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이통사 갑질 '애플' 자진시정안, '의견수렴' 반쪽..광고비 협의도 미봉책
R&D 센터 등 1000억원대 상생안 시행
방통위 등 의견 상당수 미적용
3년간 이행시 이행감시인 점검
공정거래위원회가 최종 확정한 애플코리아 자진시정안을 보완했지만 관계부처 등이 제시한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반쪽짜리 상생안' 비판에 직면했다.
시정안 쟁점인 광고비용의 경우 이통사가 거래상 우월적 지위인 애플과 협상전을 펼쳐야하는 미봉책이 됐고 향후 설립할 R&D센터, 디벨로퍼 아카데미도 과학기술통신부 의견을 반영하는 등 여지를 남겼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일 애플코리아 동의의결을 최종 확정했다. 동의의결은 기업의 자진시정·피해구제를 전제로 법 위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애플은 지난 2009년 아이폰3GS를 한국에 출시한 뒤 이통사에 TV와 옥외광고비 및 매장 내 전시·진열비 등을 떠넘긴 혐의를 받았다.
당국은 2016년 6월 애플에 대한 첫 현장조사에 들어가 2018년 4월 법 위반 혐의를 담은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에 해당)를 애플에 보냈다.
공정위는 2018년 12월과 지난해 1, 3월 등 세 차례 전원회의를 열어 사건을 심의한 후 동의의결 방식으로 사건을 전환했다.
확정된 자진시정안을 보면 애플은 750억원을 들여 중소기업 연구개발(R&D) 400억원과 정보기술(IT) 교육 350억원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250억원을 들여 아이폰 사용자 수리 비용을 10% 깎아주고 애플의 유상 보증 서비스인 애플케어 가격은 10% 할인하기로 했다.
애플의 광고비·수리비 떠넘기기 등 문제가 된 불공정 조항도 개선하기로 했다.
애플은 거래상대방인 이통사 계약에서 광고 기금의 적용 대상 중 일부를 제외하고, 광고 기금 협의와 집행단계에서 객관적 기준과 협의절차를 마련키로 했다.
공정위는 애플의 불공정거래행위로 피해를 입은 이통사가 시정안에 동의했다고 강조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이통사들은 동의의결안에 찬성하며 차후 애플과 협의를 통해 계약조건을 구체적으로 정하겠다는 입장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통사는 여전히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킨 핵심 쟁점인 광고비와 관련해 구체적 방안 대신 협의체라는 미봉책으로 남겨뒀다는 지적이다.
아이폰 물량 배정을 바탕으로 여전히 우월적 지위가 보장되는 만큼 협의체 구성에 대한 주도권 역시 애플이 쥐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통사 관계자는 “자진시정안에 구체적인 부분이 담기지 않다 보니 앞으로 시행되는 것을 좀더 지켜봐야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며 “계약 관계에서 관행적으로 적용된 일부 독소조항은 분명 개선됐지만 광고비 문제는 미봉책에 가까워 보인다”고 말했다.
◇방통위 의견 등 사실상 묵인
이 같은 자진시정안은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확정됐다. 공정위는 애플과 협의를 거쳐 잠정동의의결안을 마련한 후, 60일간 검찰 및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5개 관계부처,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러나 애플코리아에 대한 동의의결 절차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의견서로 제기한 '개선 방안'은 상당수 반영되지 않았다.
의견서 핵심은 △제조사·이통사간 (판매)장려금에 대한 합리적인 분담 △애플 단말기에 대한 AS 개선 등이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도 당초 애플코리아가 2009년부터 이통사에 전가한 광고비가 1800~2700억원 수준이라며 상생안 규모를 늘려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애플은 기존에 합의된 잠정동의의결안 상생방안에서 더 이상 조정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표하면서 전원회의서 시정안이 적극적으로 조정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해외 경쟁당국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상생안 계획을 이끌어냈다는 입장이다.
송상민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은 대부분 무혐의로 처리했다”며 “프랑스가 소송을 경쟁당국이 진행 중인데 금액은 650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조정된 사안에서는 향후 사업계획 시 관계부처 의견을 취합하겠다는 대목도 있었다. 이 밖에 제조업 R&D 지원센터 및 디벨로퍼 아카데미 관련 사업의 경우, 필요시 계획수립단계에서 공정위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하기로 한 부분이다.
또 아이폰을 수리할 경우 애플의 공인서비스센터뿐만 아니라 이통사가 운영하는 AS센터에서도 동일하게 1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디지털교육 지원사업에서 제공된 기기가 파손될 경우에도 2년 동안 무상 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애플은 “그간 한국에 32만5000개 이상 일자리를 지원하는 등 경제 성장에 공헌해 자부심을 느낀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투자를 통해 국내 공급 및 제조업체, 중소기업과 창업자 및 교육 부문에 더 크게 기여 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애플은 이 같은 상생안을 3년간 이행하게 되며 공정위는 회계법인 등 이행감시인을 선정, 반기별로 이행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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