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글로벌 열풍.. 이젠 한국계 크리에이터가 이끈다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
드라마 ‘파친코’이민진 작가 등
미국내 한인 2·3세 작품들 인기
한류로 한국에 관심 높아지며
새로운 이야기 터전으로 승화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배우 윤여정에게 해외 영화제 여우조연상 20관왕을 안긴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 속 대사다.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를 낯선 미국 땅에 둥지를 틀고 뿌리 내려가는 한국인 가족의 삶에 빗댄 말이다. 영화 ‘미나리’뿐 아니라 요즘 K-팝, K-웹툰, K-드라마 등 한국 이야기가 세계 각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한국적 내러티브를 펼쳐놓은 한국계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한국계 크리에이터들의 등장
오는 12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언제나 그리고 영원히’는 한국계 미국인인 제니 한 작가의 베스트셀러가 원작이다. 지난 2018년 처음 공개된 것으로 이번이 세 번째 시즌이다. 한국을 ‘돌아가신 엄마의 나라’로 설정한 이 영화의 앞선 시즌은 세트를 지어놓고 촬영했지만, 이번에는 직접 한국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새 시즌엔 N서울타워, 동대문 광장시장 등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원작자 제니 한은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을 찾았다. 그는 지난달 29일 국내 취재진과의 간담회에서 “한국이 가진 스토리텔링은 특별하다. 한국 드라마는 다른 콘텐츠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이 있다”며 “비주얼적 완성뿐 아니라 한국 드라마의 ‘무언가’ 때문에 함께 울고 웃고 사랑에 빠진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작가의 삶과 세계관이 반영된다. 제니 한 작가가 말한 ‘무언가’는 한국인 특유의 정(情)과 흥이다. 그는 “처음 한국에 간 12세 때 룰라, 김건모가 인기 있었는데, 지금은 방탄소년단(BTS)과 블랭핑크, K-뷰티와 음식이 사랑받고 있다”며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에게 한국을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 이민 온 한국인 가족이 주인공인 ‘미나리’ 역시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 그는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영화의 배경인 미국 남부 아칸소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정 감독은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며 “딸과 아들 세대가 행복하게 꿈을 심고 가꾸길 바라며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어느 한국 가족의 다정하고 유쾌한 서사시”라고 설명했다. 결국 한국과 한국인의 정서를 직접 경험했거나 이를 간접 경험한 이민 2·3세대들이 크리에이터로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적 이야기가 전 세계에 소개되고 있는 셈이다.
◇왜 이 시점에 한국인가?
한국과 한국인을 중심에 세운 콘텐츠는 앞다투어 제작되고 있다. 미국 애플TV플러스(+)는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파친코’(Pachinko)를 제작 중이다. 배우 이민호, 윤여정 등이 참여하는 이 드라마는 일제강점기 후 일본과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이민자의 고된 삶과 정체성을 다룬 작품이다.
한국에 대한 관심은 최근 3∼4년 사이 크게 높아졌다. BTS와 블랙핑크 등 K-팝 그룹의 역할이 컸고, 지난해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관심의 층이 두터워졌다. 유명 한류스타들을 통해 한국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상황 속에서 한국이라는 낯선 배경이 새로운 이야기의 터전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2월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현지 취재 당시 외신 기자들은 ‘기생충’에 등장하는 ‘반지하’(semi-basement) 개념에 대한 질문을 여러 번 던졌다. 그들에게는 생소하고 신기한 배경이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 텐센트 기자만이 “중국에도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기생충’이 이를 계급의 문제로 다루는 솜씨가 놀라웠다”고 말했다.
캐나다 국영방송 CBC에 편성됐던 ‘김씨네 편의점’은 한국 이민자 가족의 편의점 운영기를 그려 시즌4까지 제작된 바 있다. 총괄제작자인 이반 패샌은 내한 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인종과 국적을 넘어 이야기의 보편성에 주목한 것”이라며 “한국인의 등장은 새롭지만, 가족 간 사랑 이야기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고 말했다. 결국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와 한국이라는 공간이 시너지를 일으킨 셈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항상 새로움을 좇는 크리에이터와 시청자들에게 아직 콘텐츠 속 노출이 적은 한국은 미지의 공간과 같다”며 “게다가 유명 한류스타들을 동경하는 해외 팬들까지 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한국인들이 글로벌 콘텐츠의 중심이 됐다”고 분석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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