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유로존 구한 '슈퍼 마리오' 이탈리아도 구할까

이슬기 기자 2021. 2. 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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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렐라 대통령, 드라기에 직접 면담 요청
사실상 총리 지명 확정...내각 구성권 부여
8년간 ECB 총재로 유로존 위기에 구원투수
경제위기·EU 코로나 기금 사용문제 해결해야

이탈리아 신임 총리로 거론되는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AP 연합뉴스

연립정부 붕괴로 정국 혼란이 극심해진 이탈리아에서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구원투수'로 부상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보건·사회·경제 위기와 정치적 혼란까지 더해진 난국 속에 글로벌 금융경제통으로 꼽히는 드라기를 신임 총리로 지명해 새 내각을 꾸린다는 구상이다.

3일(현지시각) 이탈리아 국무부는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이날 드라기 전 총재에 직접 면담을 요청하고 새로운 국민통합정부 구성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간 라 레푸블리카 등 현지 언론은 마타렐라 대통령이 이날 정오 로마 퀴리날레궁 집무실에서 드라기 전 총재를 차기 총리로 지명하고 내각 구성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결정은 기존 연정을 구성했던 반체제정당 오성운동(M5S)과 중도좌파인 민주당(PD), 중도성향의 생동하는 이탈리아(IV)가 재결합 협상 시한인 2일 저녁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앞서 마타렐라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정상 기능하는 정부가 필요하다"며 명망 높은 인사를 새 총리로 지명하겠다고 했었다.

◇금융권·정계·학계 섭렵한 '유로존의 슈퍼 마리오'

드라기 전 총재가 주목받는 것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화려한 경력때문이다. 그는 2011년 1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8년 간 유럽 통화 정책을 총괄하는 ECB 총재로 일하며 유럽 경제의 격동기를 관리해왔다. 특히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 등 남유럽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따른 유로존 붕괴 우려로 유럽 채권 매입이 외면받던 2012년 직접 투자자들을 설득해 신뢰를 회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개국)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드라기의 연설은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에 투자자들이 다시 유럽 채권을 매입했고, 유로화는 달러 대비 강세로 돌아섰다. 2019년 임기를 마치자 유로존은 드라기를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에서 유로존을 구한 슈퍼 마리오'라고 평가했다. 현재 ECB가 회원국 국채 매입을 통해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는 것도 드라기가 재직 당시 시행한 방식이다.

학계와 정치권 경력도 갖췄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수료한 그는 2002년 글로벌 투자회사 골드만삭스에 합류하기 전까지 10여년간 이탈리아 재무부 국장으로 일했다. 당시 국영기업의 대규모 지분 매각 등을 주도하고 '드라기법'으로 불리는 금융시장 지배관련 법규를 만들어 이탈리아 은행의 신뢰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5년에는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를 지냈다.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지난 2019년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임기 만료를 앞둔 마리오 드라기 당시 ECB 총재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AP연합뉴스

◇최대 과제는 위기관리...EU 코로나19 기금도 난제

신임 총리는 지명과 동시에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과 △유럽연합(EU)의 코로나19 지원 기금 사용방안이라는 양대 과제를 맡게 된다. 특히 코로나발(發) 경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EU가 이탈리아에 할당한 2090억유로(약 280조2000억원)가 연정 붕괴의 시발점이 된 만큼, 경제적·정치적 사안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경제 회복 계획안은 이탈리아 연정의 내분을 부추긴 최대 쟁점이었다. 당초 IV는 코로나19 사태로 부실이 드러난 공공 보건과 의료 분야에 기금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과 오성운동은 IV가 주먹구구식으로 계획안을 만들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IV를 이끄는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연정을 떠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은 극심해졌다. IV의 이탈로 연정은 상원에서 과반의석 지위를 잃게 됐다.

정계에서는 드라기 전 총재가 등판할 경우 위기관리에 초점을 맞춘 실무형 내각을 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라 레푸블리카는 드라기가 이념 문제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정치인을 최대한 배제하고 금융·경제에 능통한 현장형 인재를 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마타렐라 대통령도 중립적인 거국 내각 구성 시나리오를 전제로 총리 후보를 물색해왔다고 한다.

다만 야당은 대통령의 결정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연정 붕괴를 계기로 새로운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익 정당 '이탈리아의 형제' 대표인 조르지아 멜로니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실험실에서 태어난 가짜 민주주의 정부는 국가의 경제와 건강, 사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국민이 투표를 통해 운명의 주인을 선택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사임한 주세페 콘테 전 총리는 지난 2018년 총선 결과에 따라 포퓰리즘 연립정권을 구성키로 한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에 의해 지명됐다. 당시 두 정당은 정치경험이 전무한 법학자 겸 변호사 콘테를 총리 후보자로 선정하고 대통령에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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