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의 지식카페>수집, 잊힌 과거를 의미있는 보석으로 만들어 새 역사 써내는 작업
■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16) 레트로마니아 또는 수집가
박물관이 역사교과서라면 수집은 재야의 秘史…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흔적도 소중히 간직
술이 익듯 시간이 지날수록 빛 발해… 레트로마니아는 진귀한 가치를 발굴하는 사람들
그는 외모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회색 점퍼, 흰 운동화 차림에 뭔가 가득 찬 백팩 하나만을 메고서 중고 완구점의 구석을 기웃거린다. 흔히 ‘오타쿠’라 불리는 자, 그는 레어 아이템을 쫓고 있는 수집가다.
오타쿠의 역사는 깊다. 수집광이기도 했던 오노레 드 발자크는 말년의 걸작 ‘사촌 퐁스’에서 수집가 또는 당대의 오타쿠를 이렇게 묘사한다. “초라한 작은 외투, 몇십 년이 된 비단 조끼… 이곳에서는 허름한 차림을 하고… 넋이 빠진 채, 아무 관심도, 느낌도, 뇌조차 없어 보이며 여자들, 가게들에 눈길 하나 주지 않으면서 주머니는 빈 상태로 목적 없이 걷는 퐁스, 엘리 마귀스 같은 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정예영 역) 그들은 수집이라는 꿈속의 길만을 걸어간다. 그들은 세상의 어떤 사물에 몰두하지만, 동시에 마치 세상 바깥에서 기존의 세상이 바라보는 방향과는 정반대 편에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사람들 같다.
나는 수집을 싫어한다. 책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책을 가지고 대부분의 작업을 하지만, 책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도 없다. 유학 시절의 진저리나는 이삿짐이 책에 대한 욕심을 깨끗이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책보다 책장이 낫다. 새 가구같이 텅 빈 책장은 세상의 모든 책이 몰살된 뒤 살아남은 듯한 깨끗함을 지니고 있는데, 모든 현학자를 도살한 것 같은 빈 책장의 이 냉혹함이 좋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야말로 묘하게 수집 주위를 뱅뱅 돌고 있었다. 늙은 강아지가 좋아하던 공을 물었다 지쳐서 놓듯 이제 게임기를 가지고 놀지는 않지만, 아직도 초등학교 때 그대로 서랍 속에는 ‘게임앤워치’ 시리즈 몇 개가 들어있다. 언젠가 헌책방에서 만난 ‘사상계’ 창간호와 폐간호 같은 것도 서랍 속에 있다(이걸 왜 샀지?). 고등학교 때 구한 오윤의 호랑이 판화 연하장은 호랑이해마다 쓸까 말까 하다가, 세 번의 호랑이해를 무사히 넘기고 서랍 속에서 네 번째 호랑이해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 김승희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대뜸 여쭈어본 것은 학문이나 문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화사집’ 희귀본의 행방이었다. 시인이 문예지에 연재했던 ‘33세의 팡세’를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김 시인은 표지 제목을 일일이 손으로 수놓은 초희귀본 ‘화사집’을 소장하고 있다고 했던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저런 오래된 물건들에 몰두하게 만드는가? 미술품부터 레트로 게임기까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수집을 하는가? 이 속절없는 물욕은 어디서 나오는가?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재테크의 일종으로서 수집을 떠올릴 것이다. ‘전당포 사나이들’ 같은 인기 프로는 한편으로 진귀한 물건들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론 그 물건들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의 행운을 보여준다. 수집품의 최종 가치는 ‘가격’으로 표현된다. 이 가격이라는 요소가 사람들의 욕망을 부채질하지 않았다면, 이 프로는 맥빠진 골동품 소개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발자크 역시 수집을 통해 한몫 쥐어보려는 꿈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러나 재능이 없었다. 소설을 쓸 때는 한스 홀바인의 진품도 손에 넣는 퐁스 같은 수집의 달인도 창조했지만, 그 자신은 수집품의 진가를 판별하지 못했다. “가장 형편없는 상인도 그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그는 취한 듯이 사들였다.”(안인희 역) ‘발자크 평전’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가다. 그는 어느 날 메디치가(家) 출신의 프랑스 왕비 마리아 데 메디치의 옷장을 수집하는데(물론 가짜다), 이것을 팔아 엄청난 이익을 남길 꿈에 부푼다. 유럽의 유명한 부자들인 로스차일드나 데번셔 공작이 이 옷장에 관심을 가진다고 떠벌리지만 다 실속 없는 이야기다. 팔리지 않던 이 옷장은 발자크가 죽은 뒤에야 처분되는데, 그 초라한 장면을 츠바이크는 이렇게 기록한다. “오로지 죽음만이 그가 이것들이 드루오 호텔 경매에서 얼마나 하찮은 가격에 낙찰됐는지 보는 치욕을 면제해 주었다.” 지금 우리가 관심 가지는 것은 이런 허무한 재테크로서의 수집이 아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작업’으로서 수집이다. 발자크가 그의 형편없는 수집 취향을 소설 속으로 가져와 수집품들에 투영했을 때, 그것들은 한 시대의 진실을 새기고 있는 유물들이 된다. 그렇다. 어떤 진실은 역사가의 공식적인 기록 속에 남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욱 귀중한 진실은 개인적인 수집품들 속에 남을 것이다. 하나하나 모은 수집품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와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잊힌 과거를 갑자기 의미심장한 보석으로 만드는 효과 말이다.
수집가는 많은 경우 과거의 사물에 관여한다. 현재의 사물이라도, 술이 익듯 과거가 되었을 때 빛을 발하게 될 것들만 수집한다는 점에서, 수집가는 현재 속에서도 과거만을 읽는다.(반면 미래의 사물에 관심을 쏟는 자는 발명가다). 그래서 수집가는 레트로마니아이기 십상이다. 우리 시대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는 ‘레트로’란 ‘retrospect(추억)’의 줄임말로, ‘복고풍’, 과거에 대한 취향을 뜻한다.
과거에 대한 취향이란 역사가와 박물관 학예사의 취향이 아닌가? 수집가로서 레트로마니아는 역사가와 박물관 기획자 앞에 명함도 못 내민다. 레트로마니아 또는 사적인 수집가는 공적인 가치를 대표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수집가의 위대함이 있다. 발터 베냐민은 ‘수집가이자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에서, 독일의 수집가 푹스나 소설가 공쿠르 형제가 공공기관인 박물관에 대해 품었던 혐오감을 이렇게 기록한다. “수집가들 중에서 박물관에 대해 혐오감을 품고 있었던 사람은 유독 그(푹스)만이 아니었다. 공쿠르 형제는 그 점에서 그의 선배다. 박물관에 대해 품었던 혐오감의 격렬함을 두고 보면 그들은 푹스를 능가한다. 공공기관의 소장품들이 개인의 소장품보다 사회적으로 덜 문제시되고 학문적으로 더 유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수집품들은 그것들의 가장 큰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박물관들이 노리고 있었던 것은 이른바 걸작들이었다.”(최성만 역)
이런 공식적 가치를 지니는 박물관과 반대되는 내밀하고 독특한 박물관을 자기 집에다 세우는 자들이 바로 수집가들이다. 베냐민이 말하듯 “위대한 수집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대상을 선택하는 그들의 독창성”이다. 진정한 수집가란 이미 공적으로 가치가 정해진 물건의 뒤를 쫓아다니는 자가 아니다. 그의 독창성이란 프리드리히 니체처럼 새로운 가치를 세우는 것이다. 이런 독창적인 수집의 극단화된 형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페리 로사의 단편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에 나오는 박물관이다. 여기에는 공식적인 역사에서는 전혀 가시화될 수 없는 ‘쓸모없는 노력’의 흔적들이 소장돼 있다.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거의 잊힌 물건을 찾아 헤매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1973년의 핀볼’이 있다. 레트로 감성에 젖은 주인공이 애타게 찾는 것은 ‘스페이스십’이라는 단종된 핀볼머신인데, 그는 어렵게 이 핀볼머신을 한 수집가의 창고에서 만나게 된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 장난감을 왜 찾는가? 이 핀볼머신은 주인공의 잃어버린 젊은 날 전부를 담고 있는 귀중한 보석 상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마치 애인을 회상하듯 이 핀볼머신에 대해 말한다. “우리들이 같이 나누고 있는 것은 훨씬 전에 죽어 버린 시간의 단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그 따뜻한 추억의 얼마인가는 낡은 빛처럼 내 마음속을 지금도 계속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나를 사로잡아 다시 한 번 무의 소용돌이에 집어넣을 때까지의 찰나를 나는 그 빛과 함께 걸을 것이다.”(윤성원 역) 마치 마들렌 과자 안에 주인공 프루스트의 소중한 과거 전체가 담겨 있듯이 핀볼머신은 빛과도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레트로마니아의 소중한 장난감은 호롱불처럼 추억의 빛을 간직한 채 주인공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즉 재테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물들을 수집한다. 그것들은 공적인 박물관의 수집품과 전혀 다르다. 박물관이 공인된 역사적 시간을 표현하는 사물들에 몰두한다면, 수집가들이 눈독 들이는 레트로 감성의 아이템들은 사적인 추억의 역사 또는 알려지지 않았거나 사소한 역사의 이면을 간직한다. 전자가 공식 역사 교과서에 대응한다면, 후자는 재야의 비사(秘史)에 해당하리라.
그런데 비밀스러운 역사가 깃든 사물들의 수집은 그냥 한 개인의 추억에 머무는 것일까? 10세 때의 내가 이갈이하면서, 톰 소여 풍으로 모아 두었던 작은 이빨 몇 개처럼 말이다. 그러나 공적 가치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적인 수집가의 과업은 개인적 추억의 기록물에 멈추지 않는다. 단적으로 각 지방에 흩어진 개인적 수집품인 카메라와 오디오, 장난감으로 특화된 사설 박물관이 여러 여행객에게 존중받으며 보편적인 가치의 차원으로 진입한다. 또 이런 흥미로운 수집도 있다. 베냐민이 말하듯 수집가 푹스는 복제해서 대량 생산한 당나라의 도자기들을 수집했다. 이것들은 박물관이 수집하는 유명한 작가의 유일무이한 작품과 정반대의 것이다. 특정한 창작자가 만든 개별 작품을 특정한 소유주가 감상하는 귀족적 향유와 반대로, 익명의 예술이 대중의 실생활 자체에 스며든 사회의 모습을 푹스의 저 수집품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 수집품들은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경제 체제로 이루어진 세계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감성이 이끄는 대로 옛날 게임을 손에 들거나 오래된 잔에 술을 따르는 레트로마니아는 기존의 가치를 떠나, 이제 막 발견한 진귀한 가치의 역사를 새로 쓰는 자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에두아르트 푹스(1870∼1940) : 독일의 수집가이다. 사회주의적 견지에서 대중들의 삶을 조명하는 수집품들, 특히 성 풍속과 관련된 작품에 몰두했다. 캐리커처나 삽화들의 사회적·예술적 의미를 조명한 예술사가이기도 하다. 말년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탄압을 받아 스위스로 망명했다.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풍속의 역사’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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