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합창, 詩와 만나 미디어콘텐츠로 '부활합창'
김소월·김영랑 등의 詩 선율과 만남
온라인 넘어 '융복합 콘텐츠'로 재탄생
"현장 온 듯한 입체적 느낌 받았으면"
‘가장 아름다운 악기’로 칭송받던 ‘인간의 목소리’는 코로나19 시대를 맞으며 위상을 잃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당도한 이후 사람의 소리가 내는 ‘조화의 아름다움’은 ‘비말의 위협’ 아래 사라졌다. 모든 공연 장르가 ‘위드 코로나’ 시대에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합창은 특히나 취약한 장르로 꼽혔다.
국립합창단은 2020년 한 해 정기공연, 기획공연 등 예정된 많은 공연을 취소했다. 그러던 중 지난 여름 ‘새로운 시대’의 합창을 기획하게 됐다. ‘공연 영상’이 ‘뉴노멀’로 떠오르던 시기의 고민이었다. 국립합창단은 안지선 연출가에게 합창 영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단, ‘전제 조건’이 붙었다. “공연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 외에도 영상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을 만한 콘텐츠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현장 공연’의 장점을 담으면서도 하나의 영상으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거기에 “전 세계에 우리의 시와 합창음악을 알리자”는 바람과 포부도 담았다. 김영랑, 김소월의 시가 국립합창단의 목소리와 만난 계기다.
국립합창단의 ‘포에틱 컬러스’(2월 10일·국립합창단 네이버TV 채널 유료 상영)를 연출한 안지선은 “합창음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시도의 미디어콘텐츠를 만들고자 했다”고 본지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포에틱 컬러스(Poetic Colors)’는 김영랑, 김소월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로 작곡한 합창음악을 미디어 아트·조명예술과 결합한 영상 콘텐츠다. 단순히 온라인 공연이 아닌 융복합 콘텐츠를 지향한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걸린 기간이 무려 6개월. 안지선 연출가는 “‘기술이 예술을 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기술의 화려함이나 새로움이 예술의 본질적인 것을 감상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경우들이 있었기 때문에 먼저 음악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영상화 기획 단계에서 국립합창단의 가장 큰 고민은 ‘레퍼토리’였다. 이미 수많은 창작곡을 선보였고, 다양한 세계 명곡을 연주해왔지만, 비대면으로 선보일 합창곡 선정에는 특히나 심혈을 기울였다. “화려한 음악이 아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로 만들어진 합창음악”을 선택한 것은 “시가 가진 의미의 다양함이 영상 프로젝트에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포에틱 컬러스’에선 김영랑, 김소월, 박재삼 등 현대 시인들의 시에 우효원 ·오병희·조혜영·스티븐 파울루스(Stephen Paulus)의 선율이 만났다. 안 연출가는 “하나의 시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선율 같았다”고 말했다.
한국적 정서를 오롯이 담아낸 이 시들은 사람의 목소리를 만나 또 하나의 예술이 됐다. ‘포에틱 컬러스’에선 색채를 통해 음악과 시를 표현했다. “음악을 영상으로 담아낸다는 것은 소리를 빛으로 변환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소리가 느끼게 하는 빛깔을 찾으려 노력했어요. 각각의 합창곡은 한 컬러로 구현되는 경우도 있지만 노래 안에서 변하기도 합니다. 어떤 곡은 핑크빛으로, 어떤 곡은 어둠에서 빛으로, 어떤 곡은 바다와 하늘로, 어떤 곡은 다채로운 봄빛으로 곡이 가지고 있는 빛깔을 찾아봤어요.”
이번 ‘포에틱 컬러스’에선 “합창단 사이를 걸어가는 듯한 촬영으로, 관객 역시 무대 위를 걷고 있는 듯한” 가상 체험을 공유한다.
합창의 장점을 영상으로 담기 위한 장치도 있다. 합창단 전체를 한 화면에 담기 위해 비율을 와이드(2.35:1)하게 선택한 것도 영상화 과정에서 고심한 부분이다. “여러 명의 단원들이 하나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소리를 합하고, 지휘자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을 조각내지 않고 최대한 잘 담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코로나19 시대를 맞으며 현장을 잃어버린 합창의 미학은 새로운 콘텐츠로 태어났다. 안 연출가는 “평면적인 공연 영상이 아닌 입체적인 느낌을 받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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