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당했으니 카드 할부 취소해달라".. 5060 주부 울린 신종 다단계

박소정 기자 2021. 2. 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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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분기 카드사 민원 건수가 전 분기보다 늘어난 가운데, 그 배경에는 유사수신업체인 ‘브이엠피(VMP)’ 사기 피해가 원인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을 표방한 이 업체는 수백만원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매일 일정 금액을 평생 연금처럼 지급받을 수 있다고 광고해 전국 회원 26만명으로부터 860억원을 끌어모았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에 VMP의 사기 행각이 적발되면서 카드사와 금융감독원에는 할부 결제 중지나 환불 민원이 빗발쳤다. 금감원은 해당 건의 경우 "계약 취소 사유가 될 수 없다"는 해석을 내놨고, 카드사들도 결제 취소를 거부했다.

유사수신업체인 VMP의 양모 대표가 지난해 초 신규 사업자 교육을 하는 모습. 참가자 대부분이 50~60대 주부들로 보인다. 양씨를 비롯한 이 업체 대표 2명은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지난해 말 구속기소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유튜브 캡처

◇ "208만원짜리 회원권 사면 평생 연금 보장"

3일 금융당국과 피해자에 따르면, VMP라는 이름의 유사수신업체는 "1회 208만원짜리 ‘회원권’ 혹은 ‘분양권’을 사면 매일 1만5000원이 평생 연금처럼 입금된다"며 "일정 금액이 확정 지급되므로 수개월 내 투자원금이 회수될 뿐 아니라 평생 확정 고수익을 누릴 수 있다"고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투자자들은 매일 지급받는 액수를 늘리기 위해 회원권 여러 장을 구입하기도 했다. 거액을 다달이 나눠 낼 수 있는 신용카드가 주요 결제수단이었다.

업체는 투자자에게 신규 투자자 소개 수당도 지급했는데, 투자자 대부분은 빠른 투자금 회수를 위해 지인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거느리는 팀원 수에 따라 부여되는 직급도 10여개로 다양하고 복잡했다.

피해자 A(55)씨는 "사업 설명회를 가보면 거의 50~60대 주부들이 주를 이뤘고, ‘리더’라는 사람들의 종용으로 한 사람당 수백~수천만원을 이곳에 쏟아붓기도 했다"며 "윗사람에게 주는 돈은 아래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돈들로 수당이 지급됐기 때문에 사실상 회사는 어떠한 부가가치도 창출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사수신업체인 VMP의 사업 설명회 자료. 업체 관계자는 ‘회원이 되면 누릴 수 있는 서비스들’이라고 소개했다. /독자 제공

VMP는 2018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전국에 100여개 지점을 두고 26만명으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86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업체 대표 김모(50)씨와 양모(60)씨 등 2명은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주요 모집책(리더) 17명을 포함한 관계자 110명은 불구속기소됐다. 경찰은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을 통해 범죄수익금 19억1000여만원을 환수했다.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 지난해 4분기 카드사·금감원 민원 급증

이들의 사기 행각이 알려지자, 카드사에는 할부 결제 취소를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쳤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업카드사 7곳에 접수된 민원 건수는 1347건으로, 3분기보다 6.6% 늘어났다. 신한카드가 296건으로 가장 많았고, ▲KB국민카드 263건 ▲삼성카드 208건 ▲현대카드 184건 ▲롯데카드 183건 ▲하나카드 127건 ▲우리카드 86건이 그 뒤를 이었다.

카드사들은 지난해 2분기 긴급재난지원금 사태 이후 지속적인 민원 감소 노력으로 전체 민원 건수가 하반기로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였지만, 4분기의 경우 유사수신 행위 관련 일회성 민원 비중이 컸다고 입을 모았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전체 민원의 40~50%가 VMP 관련 민원이었다"고 말했다.

금감원에도 민원이 무더기로 접수됐다. 지난해 11월 30일 기준 이 업체와 관련한 금감원 민원 건수는 95건(민원인 115명)이었다. 민원인들은 "사기로 부당하게 피해를 당했으니 카드사가 결제 분을 취소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금감원은 VMP의 경우 계약 취소 사유로 볼 수 없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다. 통상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해 소비자는 할부로 물품을 구입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철회를 요청할 수 있는 ‘철회권’과 할부계약 기간 내에 잔여 할부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인 ‘항변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다만, 소비자의 계약이 영리를 위한 상행위(商行爲) 목적일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금감원 관계자는 "VMP는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할 수 있는 ‘분양비’ 명목으로 회원권을 팔았다"며 "이는 법이 소비자 권익 보호 대상으로 삼는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한 개념이 아니라, 영리를 목적에 두고 비즈니스 거래를 한 것이므로 철회·항변권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민원 대상이 된 카드사들도 모두 결제 취소를 거부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금감원은 지난해 말 VMP 피해 사례를 계기로 "원금과 고수익을 동시에 보장한다고 유혹하는 유사수신 업체 투자 권유를 조심하라"며 ‘주의’ 등급의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카드사나 금감원으로부터 마땅한 구제를 받지 못한 일부 투자자들은 현재 VMP와 카드사의 결제구조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했던 PG(결제대행업체)사에 지속해서 민원을 넣고 있다. PG사는 전자상거래 시 판매업체가 카드사와 직접 가맹 계약을 맺지 않고도 인터넷 전자결제를 할 수 있도록 지불 대행하는 업체들을 말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 PG사 중에는 업무방해죄로 민원인 상대 형사고소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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