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못 살겠다" 국민투표 택한 스위스
스위스 취리히에서 한식당 ‘미소가’를 운영하는 김재심씨에게 요즘은 코로나19 발발 이후로 가장 힘든 시기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정부 명령으로 식당 문을 닫았는데, 1월18일 스위스가 2차 전국 록다운(봉쇄)에 들어가면서 영업금지 조치가 최소 2월 말까지 연장됐다. ‘미소가’의 2020년 매출은 2019년과 비교해 약 35% 줄었다. 풀타임 근무 직원 한 명과 하프타임 근무 직원 한 명을 두고 있었지만, 매출 감소 때문에 둘을 해고하고 40%만 일하는 직원 한 명을 새로 뽑았다. 포장과 배달 판매는 허용되지만 매출에 도움이 안 된다. 포장이나 배달은 음식 종류에 따라 한계가 크다. 식당 주변 회사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해서 수요도 거의 없다. 김씨는 “배달은 전문업체를 통해 할 수밖에 없는데 업체 수수료가 음식값의 30~40%다. 배달로 수익을 낼 수가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2020년 내내 스위스 정부의 코로나 대응 조치가 가장 까다롭게 적용된 업종 중 하나가 식당이다. 가장 먼저 문을 닫게 했고, 영업이 재개된 후에도 테이블당 인원수와 영업시간 등을 제한했다. 식당 영업이 금지된 지금도 학교와 스키장 문은 열려 있다. 김재심씨는 “식당을 닫아서 코로나19를 종식시킬 수 있다면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라면서도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1년이 지나도록 재정지원이 없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가 강제로 영업중단을 지시했으면 손실 대책도 마련해줘야 하지 않나. 지난해 봄 1차 록다운 때도 직원 월급 일부를 제외하곤 아무 도움을 받지 못했고, 이번에도 실질적 대책이 없어서 답답하다. 1년 가까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식당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위스 식당 대부분이 김씨와 비슷한 사정이다. 스위스 요식업협회인 ‘가스트로 스위스(Gastro Suisse)’는 1월10일 보도자료에서 “즉각적인 재정지원이 없으면 3월 말까지 스위스 식당 절반이 폐업한다. 이 산업이 소멸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절반 폐업이라는 내용은 ‘가스트로 스위스’가 회원 약 4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이미 2020년에 파산 신청을 했거나 식당을 폐업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13.4%였고, 이 상태로 가다간 3월 말에 파산할 것으로 예측한다는 사람이 46.6%였다. 회원 대부분(98%)이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연 매출 변화를 물었는데, 2020년 매출이 2019년에 비해 60% 이하로 줄었다는 응답자가 절반 가까이(46.5%) 됐다. 스위스에선 음식 포장이나 배달 서비스가 한국처럼 흔하지 않다. 영업을 중단한 뒤 포장이나 배달로 올린 매출이 방문 매출의 20% 이하라는 응답이 다수(72.7%)였다.
이런 상황이니, 식당 영업금지에 항의해 시위가 벌어진 것도 이해가 간다. 1월9일 토요일, 식당 업주와 스포츠문화 업종 종사자 등 약 600명이 스위스 서부 뇌샤텔에서 거리를 행진했다. 미리 허가를 받고 참가자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평화로운 시위였다. 시위를 주도한 식당 운영자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식당이 코로나19 감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건 불합리하다. 슈퍼마켓 같은 다른 장소에서 감염됐을 수도 있는데, 방문자 연락처를 남기도록 한 유일한 장소가 식당이라서 책임을 지게 됐다. 이건 차별이다”라고 말했다.
단축근무 보상으로 11조원 이상 지급
1차 록다운(2020년 3~5월) 때 스위스 정부는 자영업자들이 내는 임차료를 40%로 줄이고 나머지를 건물주가 부담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김재심씨는 건물주와 개인적으로 협상한 끝에 3~5월 임차료의 35%를 인하받았다. 최근 2차 록다운 때는 건물주가 먼저 연락해 1월 임차료를 절반으로 낮춰주겠다고 했다. 스위스 정부는 1월13일 재정지원책을 발표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대책인데도 엉성하고 실효가 없다는 비판이 크다. 매출, 업종, 피해액 등에 따른 지원 대상도 불명확하고, 언제 지원금이 지급되는지도 알 수 없다. ‘11월부터 40일 이상 영업을 정지한 업소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들어있긴 한데, 김재심씨는 이에 대해 “록다운 이전에 매출이 나빠도 힘들게 문을 열어둔 식당이 많다. 영업을 중단했다는 이유만으로 우선 보조를 한다는 건 공평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상황은 어떨까. 가스트로 스위스는 “코로나19 웨이브(유행)가 올 때마다 ‘해고 웨이브’도 함께 온다”라고 지적했다. 스위스 식당 운영자들 중 84%가 지난해 11월, 12월에 직원의 근무시간을 줄였다고 한다. 도미노 위기가 될 수도 있는데, 다행히 스위스에는 그 충격을 잠시 완화해주는 장치가 있다. ‘단축근무(Kurzarbeit)’ 제도다. 단축근무제란 회사 경영이 어려울 때 일시적으로 직원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제도로, 줄어든 직원 임금의 80%를 정부가 보전해준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한 달에 100만원을 받던 직원이 50% 단축근무를 한다고 하자. 사장이 지급하는 월급은 50만원으로 줄어들지만 나머지 50만원 중 80%인 40만원을 정부가 보전해주기 때문에 이 직원은 90만원을 받는다. 고용주는 숙련된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고 지출을 줄일 수 있으며, 노동자도 임금의 큰 변화 없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스위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이 제도를 좀더 유연하게 바꿨다. 원래 12개월이었던 수혜 기간을 18개월로 늘렸다.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던 임시직, 계약직, 인턴도 이 제도의 혜택을 보게 됐다. 단축근무제를 이용한 노동자는 지난해 2월에 5000명이었다. 그런데 2월 말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후 3월엔 100만명, 이어 4월에는 사상 최대 수치인 130만명이 단축근무를 신청했다. 팬데믹으로 급격히 변화한 고용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수치가 나오지 않은 11월과 12월을 빼고, 2020년 열 달 동안 단축근무 보상으로 정부가 지불한 금액은 92억 스위스프랑(약 11조4000억원)이었다. 앞서 김재심씨가 ‘직원 월급 일부를 지원받았다’는 것도 이 제도의 혜택이다. 스위스뿐 아니라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 유럽 대부분 국가가 팬데믹 중에 단축근무제를 느슨하게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단축근무제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코로나19 종식이 늦춰질수록, 쌓인 문제가 한번에 터져 나올 가능성은 더 커진다.
바이러스는 대상을 가리지 않지만, 팬데믹 아래서 모두가 같은 고통을 겪는 건 아니다. 대면 영업이 불가피한 자영업자들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이나 스위스나 마찬가지다. ‘코로나19에 걸려 죽기 전에 장사가 안 돼 굶어 죽게 생겼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바이러스 통제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정부의 대응책에 비판이 점점 커지는 이유다. 스위스 여론조사기관(sotomo)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스위스인의 55%가 팬데믹하에서 정부 조치 때문에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다고 걱정한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밤 11시에 식당 문을 닫게 한 것이 지나친 조치라고 했다. 불만은 정치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빠르면 오는 6월 스위스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2020 코로나19 법안(코로나법) 폐지’ 안건이 그러한 불만에서 나온 정치적 행동이다. 지난해 9월 통과된 ‘코로나법’은 스위스 정부가 영업금지나 통행제한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그런데 ‘헌법의 친구들’이라는 단체가 이 법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며 국민 8만6000여 명의 동의 서명을 모아 정부에 제출했다. 투표 요건(서명 5만 건)을 충족했기 때문에 코로나법 존속은 이제 국민투표에 달렸다. ‘헌법의 친구들’ 회원인 크리스토프 플루거는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팬데믹을 계기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스위스는 코로나19 제한 조치에 대해 국민이 직접 투표를 하는 최초의, 그리고 아마 단 하나의 국가가 될 것이다.”
코로나 음모론자들의 가짜 시위?
코로나법 폐지 국민투표는 그래도 합법적 절차를 따르는 정치 행동이다. 문제는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위기를 이용하는 불법 행동이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우리는 문을 연다(Wir machen auf)’라는 이름의 운동이 그것이다. 영업을 중단하라는 정부의 조치에 협조하지 말고 가게 문을 열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운동은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조직을 했는데 경찰에 따르면 회원 수가 9000명 넘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식당, 피트니스센터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며, 1월11일 월요일에 전국적으로 가게 문을 여는 시위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여러 언론이 그 예고문만 보고 ‘요식업 혁명(Gastro-Revolution)’이라는 제목으로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경찰도 온라인 정보를 바탕으로 순찰을 강화했다.
이상한 건 실제로 당일에 규정을 어기고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취리히에선 전혀 없었고, 바젤에서 한 곳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물론 적발 시 벌금(1만 스위스프랑·약 1240만원)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업계 관련자들은 이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이 실제 자영업자가 아니라 코로나 회의론자나 음모론자라고 의심하고 있다. 평범한 자영업자 시민들이 정부의 코로나 대응책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한다는 뉴스가 퍼지면 반(反)코로나 진영이 더 힘을 얻을 거라고 생각해 가짜 시위를 조직했다는 것이다. 취리히 요식업협회 우르스 패플리 회장은 일간지 〈NZZ〉 인터뷰에서 “우리 산업이 코로나 회의론자들에게 이용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요식업협회도 자신들은 이 캠페인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거리를 뒀다.
지난 1년 동안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저지하기 위해서 정치적 협상, 경제적 지원, 시민의식 등 모든 방면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식당 영업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그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인터넷 뉴스에 달린 한 식당 주인의 댓글이 계속 머리에 맴돈다. “좌파는 문 닫으면 보상한다면서 감감무소식이고, 우파는 보상 기대 말고 영업을 계속하라고 한다. 우리는 그 중간에 갇혀버렸다.”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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