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스마트 자판기, 열 아들 안 부럽다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2021. 2. 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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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영향으로 자판기 사업에 관심 높아져..AI와 클라우드 기술 도입으로 수익성 극대화

(시사저널=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실질소득 감소와 코로나19 영향으로 자동판매기 사업에 관심을 갖는 직장인이 부쩍 많아졌다. 검색엔진에 '자판기 사업'을 입력하면 '1000만원 투자로 50만원 수익' '직장인 부업으로 최고' 등의 글이 올라온다. 어느 유튜버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 부업'이라고 자판기 사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300만원짜리 자판기를 예약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유통업체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자판기를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용자에게는 개인화·자동화를 통해 쇼핑 편익을 제공하고, 운영자에게는 관리 용이성을 제안하며 프런트 엔드(Front end)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1월6일 한 소비자가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설치된 '파라바라'의 비대면·무인 중고거래 자판기를 이용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AI 기반 스마트 자판기 등장

일단 해외 사례를 보자. 미국의 레이즈 홀딩스(Reyes Holdings)는 최근 하이베리(HIVERY)와 제휴해 개발한 AI 기반 자판기를 론칭했다. 1976년 설립된 레이즈 홀딩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맥주 유통업체로 코카콜라와 맥도날드 등의 유통도 맡고 있다. 하이베리는 호주국립과학원(CSIRO) 출신 과학자들이 모여 2015년에 창업한 AI 전문기업으로 인공지능 자판기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서로 다른 두 회사가 힘을 합쳐 AI 자판기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러시아 유기농 식품 소매체인 부쿠스빌(Vkusvill)도 지난해 모스크바 아파트단지에 AI 기반 유기농 자판기를 설치했다. 70여 종의 자사 제품을 지역 소비자 특성에 맞춰 판매하는 게 이 회사의 전략이다. '그 지역 생산 식품을 그 지역에서 판매하는' 이른바 로컬푸드 전략이 높게 평가돼 암스테르담 등 유럽 여러 도시로부터 러브콜도 받고 있다. 러시아 식품 유통업체가 유럽에 진출한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오랫동안 유통업을 하고 있는 필자의 지인 드미트리 구보브스키는 부쿠스빌의 성공 요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에서는 슈퍼마켓이 유통기한을 속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매주 금요일 농장에 주문한 뒤 월요일에 납품받아 당일에 전량 판매하는 창업자 크리벤코의 전략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며 "이러한 진정성과 사회적 가치가 주택가 자판기 사업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인도 스타트업 브라흐마베다(Brah-maveda)는 2020년 7월 아유르베다(Ayurveda) 음료 자판기를 출시했다. 이 자판기는 아유르베다 원료를 칵테일, 달임 즙, 주스 등 원하는 형태로 내려받는 세계 최초의 즉석 맞춤음료 자판기다. 아유르베다는 '생활의 과학'이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인도에서 5000년 이상 의학체계로 활용돼 왔다. 이 자판기는 미리 내려받은 앱(App)에 의해 활성화되고, AI로 구동된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야쿠르트 혼샤(Yakult Honsha)는 최근 이용자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AI 기반 자판기를 선보였다. 고객이 일본어를 배우면 음료로 보상해 사용자 참여를 높이는 전략이다. 그 외에도 상하이의 딥블루 테크놀로지(DeepBlue Technology), 인도의 싱크팜 테크놀로지스(ThinkPalm Technologies), 호주의 레드 애널리틱스(Red Analytics) 등이 자판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얼굴 인식 기능을 탑재하거나 사용 시각과 날씨 정보 등을 바탕으로 이용자에게 최적의 상품을 추천하고 있다.

각기 다른 차별화 전략도 있다. 레이즈홀딩스는 코카콜라 상품에 고도화된 기술을 조합해 적용하고 있고, 부쿠스빌은 로컬푸드에 집중했으며, 브라흐마베다는 고대 치료법과 현대 기술의 조합으로 다른 회사와 차별화를 꾀했다. 이들 모두가 AI를 기반으로 한 자판기라는 점도 비슷하다.

이렇듯 자판기 시장은 현재 전통 자판기에 인공지능을 입힌 이른바 AI 기반 자판기가 주도하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공간 대비 판매 비율을 최적화함으로써 판매량을 늘리고 투자 수익도 극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판기 사업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편의점과의 경쟁이다. 자판기가 활성화된 배경은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이지만 편의점의 확산으로 그 효과가 반감됐다. 구색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도 그렇다. 실제로 자판기 강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2000년 560만 대였던 자판기가 2019년 450만 대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국내 자판기 시장에서는 여전히 커피나 음료 등 고전적인 자판기가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 샌드위치나 페이스트리 같은 스낵 자판기가 엘리베이터형으로 출시되기도 했고, 여행자를 위한 속옷 자판기, 중고 명품 자판기가 나왔지만 이벤트성에 그칠 가능성이 커 수익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설사 가능성이 있다 할지라도 입지(location), 즉 설치 장소 확보가 걸림돌이다. 자판기를 외부에 설치하면 도난이나 파손 등이 빈번해 내부에 두어야 한다. 이 경우 기본적으로 10층 이상, 200명 정도의 근로자가 상주하는 곳이어야 채산성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곳은 내부에서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입점하기가 어렵다. 외부인에게 오픈하기도 하지만 매출의 40~50%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자판기 사업의 맹점도 숙지해야 

또한 자판기는 최소한 5대 이상 운영해야 노력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 입지를 잘 잡은 음료 자판기라도 월 수익 20만~30만원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은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다. 국공립 공원이나 지자체 시설관리공단 등의 입찰공고를 참고하면 좋다. 낙찰되더라도 설치 수량에 따른 자판기 구입대금과 관리에 대한 부담은 각오해야 한다.

자판기를 직접 구입해 운영하는 것보다 임차해 운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장소는 점포, 쇼핑몰 등 민간 사업장이 되겠다. 임대료는 주로 매출의 30%를 요구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그래서 자판기 사업을 '땅 따먹기 전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접근법에도 자판기 사업은 그리 녹록지 않다. 위에서 사례로 든 해외 기업들은 대부분 직영이어서 개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일부 소규모 유통업체는 기기 판매가 목적이기 때문에 계약 이후 운영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도 참고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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