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집값 하락 아닌 상승 요인"..한은 박사들 상식 뒤집어

조은임 기자 2021. 2. 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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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늘어 자산처분 늦어진 고령층, 저금리에 공격적 투자도 감행
1인가구 증가, 집값하락 요인이지만… 서울 소형·저가·신축선 예외

한국은행 소속 이코노미스트들이 고령화가 집값 하락효과를 유발한다는 '생애주기가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보고서를 국제결제은행(BIS)에서 발표했다. 1인가구의 증가는 전반적으로 집값 하락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서울내 저가, 소형, 신축주택에서는 예외가 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인구구조와 주택가격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로, 저금리, 정책 부작용과 함께 인구구조도 장기적으로 집값을 밀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BIS보고서 ‘인구통계학적 변화, 거시적정책 그리고 주택가격’/BIS 제공

◇긴 수명, 자산처분 시기 늦추고… 1인가구, 저가·소형 선호

3일 BIS에 따르면, 최근 공개된 '인구통계학적 변화, 거시적정책 그리고 주택가격(Demographic shifts, macroprudential policies, and house prices)'보고서는 64세 이상의 고령층의 비율과 주택가격 사이에서는 양의 상관관계(positive)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는 기대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자산을 처분하는 시기가 늦춰진 데 따른 결과로 진단됐다.

정호성 한은 경제연구원 금융통화연구실 연구위원과 이지은 한은 통화정책국 정책제도연구팀 과장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2008년 1분기부터 2017년 4분기까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의 수도권 95개, 비수도권 5개 지역의 주거용 주택거래통계와 가계 대출규제, 인구통계학적 요인 등에 대한 분기별 통계치를 활용해 작성됐다.

보고서는 연구대상이 된 지역 중 근로연령 대비 고령자의 비율이 높은 곳에서 집값 상승률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이 결과는 통상 연령대가 높아지면 소비를 위해 저축을 줄이고 자산을 처분한다는 생애주기가설 이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이사할 유인이 적은 고령층이 늘어날 수록 주택이 매물로 나오는 시기가 이연되고, 이는 공급 감소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대로 15세 미만 연령대의 비율이 높은 지역은 집값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재산 수준이 낮고 육아·교육을 위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급격하게 증가한 1인 가구는 전반적으로는 주택가격을 낮추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됐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낮은 1인 가구의 소득수준이 혼인가구에 비해 소득이 낮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다.

다만 이같은 현상은 서울의 저가(3억원 미만)·소형(85m2 미만)·신규 주택(10년 미만)에서는 예외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규제정책이 고령층, 1인가구 등에는 크게 효과적이지 않다는 분석도 내놨다.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데다 거래요인이 많지 않은 이들 집단에게는 규제정책이 크게 유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러스트=정다운

◇"고령화, 집값 영향 점진적이나 저금리와 맞물려 상승요인"

국내에서는 고령화와 1인가구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주택가격을 움직이는 하나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은퇴세대의 증가는 집값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주로 언급됐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1990년대 초반 부동산 버블이 붕괴된 뒤 1947~1949년생인 단카이세대가 대거 은퇴했던 사례를 들기도 한다. 1992~2016년까지 일본의 주택가격 누적 하락률이 53%에 달하면서 생애주기가설이 입증된 사례였다.

하지만 베이비붐세대(1955~1963년생)를 포함한 BIS보고서에는 '수명증가'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베이비붐세대들은 수명연장을 대비해 공격적으로 자산투자에 나서면서 오히려 집값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소득 대비 부채 수준을 연령대 별로 살펴보면 60대 이상의 소득 대비 대출비율(LTI)이 250.6%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은퇴 시기로 진입한 60대 이상이 노후를 위해 투자에 나서면서 LTI가 높게 나타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2030세대를 중심으로 나타난 '패닉바잉' 행렬 또한 인구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보고 있다. 1인가구의 저가·소형·신축 선호가 서울 외곽지역의 소형 위주로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지난달 서울 중소형(전용면적 60㎡초과 85㎡ 이하)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은 9억729만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9억원을 넘어섰다. 1년 전에 비해서는 24% 넘게 오른 수준이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인구구조의 변화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점진적이나, 최근 저금리기조와 규제 중심의 정책적 요인까지 맞물리면서 수요가 탄탄해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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