 생각에 하루 두 번씩 동물원을 찾았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도록 사육사나 관리인을 만나긴 어려웠다. 그가 지난 10개월 동안 관리인을 마주친 건 단 두 차례뿐이었다.
“물도 안주는데 먹이라고 제대로 주겠어요.” 당근, 사과, 고구마 등을 박스째 가져가니 동물들이 허겁지겁 받아 먹었다. 당시 그가 봉사하는 야외 사육장에는 말 3마리, 양 5~6마리, 염소 10마리, 낙타 등이 있었다.
유리 전시실에도 여전히 거위, 산양, 원숭이, 라쿤 등 여러 동물이 갇혀 있었다. 분변이 가득 쌓인 전시실 안 밥그릇이나 물그릇도 늘상 비어있었다. “이곳은 문이 잠겨 있잖아요. 먹이체험 하는 그 좁은 구멍으로 물을 흘려주니 동물들이 바닥에 물을 핥아 먹더라구요.”
고드름 위 원숭이, 목 매달린 염소
지난해 8~9월 테마파크 안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기며 상황은 더 악화됐다. 김씨는 자가용에 물을 싣고 하루 3차례 산에 올라야 했다. 이때 간혹 들르던 동물원 직원에게 사정해 사육장과 전시실의 출입 허락을 받아냈다.
“20대 직원이 혼자 버스 타고 동물들 살피러 와요. 단수돼 물도 안나오는데 어떻게 물을 갖다 주겠어요.” 동물들의 물과 먹이를 챙기고, 주변 청소를 하는데 꼬박 하루 8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주변 지인과 가족들에게 부탁해 물통을 나르고, 먹이를 옮겼지만 매일 산 속 동물원을 오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예 하루 일꾼을 사서 일도 해봤는데, 워낙 힘드니까 며칠 하다 그만두더라구요.” 그가 오면 울타리로 모여드는 양과 말들, 청소 때도 품에 안기려 파고 드는 원숭이가 없었다면 못할 일이었다.
보다 못한 김씨의 딸이 동물원 업체의 관계자를 수소문해 통화를 시도한 것이 지난해 11월. 당시 ㄱ동물원 관계자는 “적어도 이틀에 한번씩 직원이 가서 동물들을 보살피고 있다. 굶긴다는 건 말이 안된다. 먹이주는 걸 못봤을 뿐”이라고 답했지만 이후 동물 관리가 더 나아진 점은 없었다. 이때부터 김씨의 딸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본격적으로 동물원의 현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동물들은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고 학대 당했다. 제보자 김씨가 지난 9월 초 찍은 사진을 보면, 염소 한 마리가 밧줄에 묶여 있다. “어느 날 가 보니 염소 두 마리가 묶여 있었어요. 그 중 한 마리는 벌써 목숨을 잃었고, 한 마리만 살아있었는데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도 수습을 안해서 제가 테마파크에 직접 전화를 했어요.” 10마리가 넘던 염소는 그 뒤 어딘가로 사라졌다.
원숭이는 지난 1월 영하 17도가 넘는 혹한에 얼음이 가득한 전시실에 방치됐다. 고드름이 잔뜩 열린 전시실에 쪼그리고 앉은 일본원숭이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이하 멸종위기협약)에 포함되는 멸종위기동물이다.
일본원숭이 4마리가 살고 있는 전시실은 탈출 방지를 위한 철망만 있을 뿐 따로 지붕이 없이 하늘에 노출되어 있었다. 2일 현장 점검 당시에도 전시실의 지붕은 뚫려있었다. “지난해 태풍 때 천막이 날아갔다”는 게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모든 게 코로나 탓일까
방치된 동물들의 구조가 계획된 것은 지난달부터다. 동물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는 김씨의 제보를 받고 지난 3주간 ㄱ동물원에 먹이와 사료, 활동가를 배치해 관리 상태를 모니터링 해왔다. 유영재 비구협 대표는 “제대로 관리를 하고 있다는 업체쪽 주장을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그동안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동물원에 상주해야 할 최소 1인의 사육사나 관리 인원은 전혀 만나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2일 현장 구조에 나선 비구협은 대구시청과 대구지방환경청에 학대 동물에 대한 격리조치와 멸종위기종 몰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이날 현장에 동석한 대구시청 담당 공무원은 ‘코로나 경영위기’가 빚은 사태라는 설명을 반복했다. 대구지방환경청 담당자는 멸종위기협약종 보호가 부적절하다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는 답변만 남기고 돌아갔다.
대구시청 환경정책과 담당자는 “ㄱ동물원은 원청에 하청, 재하청을 받고 있는 업체다. 테마파크가 휴장하면서 단전, 단수 등 경영상 위기를 겪고 있어서 최근 동물들을 다른 동물원으로 인계했는데 일부 동물이 남아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물원 점검은 지난해에도 9차례 진행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 감염증 등으로 관리는 더 철저하게 한 편”이라며 지난해 7월 진행된 환경부의 현장조사 참관 보고서를 애피에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날 현장조사는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것으로 조사결과에 ‘일부 전시장의 방수 등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개선 사항은 있었으나 특별히 문제될 건 없었다는 해명이었다.
ㄱ동물원 관계자는 동물을 굶기거나 방치한 것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동물 하루 급여량이 얼마나 되는지 아냐”면서 “주민분께서 동물에게 해준 봉사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주신 양만으로는 동물들이 못 살아남는다. 솔직히 동물도 저희에겐 재산인데, 죽이고 방치할 것 같으면 (다른 업체에) 위탁하거나 팔지 않겠냐”고 항변했다. 그는 “현재 남은 동물들은 위탁처나 보호시설이 마땅치 않아 그곳에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체험동물원은 사라져야 한다
지난 10개월 간 동물들을 살뜰히 보살핀 제보자 김씨는 동물체험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시장에 가면 동물들이 작은 당근 하나, 고구마 하나 받아 먹기 위해 몰려든다. 얼마나 배고프고 심심하면 저럴까. 우리가 재미로 생명을 가두고, 구걸하게 하는 것 아닌가. 동물체험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영재 대표는 “내년부터는 동물원이 허가제로 변경되고, 멸종위기종 몰수시설 마련되는 등 관련 제도가 강화되기는 한다. 그러나 언제나 경영상의 이유, 관리기준 미비 등으로 이같은 체험동물원의 동물들은 고통받을 수 있다. 동물원도 허가 때 이행보증금 제도 등을 마련해 동물의 보호와 안전을 견고히 해야한다”고 전했다.
대구/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사진 제보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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