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격차' 심해진 가요계..홍대 음악인·밴드들은 지금..
오프라인 공연 대신 온라인 공연
활동 못 하니 실물 앨범도 안내
코로나19로 드러난 대중음악계 격차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에반스 라운지는 데뷔 때 클럽 공연을 가졌던 곳이었어요. 사장님과도 잘 아는 사이였는데, 그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에이퍼즈)
2015년 데뷔한 퓨전 재즈 밴드 에이퍼즈(A-FUZZ)에게 에반스 라운지는 ‘마음의 고향’이었다. 2011년부터 9년간 홍대를 지키며 수많은 밴드의 시작과 성장을 지켜봤던 곳. 에이퍼즈 김진이(기타)는 “코로나19로 공연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월세와 유지비를 감당하기 얼마나 힘드셨을까, 지키고 싶어 끝까지 버티셨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팬데믹이 당도한 지난 1년, 홍대엔 ‘음악’이 사라졌다. 이제 막 첫발을 딛는 음악인도, 홍대를 기반으로 활동해 성장한 음악인도, 이미 한 장르의 대표주자가 된 음악인도 잠시 가던 길을 멈췄다. 인디음악의 터전이었던 홍대 공연장이 문을 닫자, 뮤지션들도 ‘설 자리’와 ‘활동 기반’을 잃었다.
2021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노래 부문 후보에도 오른 매스록 밴드 코토바의 멤버 다프네(기타)도 “홍대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 음악가로서 공연장이 사라지다 보니 어떤 방식으로 지표를 넓혀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인디 음악인들에게 홍대는 음악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홍대의 소규모 공연장들은 갓 내놓은 신보를 소개하는 쇼케이스 현장이자 음반을 발매하는 레코드 가게였고, 새로운 관객을 만나 팬층을 넓히는 오작교였으며, 이들이 입소문을 내는 SNS였다.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을 하기 어려워지자 음악인들도 자구책을 세우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홍대 음악인들이 코로나19 시대를 보내며 맞은 큰 변화는 오프라인 공연 대신 온라인 공연을 진행하고, 실물 앨범 발매 대신 음원 형태로 선보이게 된 점이었다.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헤비메탈 밴드인 디아블로는 올해로 데뷔 19년차에 접어들었다. 홍대의 전성기를 함께 보낸 이들은 이례적으로 싱글 형태로 음원을 발매하고,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디아블로 추명교(드럼)는 “지난 한 해 꾸준히 음악을 작업 중이었지만, 코로나19로 앨범을 발표하지 못했다”라며 “밴드는 앨범 발표 이후 공연 쪽 비중이 월등한데 지금은 공연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정규 앨범 발매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신 한두 달에 한 번씩 싱글을 선보이고 있다.
음원은 냈지만, 새 음악을 알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홍대 음악신의 뮤지션들은 대부분 현장 중심으로, 방송 등 다른 매체로의 활동이 드물기 때문이다. 디아블로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새롭게 떠오른 공연 방식이지만, 관객과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밴드에겐 낯선 일이었다. 추명교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럽고, 현장의 호흡을 담을 수는 없었다”며 “온라인 공연은 여지없이 음악방송 같은 느낌이었다. 밴드는 사운드를 중요시하는데 온라인 송출 사운드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어 원하는 대로 나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코토바 역시 지난 한 해 실물 앨범 제작 대신 다른 방식의 작업을 택했다. 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인기를 모은 만큼 온라인 공연이나 콘텐츠 제작을 시도했다.
다프네는 “연주 연상을 올리거나 멤버들이 각자 좋아하는 음악가들의 음악을 커버해 콘텐츠로 활용한 것은 좋은 기회였으나 온라인 공연에선 대면 공연만큼의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실물 앨범을 선보이는 것에도 고민이 컸다. 다프네는 “코로나 시기에도 작업량이 줄지는 않았다”라며 “하지만 대형 기획사들의 음악들처럼 판매 루트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인디 밴드들의 음반을 취급하는 곳도 정해져 있어 앨범을 발매해도 실제로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에이퍼즈는 지난 한 해 국내 공연 4~5건, 해외 페스티벌 1건 등이 취소됐다. 김진이는 “온라인 공연을 통해 해외팬을 만나는 것은 이점이었지만, 대면 공연은 많이 줄었고 공연을 한다 해도 관객이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연장 내 거리두기 좌석제까지 적용되다 보니 10여명의 관객밖에 수용하지 못한 날도 있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음악인들이 절감하는 것은 가요계의 ‘빈부격차’다. 위기와 고난은 생태계의 가장 밑바닥부터 찾아왔다. 추명교는 “국내 음악계에서 밴드신은 이미 마이너였고, 전성기를 누린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힘든 시기였는데, 코로나19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밴드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하려는 음악인들은 설 자리가 없고, 침체된 분위기가 바닥까지 갔다”고 현상황을 설명했다.
많은 밴드와 인디 음악가는 자신들의 음악 활동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에이퍼즈 김진이는 “세션 활동과 레슨을 병행하고 있지만, 세션은 일용직이다 보니 기존 수입과 큰 차이는 없다”라며 “지난해와 비교하면 코로나 이후 수입이 50%는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변엔 배달을 하거나, 다른 일로 투잡을 뛰는 뮤지션들이 많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오랜 시간 활동한 밴드이지만 디아블로 역시 밴드 활동에만 의존할 수 없다고 한다. 추명교는 “레슨을 하기도 하고, 멤버 중 한 명은 미술 전공이라 디자인 쪽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디신의 음악인들은 “홍대 음악신은 코로나 이전에도 쉽지 않았지만, 코로나를 맞으며 가요계의 고질병이 드러났다”고 봤다. 추명교는 “국내 음악신은 K팝 등 메이저와 언더의 격차가 크다. 음악적 편협성으로 특정 장르에 쏠리다 보니 언더, 인디신의 음악인들은 설 수 있는 자리가 없다. 홍대 음악신이 생명력을 가지고 지속하기 위해 다양한 음악이 노출될 창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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