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취업 선호도와 따로 노는 재계

오종탁 기자 2021. 2. 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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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직격탄 맞은 항공·유통 기업이 '톱10'에 대거 포진
금융 및 IT 업종 대비 연봉도 낮은데 왜?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코로나19 여파에 더해 성장 정체의 수렁에 빠진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이 기업들은 어려운 상황이란 것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대학생 다수가 선호하는 직장이란 사실이다. 아이러니하다. 대학생 취업 선호도와 개별 대기업 상황 사이의 '미스매치'는 무엇 때문일까. 

시사저널이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최근 3년간(2018~20년) 대학생 취업 선호도 조사 결과를 분석해 보니 삼성전자, CJ제일제당, 한국전력공사,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이 계속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2019년을 포함해 두 차례나 톱10에 든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이마트, 기아자동차 등도 대학생들로부터 인기 있는 직장으로 각인됐다. 

한 대학교 학생회관 내 취업 카페 상담부스에서 학생이 걸어가고 있다.ⓒ연합뉴스

'풍전등화' 아시아나가 선호도 9위? 

그런데 지난해 코로나19란 큰 변수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하다. 좋지 않은 경영 흐름 속에서 입지를 위협받았을 법한 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4위 대한항공(응답률 7.6%), 5위 호텔롯데(6.7%), 7위 롯데쇼핑(6.3%), 9위 아시아나항공(5.6%) 등은 코로나19 여파로 흔들리다 못해 미래까지 불투명해진 기업들이다. 

우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여행객이 급감한 탓에 엄청난 매출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여전한 올해도 항공 업황 전망은 깜깜하다. 최소한 2024년은 돼야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국내 양대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상·긴축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인건비는 유·무급휴직, 희망퇴직 등으로 최대한 절감해 왔다. 당분간 신규 채용 계획이 있을 리 만무하다. 

앞서 2019년 12월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던 대한항공 신입사원 70여 명은 올해 2월에야 입사할 수 있게 됐다. 이들은 당초 지난해 3월 입사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에 발목 잡혀 1년여 동안이나 무직자 상태로 있어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만 해도 대한항공은 업계에서만큼은 '꿈의 직장'으로 통했는데, 업황 자체가 악화하며 옛말이 됐다"면서 "위기 상황은 차치하더라도 향후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 이슈, 산업구조 재편 등으로 인해 근무 여건은 계속 나빠질 것 같다"고 관측했다. 그는 이어 "항공업계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이 원체 많았고, 이들이 업계 1·2위 회사에 지망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며 "그래도 업황 등 현실을 잘 모른 채 관성에 젖어 막연하게 지원하고 입사했다가는 실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은 더욱 불안하다. 만성적인 경영난에 더해 HDC현대산업개발과의 매각 협상마저 백지화됐다. 대안이 없는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대한항공과의 통합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핵심 관문인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는 최근에 시작됐다. 당장 눈앞의 심사 결과도 예단할 수 없을뿐더러 인수가 완료된다 해도 첩첩산중이다. 재무 안전성 확보, 자회사 지분구조 정리, 조직문화 융합 등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미묘한 기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는 KDB산업은행과 사측에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후에도 아시아나항공이 33년간 독자 경영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대한항공은 오는 6월 인수 절차 종료 이후 1~2년간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운영한 뒤 이르면 2023년 완전히 흡수한다는 계획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대한항공 직원과 아시아나항공 직원들 사이에 신경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대한항공 직원은 "굴러온 돌들(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먼저 머리 숙이고 잘 봐달라고 해야 한다"고 글을 쓰자 아시아나항공 직원은 댓글로 "벌써부터 자기들한테 잘 보이라고 하다니(어이없다)"라고 반박했다. 

기업 인지도·전통적인 이미지 등에 영향 

대학생들이 각각 취업하고 싶은 직장 5위와 7위로 꼽은 호텔롯데, 롯데쇼핑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호텔롯데의 양 축인 면세점업과 호텔업은 코로나 여파로 항공업계 못지않게 타격을 입었다.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면세점은 현 사업구조가 지속된다면 코로나19가 잦아든다 해도 매출 회복이나 안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보건·외교 등 국내외 이슈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롯데쇼핑은 재계 5위 롯데그룹의 본업(本業)이자 자존심이지만, 급변하는 시장 환경 변화에서 맥을 못 춘 지 오래다. 온라인 쇼핑 성장세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고 있다가 코로나19 여파를 그대로 맞았다. 뒤늦게 백화점과 마트, 슈퍼, 닷컴, 롭스, 홈쇼핑, 하이마트 등 계열사를 한데 모아 지난해 4월 출범시킨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ON)은 경쟁사에 비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하준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점포 구조조정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하고 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소비심리도 개선될 수 있다"며 롯데쇼핑의 실적 개선세를 예상했다. 하지만 대규모 구조조정은 곧 채용 여력 감소를 의미한다. 평년보다 한 달여 늦게 시작한 지난해 10월 공채에서 유통 계열사들은 신입 직원을 뽑지 않았다.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도심ⓒ연합뉴스

"채용공고 내는 대기업에 감사할 따름" 

취업준비생 김성환씨(가명·27)는 "취업이 어려워지고 대학 졸업 후 공백기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일단 채용공고가 뜨면 감사할 정도"라며 "대기업이라면 닥치는 대로 지원해 왔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어느 기업이 어떤 상황에 처했고 미래가 어떨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전했다. 김씨는 "주변이나 취업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보면 회사에 대한 상세한 정보나 자신의 비전 등은 크게 중요치 않은 분위기"라며 "대기업의 인지도나 대략적인 업무 분야에 따라 호감도가 결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0년 조사(국내 4년제 대학생 1078명 대상, 복수응답 가능) 기준 대학생 상당수는 톱10 기업을 '연봉 수준이 높을 것 같아서'(33.9%), '복지 제도와 근무 환경이 잘 갖춰져 있을 것 같아서'(32.9%) 선호한다고 답했다. 이 밖에 '평소 기업 이미지가 좋아서'(22.5%),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19.2%)라는 응답이 있었다. 

그러나 1위 삼성전자를 제외하고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기업들은 '최상위권 연봉'과 거리가 멀다. 지난해 기업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가 국내 500대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318개사의 2019년 직원 연봉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봉 액수 톱10 중 6곳이 금융사였다. 직원의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 33개 기업 중에서 삼성전자와 삼성SDS, SK텔레콤,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모두 금융과 석유화학 업체였다. 유통은 4160만원을 받아 유일하게 5000만원에 못 미쳤고, 식음료(5480만원)와 생활용품(5980만원)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업종도 연봉 하위권을 형성했다.   

얼어붙은 신입 채용…'대기업 쏠림' 더욱 심화 

코로나19로 고용시장, 특히 대졸 신입사원 채용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고용 경직성에 따른 리스크를 경험함에 따라 위험 회피적 채용 관행, 자동화 투자 확대 등 기존 노동 수요의 대체 움직임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판단한다"며 "노동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청년층일수록 안정된 노동수입원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알바콜이 기업 705곳(대기업 104곳, 중견기업 157곳, 중소기업 444곳)을 대상으로 올해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을 뽑을 계획이 있다는 곳은 38.7%에 불과했다. 지난해 41.2%에 비해 2.5%포인트 감소했다. '채용 의사가 있으나 세부사항은 미정'이라는 기업이 38.8%, '채용 여부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기업이 16.0%, '단 1명도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업이 6.6%로 집계됐다. 

채용 여력은 상대적으로 대기업에 더 있을 수밖에 없다. 올해 대졸 신입 채용을 확정한 곳을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대기업(56.2%)이 중견기업(43.4%)과 중소기업(32.7%)에 비해 많았다. 반대로 채용 미정 비율은 중소기업(60.4%)에서 가장 높았고 중견기업(51.0%), 대기업(37.1%)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조사 때 71.7%였던 대기업 신입 채용 확정 비율이 급락한 데서 알 수 있듯 고용 한파는 그 어느 때보다 대학생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서미영 인크루트 대표는 "올해 기업들이 보수적인 신입 채용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신입 구직자 입사 선호도가 높은 대기업의 채용 의지가 가장 크게 위축된 점이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중견기업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입을 채용하기로 계획한 중견기업은 지난해 46.8%에서 올해 43.4%로 소폭 줄어들었다. 눈에 띄는 사실은 중소기업의 경우 30.8%에서 32.7%로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선뜻 중견기업 내지 중소기업 입사를 희망하는 대학생은 드물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중소기업들은 수도권 외 지역에 많고 급여 수준이나 근무 환경도 대기업에 비해 열악하다"면서 "대기업 직원들은 서울에서 높은 연봉, 주 52시간 근무, 육아휴직, 직장 내 어린이집 등을 누리는 반면 중소기업 직원들에게 연애·결혼·출산은 더욱 어렵고 먼 일이 될 수 있다. 대학생들이 중소기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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